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교사
(1)에 이어서....
주제 중심 발표회 날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연극 공연 포스터도 만들고 각자 자기 부모님께 보낼 연극 초대장도 만든다. 많은 준비 끝에 주제 중심 발표회가 다가왔다. 각 모둠별로 5분 남짓의 공연이지만 아이들도 떨리고 나도 떨리는 순간이었다. 교실 앞에 검은 천으로 칠판과 티비를 가려서 무대를 만들었고, 아이들은 직접 만든 소품과 의상을 대신할 천을 챙겼다. 그리고, 연극 공연이 시작되었다. 학부모님들도 나도 아이들도 집중했다. 다른 모둠의 공연이 끝나고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모둠의 공연 차례였다. 호랑이 역할의 친구가 다행히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어흥! 을 마쳐서 안도하고 지켜보는데, 갑자기 학부모님들의 웃음이 터졌다. 마지막에 지게가 멍석에 말린 호랑이를 업는 시늉을 하고 강으로 데려가는 장면이었다. 학부모님들은
"지게가 너무 작아. 하하하."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숨죽여 웃음을 터뜨리셨다. 뭔가 하고 보니, 세상에나. 지게 역할을 맡은 아이는 우리 반에서 가장 작은 여자아이였고, 업힌 멍석 역할은 우리 반에서 가장 큰 남자 아이, 호랑이 역할 학생은 두 번째로 큰 남자아이였다. 아이들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맡은 데다가 마지막 장면은 실수 없이 잘해주었기에 그 아이들의 크기 차이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가 보기에도 가장 작은 여자아이가 영차영차 두 덩치 남자아이를 강으로 데려가는 모습이 웃음이 터질 수 밖에 없었다.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고 관객에서 웃음 소리가 들리자 연극을 하던 아이들도 헤헤헤 하고 웃었다. 어쨌든 연극은 무사히 끝났고, 아이들은 떨렸지만 뿌듯했다고 소감을 나누었다.
때때로 기억에 남아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순간들이 있다. 작년 아이들과 연극 연습을 하며 생겼던 이 에피소드들은 시간이 지나도 종종 생각이 난다. 그래서 혼자 피식피식 웃는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그런 순간들이 차곡차곡 내 기억에 쌓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순간들이 추억이 되어 아름다운 장면으로 내 머릿속에 기억된다.
교사가 된다는 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더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쉽게 내뱉는 말에 상처받는 일은 다반사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지도하는 것도 까딱 잘못하면 아이들 기분 상해죄, 아동학대가 되는 이 시대가 참 답답하기도 하다. 자기 아이만 보이는 학부모들의 분노의 찬 전화를 몇 번 받다 보면 교직에 정이 뚝뚝 떨어지기도 한다. 옛날처럼 가르치는 게 주입식 교육, 외우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아닌지라 수업 준비도 굉장히 공이 많이 들고, 아이들은 조금만 지루해도 집중을 하지 못한다. 교사가 처리해야 할 업무는 시간이 갈수록 늘고, 월급은 기대하지 않은지 오래다. 나는 내가 만약 교사 첫해 힘든 일을 겪은 후 교육연극을 배우지 않았다면, 연극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교사를 그만두었으리라 짐작한다. 아니면 매너리즘에 빠져 무력한 일상을 보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직장인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 많은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기도 하고, 많은 교사들이 무력감을 느낀다. 물론 나라고 많이 다른 건 아니다. 피디수첩을 보면 트라우마가 생겨 여러 날 우울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예의 없게 말한 것에 화를 내다가도 내가 지금 8살, 9살 짜리들이랑 뭘 하고 있나 허망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추억에 쌓여있는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꺼내본다. 발령 2년째 되던 해, 선생님 감사하다며 집에서 농사지었다고 양상추 5봉지와 콩물을 갈아 오셨던 M의 할머니, 너무나 멋진 글을 써서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S의 작품, 수학 공개수업 시간에 사자 역할을 맡고 싶다고 40분 내내 어흥거리며 뛰어다녔던 J, 웃는게 사랑스러웠던 K, 나한테 장난치느라 웃다가 딸꾹질 하다가 웃다가 하던 C, 너무나 어른스러워서 언제나 날 위로해줬던 Y 등등. 상처받거나 화가 났던 기억은 조용히 접어 넣어두고, 예쁜 기억을 꺼내보며 나를 다독인다. 그래, 그래도 아직은 할만하다. 아직은 웃을 수 있는 추억이 있고, 아직은 아이들이 예쁨에 감사하며, 그래, 그래도 아직은 할 만하다라고 말해본다. 그리고 내가 연극을 만날 수 있게 한 첫 학교의 힘듦에도 감사한다. 인생은 새옹지마, 전화위복, 사필귀정. 이 사자성어들은 진리임을 인생을 살아갈 수록 느낀다. 그러니 어딘가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도, 위기가 지나가면 그 위기만큼의 복이 올테니, 무너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