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구름, 그리고 그와 함께라면

#자전거 #구름 #배신

by 스텔라박

나에게 아끼는 몇 가지 물건이 있다. 나는 어지간하면 사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내 남자친구는 사고 싶은 물건은 꼭 사는 사람이다. 남자친구가 산다길래 엉겹결에 사게 된, 내가 가진 물건 중 비싸기로 탑 쓰리에 드는 물건. 바로 브롬톤 자전거다. 선명한 녹색에 갈색 안장, 착착착 3단으로 접히는 접이식 브롬톤. 자전거 업계에선 꽤 유명한 자전거 인데, 이유는 성능에 비해 굉장히 비싼 가격(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이걸 잊게 해주는 예쁘고 폼나는 외관을 가지고 있는 자전거이다. 한 대에 200만원이 넘는데 나의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는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외관에 반하기도 하고 사놓으면 오래 타겠지 하고 덜컥 샀다. 2016년에 샀으니 벌써 8년정도 되었다. 그 사이 브롬톤의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서 지금 생각하면 손해는 안봤지 싶다. 남자친구와 나는 둘 다 운동에는 젬병이지만 봄, 가을 날씨가 좋을 때면 연례행사로 자전거를 꺼내 정비를 받는다. 그리고 그 짧은 봄, 가을 몇 주 동안 자전거를 타러 공원에 나간다.

저번 주말 일요일, 우리를 밖으로 부르는 날씨에 오빠와 나는 자전거를 끌고 나와 일산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 따뜻한 햇살, 청명한 가을날이었다. 호수공원에 사람이 많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아 자전거 타기 수월했다. 자전거 초보인 나는 집중해서 페달을 밟았고, 오빠는 내 바로 뒤에서 따라오며 이러저러 코치를 해줬다. 호수공원 반바퀴쯤 돌았을까, 우리가 항상 쉬어가는 곳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멈추고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가만히 숨을 고르며 앞을 바라보니 잔잔한 호수와 긴 팔을 내려뜨린 큰 나무가 보였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하늘이었다. 밝고 푸른 하늘엔 솜뭉치를 누가 살짝 띄어놓고 간 듯 구름이 잔잔하게 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구름 한점 없는 깨끗한 가을 하늘도 좋지만, 나는 구름이 그림처럼 떠 있는 하늘도 참 좋다.

오빠와 최근에 오일파스텔로 그림그리기를 종종 하는데, 초보가 따라하기 쉬운 오일파스텔 그림 유튜브 영상을 따라하다 보면 그라데이션 된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기가 꼭 있다. 구름을 그리는 건 단순히 흰색 파스텔을 칠하는 것이 아닌 회색, 하늘색 등으로 음영을 그리고 경계선을 자연스럽게 그려야 한다. 열심히 따라그려도 영상의 그림과 비슷한 느낌을 내기가 참 어렵다. 그렇게 오빠와 구름 그림을 그리다보니 이제 오빠와 드라이브를 할 때, 길을 걸을 때 예쁜 그림을 보게 되면

“오빠, 저거 너무 그림같은 구름이야. 나 그릴 수 있을거 같아.”

“ 그렇네. 저 구름은 우리가 그렸던 그림과 비슷한데?”

라는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

그림 같은 구름. 구름 같은 그림. 분명 자연의 구름이 먼저인데 오빠와 나는 그림 속 구름을 떠올린다. 호수공원에서 잠시 쉬어가는 그 순간 우리는 구름을 보면서 또다시 그림 같은 구름 풍경이라고 대화를 나눴다.

한숨 돌리고 우리는 다시 호수공원 남은 반바퀴를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오빠집에 자전거를 착착착 접어놓고 함께 소박한 저녁을 먹는다.

남자친구를 만난지도 벌써 14년째가 되어간다. 그를 만나며 세 번의 헤어짐, 네 번의 재회를 하고, 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모든 풍파를 거친 후 오빠와 나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지고 안정됨을 느낀다. 비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관계가 앞으로 이렇게 계속될 것이라는 걸 예감한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함께 그림을 그리고, 함께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비록 사랑의 서약을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존재이다.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지 않을거라 믿는 것. 서로가 서로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 물론 관계에 대해서 예감은 하지만 확언이나 단언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 일이란 모를 일이라 오늘 이 글을 쓰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게 사람의 인생이니까. 결혼한 부부도 이혼하고 그 이혼이 더 이상 흠이 아닌 시대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니까. 오지은의 노래 가사중에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다고’ 라는 구절을 되뇌어본다. 사랑도, 우정도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도 영원하다고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함께할 거라 믿는다. 서로의 사랑이 처음에는 열정으로, 한 때는 분노로, 한 때는 연민으로, 한 때는 동질감으로 변해오는 만큼 우리의 관계는 크레이프 케익처럼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지금은 익숙함과 편안함, 안정감으로 변해있는 이 사랑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쌓여갈 것이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결코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우리를 더욱 솔직하고 믿음직한 관계로 만들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맞이하는 매 년의 봄, 가을마다 창 밖의 날씨가 우리를 부를 때 함께 눈빛을 주고받고 브롬톤을 챙겨 나갈거다. 간단한 정비를 받고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 때, 오빠는 분명 항상 내 뒤에서 따라오며 잔소리를 하겠지. 그리고 구름이 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 저 구름, 그림 같지. 우리가 그린 그림처럼 말이야.” 라고 마주 보며 대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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