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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문종합영어를

시작할 수 있을까요?

by 김욱곤
다운로드.jpg (이미지출처:알라딘) 이보다 훨씬 깨끗한 내 책^^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교과서 이상으로 내 곁에 늘 붙어있던 참고서를 꼽으라면 단연코 정석(定石)과 성문(成文)입니다. 홍성대, 송성문이라는 걸출한 저자에서 시작된 이 책은 수업 시간이나 시험에만 보던 교과서 대신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들과 같이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뒷장으로 갈수록 점점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손때를 거의 타지 않습니다. 초반의 chapter는 메모도 되어 있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손때는커녕 마치 새 책과 같습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보면 선생님들도 이를 이용하시나 봅니다. 이상하리만치 소홀히 보낸 뒷부분에서 문제가 자주 출제됩니다. 그러니 정작 시험이 끝나도 원하는 점수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고 어렵사리 대학에 들어오고 인턴, 레지던트 시절을 지내도 이는 쉽게 개선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전공의 시절에는 전문의 시험이라는 굵직한 국가고시가 기다리니 조금 나아지기는 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험을 거치고 모든 과정을 다 마치면 마음의 여유가 생겨 원하는 책들을 찬찬히 읽을 줄 알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분야, 원하는 작가를 골라 읽을 수 있고 더구나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은 편안함은 없을 듯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학생 때 느끼고 경험했던 일들이 자꾸만 반복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갈수록 나아지는 느낌조차 없이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완독률(完讀率)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벼운 산문 정도의 책에 마음이 가는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문, 역사에도 관심이 많기에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되지만, 주제가 무겁거나 학술적으로 접근이라도 할라치면 역시 끝까지 읽는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더라는 말입니다. 책 하나를 마무리하고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이 예사 정성이 아니라는 거 정도는 알기에 완독으로 보답해야 할 테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이 책이 참 재미있다, 유익하다는 평가 기준은 과연 절대적일까요? 쉽게 말해 100명이 읽었을 때 최소한 90% 이상이 같은 의견을 내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순위 안에 포함된 책의 구매율과 완독률은 얼마나 될까요? 저자가 주장하는 주제가 보편적이면 보편적이라는 이유로, 특출 나면 그렇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경우도 보곤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게 100% 만족을 보일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이 되어야 소위 호평(好評)을 얻을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몇 달 전 추억팔이에 휩쓸려 성문종합영어와 기초영문법이라는 책을 한번 사 보았습니다. 대학 입학시험이나 본고사 목적으로 편집된 우리 시대와는 달리 TOEIC, TOEFL도 대비할 수 있다는 설명도 붙어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습니다. 누구 하나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절박함도 없어서 아직은 제대로 열어보지도 못하고 괜히 바람 소리만 나도록 펼쳐 볼 뿐입니다.


내가 이런 영어 참고서를 공부할 것인가? 더 나아가 끝을 볼 것인가? 나 스스로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 책으로 배운 것도 가물가물하고 영어가 일상어가 아닌 제게 얼마만큼의 난이도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까지의 습관처럼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차라리 학습지처럼 일정량을 정해진 날에 배달받듯이 하면 될까? 생각도 해 봅니다만, 이 또한 수강료를 내는 일도 아니요, 숙제 검사처럼 확인받을 일도 아니기에 여러모로 참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나의 결심이 완성되는 그날을 꿈꾸는 시간만 그렇게 흐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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