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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맥이의 고충

참 어려운 관계의 방정식

by 김욱곤
(이미지출처:네이버뉴스)


사람을 대하고 응대하며 대화를 만들어 가는 일처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숫기가 없어 덥석 첫마디 꺼내기가 참 어렵기도 하지만 내게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상황에 적절한 말인지, 결례가 되지는 않을지, 더 나아가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냥 신변잡기처럼 가벼운 이야기며 부담 없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도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살아왔음을 탓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릴 적 그런 나의 성향이 부모님의 걱정거리였습니다. 친구가 많지 않은 모두 숫기 없음이라 하시며 심지어 부모가 죽으면 조문할 친구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까지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 어지간히 사회의 물도 들고 남들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근본적인 내 성향이 대 변환점을 맞았다고 장담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만일 제가 영업하고 광고하는 직종에 몸담았다면 변변한 실적을 올리지 못할 게 분명합니다. ‘나’라는 브랜드를 포장하는 일이며 적응하는 일, 더 나아가 무언가를 보기 좋게 알리는 일에 그다지 큰 성과를 내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는 정도는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는가 툴툴거려 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마는 내 성격을 고쳐보려고 애쓸수록 그 또한 부작용만 커질 일입니다.


젊을 적 사람들과의 대화 중에 가장 난감한 질문을 꼽으라면 다름 아닌 “제가 몇 살로 보이세요?”였습니다. 상대에 대해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고 그렇다고 제 주변인과의 연결고리도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그런 류(類)의 질문은 나에게 농도 깊은 고민과 번민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얼마 정도로 둘러대야 실례가 안 될까? 생각하는 일은 정말 피곤한 일입니다. 그 느낌 전해지십니까? 마치 월척 낚듯 만족스러운 숫자가 나오면 모를까, 민망한 정도의 나이로 대답하면 그보다 더 큰 낭패는 없습니다.




제가 알고 지냈던 친구 중에 세상살이를 큰 스트레스 없이 여기며 지냈던 녀석이 있었습니다. 굳이 과거형으로 표기한 이유는 짐작하신 그대로입니다. 지금은 제대로 연락조차 되지 않습니다. 소위 정답을 미리 알고 있는 듯 상황 파악이 잘 되며 말도 어쩜 그리 재미있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둘과의 관계는 몇 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아마 나의 성향이 그 친구의 마음에 미치지 못했을 거라 짐작했고 나중에 건너 건너 전해 들은 이야기도 대략 그런 내용들입니다. 소위 코드가 맞지 않았던 셈입니다.


출처가 어디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람과의 관계도 서로 관심을 가지고 주고받는 기한이 기껏해야 3~4년 정도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릴 적 친구들은 대학 친구들로 갈리고 그들마저도 졸업하고 갈 길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멀어지며 세상에서 만난 친구들도 여러 이유나 형편으로 인해 멀어집니다. 이 정도쯤 되니 친구 층의 얇고 얕음도 굳이 나의 내향적 성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 위안을 해봅니다. 나라는 사람을 굳이 타자(他者)에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이는, 남을 배려한다는 것과 조금은 다른 개념이겠습니다마는 괜히 그로 인해 오해하고 곡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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