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욱곤 Apr 24. 2023

모란이 피기 시작했다네요.

분홍색 모란의 그 아릿한 기억과 함께.

(이미지출처:분통이 명지 최문곤) 올해도 너무 일찍 핀 모란..



어릴 적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추억일 수도 있겠지만, 집 안에 있던 화단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꽃이 철 따라 피어나곤 했습니다. 모과, 장미, 무화과, 채송화는 물론이고 키 작은 포도나무 하나도 자리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약간 안쪽에 분홍색의 모란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이모할머니께서는 목단(牧丹)이라고 하셨는데 봄이면 탐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선덕여왕은 향이 없다고 표현했다지만 그도 아닌 것은, 제법 은은한 향도 낼 줄 아는 꽃이었습니다.     




나에게 모란은 나 어릴 적, 먼저 하늘 여행을 떠난 막냇동생의 모습입니다. 동생이 떠나던 날, 자정을 넘긴 그 시간에도 풍성했던 모란은, 뜰에 나와 울던 나랑 같이 울어주었습니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에게 말해주던 모란.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 떠나는 동생 울리지 말고 보내 줘! 동생 얼굴과 겹친 꽃봉오리는 예쁘다 못해 슬펐던 ‘또 한 송이 나의 모란’입니다.     


그 해 현충일, 다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내 공부방에 라디오를 통해 노래 한 곡이 방 안을 채웠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곡을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포성이 멈추고

한 송이 꽃이 피었네

평화의 화신처럼

나는 꽃을 보았네

거치른 이 들판에

용사들의 넋처럼     


전우여 전우여

오 나의 전우여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내 너를 찾으리.     


‘전장에 피는 꽃’이란 노래로 1976년 당시에 들었던 노래입니다. 블루벨즈라는 4중창단이 불렀던 노래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1976년의 여름은 꽃과 함께, 처음 들었던 생경한 이 노래와 함께 내 곁을 지나갔습니다. 




    

그 후 우리는 이사도 하고, 동기들은 결혼 후 분가도 하면서 마당이 없는 아파트로 다니다 보니 나의 의지나 취향과는 관계없이 정해진 규격 안에 살아갑니다. 지금 모란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때 그 느낌 그대로는 분명 아니겠지요. 사람들은 봄이 짧아지고 있다고 많이 아쉬워하지만 나에게 오뉴월은 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그냥 마음이 아련한 그런 계절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