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합니다.

#케이크 #불

by 스텔라박

내 생일은 1월 1일이다. 85년 1월 1일 새벽 2시 반, 전라남도 장흥의 한 산부인과에서 이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내 생일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특별한 날 태어나셨네요, 혹은 나이를 꽉 채워 드시겠네요, 남들이 생일 기억하기 쉽겠어요 등의 멘트를 날린다. 12월 31일이 생일인 지인도 있는데 생일 이야기를 하면 내가 하루만, 아니 몇 시간만 늦게 태어났어도 나이를 한 살 덜 먹는건데 하며 탄식을 금치 못한다. 나도 어렸을 적에는 누구나 내 생일을 쉽게 기억한다는 게 좋았지만, 어느 순간 내 생일에 대한 아쉬움이 생겼다.

가장 큰 아쉬움은, 내 생일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는 점이다. 그게 왜?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평범한 하루, 오롯이 내가 태어난 이유로 특별해지는 그런 날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사람의 욕심은 참 끝이 없다.) 바쁜 일상 속에 특별한 생일이 꼭꼭 숨어있다가 짠, 하고 다가오면 지친 일상에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 생일엔 온 세상이 떠들썩하고 축하하기 바쁘다. 내 친구는 내 이런 말을 듣더니 온 세상이 너의 생일을 축하해주는거잖아! 얼마나 좋니!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케이크다. 케이크가 문제다. 많은 사람들은 생일이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 또는 새해를 기념하기 위해 예쁘고 맛있는 케이크를 산다. 일년에 돈, 칼로리 생각하지 않고 케이크를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은데 나는 크리스마스, 신정, 그리고 내 생일에 먹을 수 있는 기회 중 한번을 뺏긴 셈이다. 게다가 생일 며칠 전이 크리스마스라서 자연스럽게 케이크는 내 생일, 신정에 한 번만 사게 된다. 그리고 생일에 맛있고 예쁘고 가격도 적당한 케이크를 준비하려고 하면, 연말연시 새해 기념으로 케이크를 사는 사람들과 피치 못할 경쟁을 하게 된다. 내가 찜해놓은 케이크가 품절 되어 놓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혹자는 아무 때나 먹고 싶은 케이크를 사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그게 아니란 말이지. 아쉬운 대로 남자친구 생일 축하를 빙자해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려 하면, 입 짧은 남자친구는 손사래를 친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축하 하는 게 싫단다. 어느 나이를 넘어가고 보니 그게 썩 유쾌하지 않다며, 극구 케이크 사려는 나를 말린다.

내가 나이를 스무 살 쯤 더 먹고 고지혈증과 당뇨를 피하기 위해 건강식을 찾게 되면 그 때는 내가 케이크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생일에 예쁘고 맛있는 케이크에 초를 꽂고, 촛불을 켜는 그 순간이 참 좋다. 이왕이면 딸기가 안팎에 가득한 하얀 생크림이면 더 좋다. 숫자 초나 다양한 불빛을 내는 색깔 초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꽂고 새해 카운트 다운에 맞춰 촛불을 켠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고, 5,4,3,2,1 하는 소리와 함께 후- 촛불을 불어 끈다. 그리고 내가 먹고 싶은 만큼 큼지막한 조각으로 케이크를 썰어 음- 하며 먹다 보면 그래, 한 살 더 먹었으니 올해도 잘 살아보자.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에게 케이크와 촛불이 중요하다 보니 부모님 생신 때 내려갈 일이 생기면 케이크와 초를 챙기는 편인데, 그러다가 대실수를 한 적이 있다. 아주 오랜만에 아빠 생신에 내려간 적이 있는데, 아빠의 나이라 환갑을 훌쩍 넘었을 때였다. 아빠는 케이크에 불 붙이는게 싫다고 강조해서 말씀하셨는데, 나는 고집을 부려 굳이 케이크와 초를 사 갔다. 그런데 내 센스의 부족으로 숫자 초를 사지 못했고, 그날 케이크 위에서 길고 짧은 초들이 불타는 숲이 되어 있었다. 아빠는 민망해하시며 촛불을 불었고 불은 한 번에 안 꺼지고 서너 번 큰 숨으로 불어 겨우 꺼졌다. 아빠의 연세를 생각하지 못한 내 불찰 덕분에 불효녀가 될 뻔했다.

어쨌든, 내 생일엔 지금까지 계속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고, 딱 한 번 생일에 케이크를 사지 못한 날이 있었다. 잊지 못한다. 그 날은 2019년 1월 1일이었다. 항상 생일엔 가족이나 친구, 남자친구와 함께 했는데 2019년 나의 34번 째 생일에는 혼자였다. 남자친구와 2018년 11월, 마지막으로 헤어지고 맞는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이었다. 방학을 하지 않아 새해 전날까지 학교에서 근무하고 새해 다음 날에도 출근을 해야 해서 광주에 내려갈 수도 없었는데다 내려가고 싶지도 않았다. 12월 31일 퇴근길에 만난 모든 사람들과 지인들이 나에게 생일에 혼자 있는 거냐고 걱정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괜찮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들도 모두 가족과 함께 보내는 날인지라 그 누구도 나와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솔로이면서 가족과 떨어져 사는 지인을 뒀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와 생일을 보내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31일 저녁은 식당 음식으로 혼자 배를 채우고 텅 빈 내 원룸으로 들어왔다. TV를 보다 잠이 들었고 1월 1일에는 지독한 생리통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혼자 처량하게 있을 거면 뭐라도 맛있는 거라도 챙겨먹을걸, 그때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쫄쫄 굶으며 생리통 때문에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다른 날들이 다 비참해도 생일만큼은 비참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나 외롭고 비참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 혼자 숨죽여 펑펑 울었다.

그 후 몇 달 뒤 남자친구와 다시 만났고 나는 그다음 해 생일부터 지금까지도 생일만 되면 그때 그 외로웠던 순간을 남자친구에게 설명한다. 너 때문이야, 라고 하고 싶은 거다. 남자친구는 나도 마찬가지였어. 라고 응대한다. 하지만 내가 외롭고 비참했던 건 남자친구의 탓도, 함께 있어 주지 못한 주변 지인들의 탓도 멀리 사는 가족들의 탓도 아니다. 그건 바로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있는 나에게 근사한 생일선물도, 맛있는 음식도 사주지 못했다. 케이크는 물론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뭐가 맛있는지도 그때는 몰랐다. 나를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생리통 약을 먹고 근처 빵집에서 작은 케이크라도 사올 걸, 그땐 왜 그렇게 미련하게 방바닥을 뒹굴었나 싶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도 한 권 사러 서점 나들이라도 다녀올걸. 나간 김에 예쁜 다이어리도 하나 장만 할 걸. 그러면 그때 그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았을 텐데. 한 해 시작하는 소중한 날이자 내가 세상에 나온 특별한 날인데,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는 것만 기대하고 내가 내 스스로를 다독이고 돌보고 축하해주지 못했다.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기 바빠 우울함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었다. 혼자인데, 다 먹지도 못하는 데 무슨 케이크야, 집 대출 갚을 돈도 없는데 나에게 무슨 선물이야, 등등의 이유를 대며 나는 혼자 처량해했다.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 다른 날들은 남에게 양보하고 맞춰줘도 내 생일만큼은 내가 정말 원하는 걸 한다. 바로 최고로 맛있는 딸기 가득 생크림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는 것, 내가 평소 사고 싶었지만 이러저러 핑계로 사지 못했던 물건을 나에게 선물하는 것. 그리고 엄마에게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인사를 드리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남자친구와 고양이들을 한번씩 안아주는 것. 생일에 꼭 하는 일들이다. 2019년 1월 1일이 없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나를 아껴주는 법을 하나씩 알아간다. 타인의 축하를 기대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축하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는 돈보다도 중요한 게 있고, 타인보다 나를 더 아껴줘야 한다는 걸, 이제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다. 어쩌면 이 깨달음이 2019년 1월 1일 내 생일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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