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 오피스텔엔 인어가 살았다

by 스텔라박

용궁이 경매에 넘어갔대

꼭대기 층에 사는 자라 가족은

다급히 세입자를 모아 회의를 했다.

에 그러니까 변호사비 삼십만원 씩 주시고요

자라의 말에

개복치는 얼굴을 부풀리며

우리가 돈이 어딨어요 전세금이 날라갔는데

피라미들은 월세 안 내도 되겠네 수근수근

몸집 큰 장어는 보증금 들고 튄 용왕 놈 잡히기만 해봐 씰룩씰룩

참담한 인어는 원룸에 돌아와

조용히 빨간 다라이에 물을 받고 긴 몸을 접어 들어간다

이 세상 내가 몸 누일 곳 하나 없다고

넓은 바닷속 어디도 편안하게 숨쉴 곳이

이 다라이를 가지고 어디를 가나

물 속으로 꼬르륵 얼굴을 넣으며 크게 숨을 뱉는다

20년 전 용궁 살던 그 인어는 어디로 갔을까

목소리도 팔고 빨간 다라이도 팔았을까

자라 개복치 피라미 장어들은 용왕을 잡았을까

시간이 지나 뿔뿔이 흩어진 그들에게

용왕이 사기 치고 도망간 용궁 이야기는

젊은 날의 무용담으로 술안주가 되었을까


김장철 빨간 김치로 가득 담긴

빨간 다라이를 볼 때면

욕조 있는 집에 사는 게 꿈이었던

어린 인어가 떠오른다

돈보다도 사람보다도 숨 쉴 곳이 필요했다 했던

인어의 숨 쉴 구멍 빨간 다라이


용궁 오피스텔엔 그렇게 인어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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