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추억

#호수 #느낌표 #충만

by 스텔라박

나는 호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호수냐 바다냐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무조건 바다다. 아무리 넓은 호수라 할지라도 막혀있다는 사실이 주는 답답함이 있다. 잔잔한 호수보다 일렁이는 파도가 좋다. 여행을 가더라도 바다는 찾아서 가지만 굳이 호수를 찾아서 가지는 않는다. 바다를 여행한 추억은 많지만 호수? 하면 특별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호수! 하고 떠오르는 추억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네팔 포카라에 있는 페와 호수이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나는 당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사진작가 한 분이 인도가 그렇게 좋더라라고 하는 말 한마디에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들고 인도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떠났다. 계획도 없고 동행이라곤 네이버 인도여행 까페 에서 만난, 실제로는 만나본 적 없었던 언니 한 명이었다. 그나마도 출발하는 날 인천공항에서 그 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 혼자 출국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인연 이라는게 정말 있는 건지 출발 직전 공항에서 나는 여행 동료들이 생겼다.


에어인디아 수속 게이트에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인도에서 게스트하우스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자신의 짐을 대신 나의 수화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리고 겁도 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수화물로 한국 식재료 한 박스를 보내주는 대신 인도 도착했을 때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재워주는 조건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한참 후에서야 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그 당시엔 꽤 매력적인 부탁이었다.


부탁한 수화물을 보내러 갔을 때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몇몇 모여있었다. 인도로 부처의 순례길 탐방을 떠나는 스님, 스님의 수제자 한 명, 자유로운 영혼의 대학생 남자 한 명, 사진 학과를 재학 중인 여자 동생 한 명이었다. 인도에 도착해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두 딱히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우리는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참, 거기에 연락이 되지 않던 까페에서 만난 언니도 극적으로 인도에 도착해서 연락이 되어 그 언니도 함께하기로 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 큰 족적을 남긴 인도 네팔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누가 보면 도대체 무슨 조합일까 궁금해 할 법한 우리 여행 일행들은 모두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스님은 잔소리 많은 꼰대 아저씨였고 스님의 수제자인 오빠는 조용하지만 뭔가 우울한 분위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자유로운 대학생 오빠는 배낭여행을 여러 번 다녀본 경험으로 든든하게 우리의 여행을 이끌었다. 까페에서 만나 함께하게 된 언니는 일본어 학과를 나와 일본 유학을 준비 중이었는데 새침하면서도 꼼꼼한 성격이어서 우리를 세심하게 챙겼다. 사진학과를 다닌다는 여자 동생은 공항에서부터 여권을 흘리고 다니는 허당에 덥고 힘든 걸 싫어해서 도대체 쟤는 왜 인도에 배낭여행을 왔을까 우리들이 수십 번 물어볼 정도였다. 하지만 그 동생은 분위기를 주도하는 유쾌함이 있어서 우리의 여행은 그 친구 덕에 항상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는 뉴델리 빠하르간지에서 시작해 북쪽의 다람살라, 맥그로드간지를 찍고 갠지스 강이 있는 바라나시를 여행했다. 가는 곳마다 인도의 매력이 넘쳐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바라나시에서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 했다. 벌써 한 달 중 삼분의 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님은 순례길을 떠나온 목적이 있어서 네팔의 룸비니를 갔다가 다시 인도로 돌아와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보고 탕가를 사가야 한다고 하셨다. 탕가는 탱화인데 한국에서는 굉장히 비싼 탕가를 인도에서는 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바라나시까지 왔으니 인도는 충분히 느꼈고 스님과 함께 룸비니를 가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네팔로 넘어가기로 했다. 자유로운 영혼 오빠는 네팔로 간 김에 다시 인도로 돌아오지 말고 네팔 여행을 하는 건 어떻냐고 제안했다. 네팔은 좀 깨끗한 인도 느낌이라 들었다며 여기까지 온김에 네팔에서 안나푸르나나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하는것도 의미있다고 우리를 설득했다. 결국 우리는 룸비니를 간 후 스님과 수제자는 다시 인도로, 자유로운 영혼 오빠와 일본어학과 언니와 사진작가 동생, 그리고 나는 네팔 여행을 하는 걸로 결론지었다. 룸비니에서 스님, 수제자와 헤어지며 네팔 여행을 끝내고 출국하기 위해 인도 뉴델리로 들어왔을 때 서로 일정이 맞으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네팔은 정말 깨끗한 인도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인도 사람들에 비해 순박했다. 물론 인도 네팔 국경에서 크게 사기를 한번 당하긴 했지만 우리는 나중에 그 사기친 사람들 다 인도 사람들일 꺼라고, 네팔 사람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인도보다 훨씬 때가 덜 묻은 네팔 사람들은 친절했다. 우리는 룸비니, 카트만두, 치트완 국립공원을 거쳐 포카라에 도착했다. 포카라는 큰 호수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조용한 시골이었다. 우리는 포카라에서 며칠 쉬다가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로 트레킹을 할 예정이었다.


포카라에는 에베레스트라는 스테이크 집이 있었는데 말도 못하게 가격이 쌌다. 우리는 신나게 먹고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호수 길이 너무 예뻐서 나는 그 곳에서 두발 자전거를 배웠다. 물론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무릎에 큰 상처가 생기긴 했지만 덕분에 나는 22살이 되어서야 두발 자전거를 제대로 타게 되었다. 호숫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사진학과 동생이 저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수영은 못하지만 호수를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함께 호숫가로 갔다.


그 호수에서는 네팔 현지 사람들이 자유롭게 수영하고 있었다. 물은 깨끗하다 못해 투명했고 갠지스 강의 더러움에 질렸던 내 마음까지도 깨끗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네팔 현지인들과 함께 앉아 호수를 구경하고 동생이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을 봤다.


“ 언니! 내가 수영 가르쳐줄게. 이리 들어와! 별로 깊지 않네. ”


동생이 부르는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천천히 호수로 들어갔다. 바닥에 발이 닿자 안심하며 천천히 걸었다. 동생은 계속 나를 끌며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 그런데 순간, 발이 닿지 않았다.

그때 그 당혹스러움과 공포심이란. 어푸어푸 하며 손사래를 치는데 저 멀리 호숫가에 앉아있거나 수영하던 네팔 남자아이들이 순식간에 나에게 다가와 나를 호숫가로 끌고 나왔다. 가슴은 터질 듯이 두근거리고 숨을 헐떡였다. 네팔 남자아이들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 곁에 모여서 숨을 천천히 쉬라고 영어로 계속 다독여줬다. 동생은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행이 물을 많이 먹지 않고 정신도 멀쩡했다. 크게 숨을 내쉬자 어느새 진정이 되었다.


정신을 차린 나는 나를 살려준 네팔 남자아이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했다. 그중 아줄이라는 이름의 네팔 남자아이는 끝까지 남아서 괜찮냐고, 자기도 물에 빠질 뻔 한 적이 있어서 그 기분 안다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나를 삼킬 뻔한 호수에서 빠져나와 바라보는 호수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네팔 사람들의 친절함에 공포심으로 채워졌던 나의 마음이 고마움과 따뜻함으로 새롭게 채워졌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일본어학과 언니와 자유로운 영혼 오빠와 셋이 사박 오일 일정으로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로 트레킹을 떠났다. 사진학과 동생은 나에게 미안해서인지, 힘든 게 싫어서인지 자신은 그냥 쉬고 있겠다고 했다. 트레킹 중 묵은 롯지에서 마오이스트를 만나 또다시 돈을 뜯겼지만 인생에 잊지 못할 풍경을 또다시 가슴에 담고 포카라로 돌아왔다. 그 덕에 호숫가의 사건은 아예 잊고 있었다.


포카라로 떠나기 전 호숫가를 다시 걷는데 호숫가에 있던 트레킹 용품 렌털 샵 주인이 나를 보고 아줄이 찾더라 했다. 호수에 빠질 뻔 했었냐고 물어보며 아줄이 너가 사라져서 걱정하기래 멀쩡하게 트레킹 떠나더라고 말해줬다 했다. 아차 싶었지만 아줄을 그 후 보지 못하고 포카라를 떠나야 했다.


때때로 내가 네팔 호수에서 운명을 달리할 뻔 했는데도 물에 대한 공포감이 트라우마로 남지 않음이 신기할 때가 있다. 여행을 다녀와서 수영을 배우려고 시도도 했다. 키 판을 놓는 것까진 진도가 나가지 못하고 그만두긴 했지만 물이 그렇게 심하게 무섭지는 않다. 단지, 내 하나뿐인 목숨을 위해 그 때 그 호수에서처럼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 호수를 떠올리면 물에 빠질 뻔했던 그 아찔한 순간보다도 순수한 네팔 아이 아줄이 생판 모르는 외국인을 살려주고, 걱정해주던 그 마음이 떠오른다. 댓가를 바라는 호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호의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그 호수의 깊이만큼 충만해진다.


한 달여간의 무모했던 인도 네팔 여행은 내 삶의 전환점이자 내가 살아가는데 많은 힘과 용기를 주었다. 수많은 풍경,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추억들은 내 스물 두살 인생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 중에서도 포카라 호수, 그리고 네팔의 순수했던 아줄 또한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이름을 잊지 않을 만큼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공포로 남을 뻔한 호수에 대한 추억을 인류애로 덮어준 아줄에게 감사인사를 남긴다. 아줄!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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