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의 여행

by 스텔라박

나는 어지간하면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간소화하고, 바로 내 손을 뻗어 확인할 수 있는 자리에 두며,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최소화한다. 이게 내가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사십 평생을 살아오며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나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는지 이 두 지갑의 모습이 지금도 상세히 떠오른다.

첫 번째 지갑 분실 사건은 23살, 대학교 4학년 때였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 인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오며 이것저것 기념품을 사왔다. 그중에서도 갈색 스웨이드 재질의 인도 풍 자수가 그려진 카드지갑을 거의 분신처럼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 지갑은 작은 네모의 카드지갑 겸 동전지갑이었는데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지갑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인천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고, 내가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지하철과 버스였다. 교통카드가 항상 필요했기에 카드지갑은 언제나 내 주머니나 가방 속에 있었다. 그 인도 지갑과의 결별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서울에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고, 집에 와서 가방 정리를 하려보니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내 주머니에도 가방 속에도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떨어트린 건지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에게 갑작스레 닥친 분실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다. 나는 계속 머릿속으로 내 동선을 떠올리며 어디에 있을까 추리했다. 그 당시엔 지하철 분실물센터가 있는지도 몰랐고, 찾아볼 생각도 못했다. 나는 동네방네 나의 아끼는 인도 지갑의 분실에 대해 말하고 다녔고, 그 인도 지갑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인도 빠하르간지에서 산 지갑을 한국에서 구할 길이 없었고, 나는 심지어 그 지갑과 같은 것을 사러 인도에 다시 가야겠다고 결심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지갑이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상상했다. 혹시 누군가가 주워서 사용하는 건 아닐까? 그 지갑엔 교통카드와 동전 몇 개가 전부였으므로 나에게 돌아올 여지는 전혀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주워서 그 사람의 물건이 되어 쓰이기를 나는 작게 소망했다. 적어도 청소하는 분이 주워 쓰레기로 생을 마감하는 것보단 나을 거 같았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생각에 빠진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선 지갑이 지하철을 타고 긴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내 하숙집이 있던 백운역에서 종로3가 역까지, 1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내가 자주 가던 광화문역까지. 지갑 속 시선에 들어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신발들 뿐이었지만 내 꿈에서 지갑은 분명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지갑의 여행을 응원하며 내 마음속에서 놓아주기로 결심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꿈에서 깬 나는 깔끔하게 그 지갑을 잊고 다른 지갑을 구입 했다.

두 번째 지갑 분실 사건은 발령받고 3년 차 때 일이다. 나는 발령을 받으면서 큰맘 먹고 마음에 드는 진분홍색 지갑을 구입했다. 루이까또즈 라는 브랜드였는데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는 브랜드지만 2011년엔 꽤 유명했던 브랜드이다. 2-3년쯤 들고 다녀서 손때가 묻었지만 점점 내 손에 착 감기게 되어 이 지갑 또한 내가 애정하며 들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할 때 분명 있었던 지갑에 퇴근할 때 보니 사라져 있었다. 인도 지갑과는 달리 이 지갑에는 내 주민등록증, 각종 신용카드, 6만원 남짓의 현금이 들어있어서 지갑을 분실한 사고는 아주 크고 골치 아픈 일이었다. 학교의 교실 곳곳과 화장실 등 모든 곳을 찾아보았지만 지갑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은 아마도 누군가가 가져간 것 같다고, 포기하는 게 좋겠다 말했다. 학생들을 의심하긴 싫었지만 그 당시 학교에서 교사들의 물건을 도둑맞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 교실을 비울 때 교사 사물함을 잠그지 않은 내 탓이라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찾는 것을 곧 포기하고 모든 신용카드를 분실신고, 재발급, 그리고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해야했다. 그리고 잃어버린 지갑과 비슷한 색깔, 비슷한 모양의 지갑을 새로 구입했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파주 법원리도서관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000씨 되시나요?”

“네. 맞는데요.”

“여기 법원리도서관인데요. 000씨 지갑이 도서관 뒤편 공터에서 발견돼서요. 찾아 가시라구요.”

“네? 지갑이요?”

나는 법원리도서관은커녕 법원리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주내리에 있던 학교와도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하며 곰곰이 생각했다. 지갑이라면 일 년 전 내가 잃어버린 지갑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나는 퇴근길에 버스를 타고 법원리 도서관에 방문했고, 일 년 전 잃어버렸던 그 지갑과 다시 만났다. 지갑 안에 신분증, 신용카드 등은 그대로 있었고 현금만 사라져 있었다. 지갑은 1년 전보다 많이 낡아있었다.

과연 그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그 지갑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학생 중 누군가 지갑을 훔쳤고 현금만 챙기고 어딘가에 버린 건지, 1년 후면 범인을 못 찾을꺼라 생각해서 1년을 기다린 건지, 최대한 학교에서 멀리 가서 법원리 도서관 뒤 공터에 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갑을 보니 여하튼 지간에 1년 동안 그 지갑이 참 고단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애잔한 마음에 몇 번이고 지갑을 쓰다듬고 열었다 닫았다 했다. 하지만 내게는 이미 더 새것의 예쁜 지갑이 있었고 결국 그 지갑은 보관하다 이사를 할 때 헌옷수거함으로 보냈다.

그 지갑은 1년간 어떻게 살았을까? 이 분홍지갑도 내 인도 지갑처럼 여행을 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사용해 새로운 주인 곁에서 지냈을까? 아니면 어딘가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이제야 발견된 걸까? 그래도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지갑과의 만남은 나에게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도 결국 내 곁으로 돌아왔구나. 내 옆에서 생을 마감하는구나.

나는 어딘가에 분실물들의 커뮤니티가 있을 것이라 상상한다. 주인으로부터 불의의 사고로 멀리 떨어진 분실물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 분홍지갑은 그 커뮤니티에서 내 인도 지갑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인도 지갑은 외국산이라 대화가 통하지 않았으려나 잠시 걱정한다. 인도 지갑은 분홍 지갑에게 나의 안부를 물으며 나는 영원히 여행 중이라 갈 수 없으니 넌 꼭 돌아가라고 격려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인도 지갑에게 사연이 생겨 나에게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을까? 지하철을 떠돌다 중국산 지갑을 만나 친구가 되어 함께 정착한 인도 지갑이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오늘도 나는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물건들을 착착착 가방 속에 잘 정리하고 외출한다. 내 물건들의 커뮤니티에서 좋은 주인으로 소문나기 위해 조금 더 소중히 물건을 다룬다. 손때 묻은 물건들을 한 번 더 챙긴다. 나의 손길에 그들이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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