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온기
나의 오래된 남자친구, 사귄 지 13년 된 그는 동물을 사랑한다. 14년 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에는 10개가 넘는 3자 수조에 담수어들을, 그리고 고슴도치를 키우고 있었다. 그는 빨리 퇴근해서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걸 보는게 삶의 낙이었는데 어찌어찌 그와 사귀게 되었을 때, 그의 집에 놀러가 처음 한 일이 고슴도치를 목욕시킨 후 털을 말리는 걸 도와주는 거였다. 나는 동물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진 않지만, 집에서 동물을 한 번도 길러보지 않아서 정말 그가 특이한 사람이라도 생각했다. 동물을 기르는 일은 정말 어마어마한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그는 항상 수조 물을 환수하랴, 이러랴 저러랴 바빴다. 고슴도치를 다 분양시킨 후, 나와 사귄지 1년 쯤 지났을 때,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했고, 그 또한 고양이를 식구로 들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러시안 블루, 터키쉬 앙고라 아기 고양이를 식구로 맞이했다. 수컷 러시안 블루는 둘리, 터키시 앙고라는 쭈쭈라 이름 붙여주고 우당탕탕 아기 고양이들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 남자친구는 적어도 자식은 세 마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스코티쉬 스트레이트 남아를 또 데려왔다. 쪼꼬맣고 맹한 막내의 이름은 쪼꼬맹이가 되었다.
고양이를 기르는 일은, 모든 반려동물을 기르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부지런함과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는 독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13년을 겪어본 결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온몸으로 ‘사랑을 주세요’ 하고 달려드는 강아지들과 달리 고양이들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사랑을 주시겠어요?’ 라고 정중하게 부탁한다.
우리는 고양이 육아에 역할을 분담했는데 화장실 청소는 오빠가, 고양이 밥, 물, 간식 그리고 헤어볼 토하는 것 치우는 것은 내 담당이다. 내 역할이 많은 듯 하지만 세 마리의 화장실 세 개를 치우는게 보통 일이 아니므로 나는 수긍하고 역할을 다한다. 더불어 나는 고양이 마사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 발급기관은 둘리쭈쭈쪼꼬맹 협회이다. 아마 공식 고양이협회가 있더라도 나는 자격증을 무난히 딸 수 있을 정도로 고양이 마사지에는 이제 도가 텄다. 콧등 위 이마부터 머리, 턱, 양 수염난 볼부터 어깨, 그리고 궁디팡팡으로 마무리하면 우리 고양이들은 여지없이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한다.
오빠와 퇴근하고 오빠 집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둘리가 마중을 나온다. 세 마리중 가장 개냥이라 애정 표현에 가장 적극적이다. 집에 와서 정리하고 소파에 앉으면 둘리는 거실 테이블에 사뿐히 올라와 투명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한다. 내가 딴짓을 하고 있을 때에도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눈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나의 마사지가 시작되고 둘리는 골골대며 앉아있는 나에게 와 배 위에 턱 앉는다. 한참을 쓰다듬고 만족한 둘리는 다른 주위를 끄는 곳으로 사뿐사뿐 걸어간다.
그리고 저녁 준비를 하러 부엌으로 가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쪼꼬맹이가 “끼야옹, 끼끼, 꺄꺄” 새소리를 내며 나를 졸졸 따라온다. 내가 물을 마시는 동안 엉덩이를 내 쪽으로 대며 꼬리를 탁탁 치다가, 물을 마시는 시간이 길어지면 앞발로 나를 툭툭 치며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얼른 쓰다듬으란 뜻이다. 나는 그들의 전속 마사지사. 쪼꼬맹이님을 만족시킬 때까지 쓰담쓰담을 한다. 시간을 좀 짧게 끊고 거실로 나올라치면 “왜 벌써 끝내냐옹” 하며 끼양옹 거리며 나를 따라온다.
쪼꼬맹이와 둘리는 5년 전, 알수 없는 이유로 크게 싸운 후 지금도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거실이 주 영역인 둘리는 쪼꼬맹이가 나에게 사랑받으며 거실로 나오는 꼴을 보기 싫어해서 그 순간 쪼꼬맹이를 원수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사납게 째려본다. 나는 종종 둘리의 그 눈빛 발사를 보면서, 저거 저거, 사람 아니야? 하며 오빠와 헛웃음을 짓는다. 고양이에게도 다채로운 표정과 눈빛이 있다는 걸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안다.
우리 쭈쭈 공주님은 오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데 소파에 앉아있는 오빠 쪽에 가서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외동딸이 아빠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오빠를 쳐다보고 앉아있다. 만약 오빠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티비에 집중할라치면, 고집 피우며 땡깡 부리는 딸 마냥 “니야옹! 니야옹!” 하면서 성질을 부린다. 오빠가 쓰담쓰담 해주어야 소리 지르는 것을 멈춘다.
바야흐로 겨울에 접어든 요즘, 긴 여름 동안 집안 구석구석 시원한 곳을 찾아 헤매던 고양이 삼남매는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부터 침대를 점령했다. 오빠가 큰 침대를 사길 얼마나 다행이야 하면서 침대에 다정하게 붙어 자는 둘리와 쭈쭈, 조금 떨어져 편안하게 널부러진 쪼꼬맹이를 보며, 이건 우리 침대가 아니야 하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오래 자야 하는 사람이고 오빠는 자는 시간이 아까운 사람이라, 오빠 집에 있을 때 보통 내가 먼저 자러 들어가는데 내가 자러 먼저 침대에 누우면 거실에서 놀고 있던 둘리가 “엄마?” 하며 내 쪽으로 온다. “ 옹야? 엄마?” 하는 소리는 분명 날 부르는 소리다. 올라오면 나는 손으로 둘리는 쓰다듬는다. 둘리는 골골대며 내 배 위로 올라온다. 한참 때에는 내 배 위에 누워 골골대며 자더니 요즘엔 내 옆에 옆으로 누워 네 발로 내 손을 잡는다. 발바닥으로 내 손을 눌렀다가 움켜잡았다가 하며 둘리와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있자면 마음이 평온해지며 스르르 잠이 온다. 막 잠이 들려치면 진격의 쭈쭈가 우당탕탕 침대로 뛰어 올라온다. 둘리와 내 손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내 손에 얼굴과 엉덩이를 번갈아 가며 비비기 시작한다. 둘리는 쭈쭈와 우애 깊은 남매여서 쭈쭈를 그루밍 해준다. 나에게 경락마사지, 둘리에게 털 마사지를 받은 쭈쭈는 만족스럽게 엉덩이를 내 쪽으로 하고 누워 내 손을 가운데 두고 두 발을 쭉 편다. 내 손바닥이 쭈쭈 배에 안착하도록 척 눕고 자리를 잡는다. 배 마사지를 하라는 주인님의 명령이다. 보들보들, 말랑말랑 따뜻한 쭈쭈 배를 만지고 있으면 다시 잠이 솔솔 쏟아진다.
한참 내가 잠이 드는 순간, 쭈쭈와 둘리는 다시 오빠가 있는 거실로 나간다. 마치 둘은 나를 재우러 온 것처럼 내가 잠이 들면 ‘엄마 잔다. 잘 재웠다. 이제 나가자! ’ 이러는 것 같다. 그러다 오빠도 자러 침대로 들어오면 둘은 오빠 배게 옆에서 서로를 그루밍 해주며 껴안고 잔다. 오빠는 쭈쭈와 둘리의 쩝쩝거리며 그루밍 해주는 소리에 잠을 못 잔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러는 사이 쪼꼬맹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내 옆 방바닥에서 내 실내화를 배게 삼아 꼭 안고 널부러져서 잔다. 겨울, 그들의 온기가 더욱 소중한 계절이다.
우리 삼남매의 나이는 올해로 12살쯤 되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이제 중년을 넘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우리에겐 언제나 천방지축 세 살 아가들이지만 점점 하얘지는 수염과 잠자는 시간이 더 많아진 걸 보면, 그들이 이제 호호할아버지, 호호할머니라는 걸 문득문득 실감한다.
오빠와 난 그들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그들과의 사랑스러운 눈맞춤과 그들의 온기 없이는 어찌 살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조건 없이 애정을 주는 삼남매들 덕분에 오빠와 나는 살아오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고양이들은 치유해주었다. 우리는 그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때때로 나는 나의 삶의 이유가 그들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나와 오빠가 사고 나서 집에 못 들어올까봐 아침이면 꼭 밥과 물을 넉넉히 주고 나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양이 밥과 물을 챙겨주어야 하니 나와 오빠는 꼭 고양이들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 건사해야 하는 자식의 부모가 자식들보다 꼭 하루 더 살고 떠나고 싶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와 오빠는 조금 알 거 같다고 말한다.
반려동물은 인생의 동반자와 같다. 요즈음 고양이과 강아지들을 귀여움만 보고 너무 쉽게 가족으로 들이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들은 평생 3살 아이들과 같아 기르는 게 많은 정성과 많은 애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끝까지 책임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남자친구와 나는 반려동물을 버렸다는 뉴스를 보면 분노하면서도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들은 식구이며 식구가 되면 사람이고 동물이고 모두 책임져야 하는 가족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남자친구와 나는 고양이들의 병원비를 위해 저축을 해야 한다고 종종 말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삼 남매와 마지막까지 함께할 것임을 우리는 암묵적으로 안다. 그들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해지듯, 우리의 사랑이 그들에게 전해지기를. 그들의 온기를 평생 잊지 않기를.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들처럼 순수한 눈빛으로 우리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우리는 항상 다짐하며 우리 삼남매를 꼭 껴안는다. 그들의 사랑스러움이 세상을 보다 따뜻하게 하기를 우리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