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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아 Apr 28. 2024

4월은 방울토마토와 함께

일상 기록

2024.03.30.

씨앗 선물의 의미

 

  한 달에 한 번씩 보는 친구와 선물 주고받기를 계획했다. 비싸지 않고 재밌으면서 유용한 선물. 나는 방울토마토 세트를 받았다. 이게 왜 웃긴 선물이냐하면, 내가 식물을 잘 못 기를 것 같은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죽일 것 같나보지? 보란듯이 잘 키워보겠어. 주는 이의 의도가 뭐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마음 한켠에 작은 오기가 자리잡았다.

2024.04.01.

설레는 마음으로 정성을 심다

1일차

  씨앗 다섯 개를 심었다. 이게 정말 자랄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왠지 설렜다. 화분에 흙을 고루 채우고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깊이로 흙을 파 씨를 고이 심고 흠뻑 물을 주는 과정이, 새 생명의 시작을 함께하고 있는 것만 같아 기뻤다.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생겼다.

2024.04.8.

방울이, 소중한 첫째의 탄생

8일차

  당최 싹이 나지 않을 것만 같던 7일. 매일 베란다로 가서 화분을 확인하긴 하지만 흙에 변화가 없으니 관심이 시들해질 때쯤, 작은 새싹 하나가 흙 위로 올라왔다. 내가 새싹 하나에 이렇게 감격할 줄은 몰랐다. '어머! 드디어 났어!' 이 선물을 준 친구, 함께 사는 사람들, 가족들에게 자랑했다. 검색해보니 원래 방울토마토 씨앗을 심으면 7일에서 10일 안에 싹이 튼다고 한다. 그동안 생각보다 싹이 일찍 트지 않아 베란다가 너무 추워서 자라지 못하는 것인가, 햇빛이 더 잘 드는 곳에 화분을 뒀어야 하나 싶었는데 고맙게도 저 싹이 세상 밖으로 나와줬다. 이름은 방울이. 첫 번째 친구의 탄생에 행복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2024.04.09.

마음 쏟을 대상이 있는 일상

9일차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에 있는 방울이에게 달려갔다. 어제 밤, 갓 나와서 여리기만 해보였던 새싹은 햇살을 맞고 뽀용!하며 힘차게 잎을 틔웠다. 어쩜 이렇게 귀엽고 대견할 수가. 신이 나서 간만에 미세먼지도 없겠다 햇빛이 잘 드는 방 창문에 화분을 두었다. 그래, 너 하나라도 나왔으니 나는 만족해. 우리 같이 잘 자라보자. 그렇게 새싹에게 말을 건네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2024.04.11.

무럭무럭 자라네

11일차

  이틀만에 부쩍 커진 방울이. 재미 없고 스트레스가 가득한 하루 중에 쑥쑥 커가는 새싹을 볼 때면 마음 속이 평화롭다. 나머지 네 친구들은 나오지 않으려나봐. 나의 하루는 썩 좋지 못했어. 너라도 잘 자라줘.

2024.04.12.

둘째, 토리의 탄생

12일차

  방울이 하나만 잘 키워보겠다고 했는데, 기숙사에 돌아와 화분을 보니 새로운 새싹이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둘째의 등장에 신이 났다. 12일만에 다른 새싹이 또 나올 줄이야. 긴급속보라며 동네방네 둘째의 탄생을 알렸다. 호들갑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식물의 탄생, 성장을 바라보는 순간순간이 별다른 자극 없는 하루에 엄청난 활기를 준다. 둘째 이름은 토리. 방울+토+마+토 > 첫째는 '방울'이, 라임을 맞추기 위해 둘째는 '토'리 셋째가 만약 또 나와준다면 걔는 '마'리. 그랬더니 엄마는 첫째는 원이(one), 둘째는 토리(two), 셋째는 써리(three)라며 멋대로 이름을 지어 불렀다. 고쳐줄 때마다 마음대로 부르는데 그 이름도 나름 귀여운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다. 반가워 토리야!

2024.04.13.

하루 걸러 올라온 셋째 마리!

13일차

  연달아 셋째까지 나왔다. 5개의 씨앗 중에 세 개가 새싹이 되었으니 수확률이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 사이 첫째, 방울이는 체급 차이가 확연히 날 정도로 컸다. 잎도 커지고 줄기도 자라고 줄기에 보송보송 털도 났다. 두 번째, 세 번째 새싹이 나 기쁜 마음이 배가 되었어도 여전히 첫째에게 가장 먼저 시선이 간다. 뭐, 단순히 커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마리의 등장으로 완전체를 이룬 새싹 가족이다.

2024.04.14.

방울이의 변화

14일차

  마리도 완전히 싹을 틔웠다. 다만 잎이 다른 새싹들보다 조금 노래서 그쪽에 물을 듬뿍 주었다. 방울이에게는 변화가 생겼다. 새롭게 잎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의 방울이 토리 마리"라며 가족 톡방에 성장기를 공유한다. 많이 컸다는 평. 이제는 분갈이를 고민할 때가 왔다. 어떤 화분을 사야 하는지, 언제쯤 분갈이를 해야 하는지 엄마 아빠에게 물었다. 기특한 새싹들. 우리 가족의 소통 주제로 자리잡기까지 했다.

2024.03.30.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힘내"

17일차

  내가 가족 톡방에 이 친구들을 자랑하면서 한 말이다. 반려식물이 나에게 어떤 역할이 되어주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하루였다. 식물에 큰 관심을 가지며 사는 사람이 아닌데도 새싹이 커가는 걸 보면 괜히 뿌듯하고 외로움도 덜어지고 하루에 웃을 일이 더 많아진다. 마음이 가는 대상을 선물하는 것. 이게 화분 선물의 의미이지 않았을까. "마음을 담아서 키울 거라고 생각했어." "내가 준 친구를 잘 키워주는 게 나한테는 또 선물이야~" 나에게 새싹들은 안식처이자, 나와 함께 성장하는 소중한 생명체가 되었다. 새싹에게 마음을 쏟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기쁨과 기쁨의 공유가 누군가에게 선물로 다가갈 수 있다니. 마음을 전하고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선물인 것 같다.

2024.04.19. ~ 2024.04.25.

방울이 토리 마리 성장 기록

19일차
20일차
21일차
23일차
24일차
25일차

  거의 매일 방울토마토 새싹들의 성장을 공유한다. 엄마가 이제는 방울이를 분갈이시킬 때가 왔다고 했다. 둘째가 줄기가 휘어서 자라고 새로 나는 잎들이 활짝 자라지 못하는 모습이 첫째의 영향을 받는 것만 같았다. 방울이는 이제 처음 난 잎이 화분 위까지 올라왔을 정도로 자랐다. 금세 지나는 하루 속에서 매 순간 새싹이 성장하고 있었을 테니 성장에 걸맞는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겠지. 그래도 난 두려움이 앞섰다. 잘 자라고 있던 방울이가 분갈이를 하다가 혹은 새로운 흙과 화분 속에서 잘못될까봐.

2024.04.26.

분갈이

26일차
26일차, 방울이 분갈이

엄마와 통화하던 중 지금 당장 분갈이를 해버리라는 지침이 있었다. 전화를 마치고 베란다에 있는 여분의 화분, 사실은 죽은 식물이 2년째 흙과 함께 있던 화분 주인에게 연락했다. 2년 전 함께 살던 언니에게 화분을 써도 되겠냐고, 원래 화분 안에 있던 흙은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그 후 바로 분갈이를 시작했다. 화분 속 흙을 비닐에 담아 버리고 화분을 깨끗이 씻었다. 새 화분에 자갈을 넣고 여분의 흙을 뿌리고 드디어 방울이를 옮길 차례였다.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방울이 주변 흙을 파내며 방울이를 들어올렸는데 생각보다 뿌리가 너무 얇고 짧았다. 내가 파내다가 잘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그랬을 수도 있다..) 불안했다. 새로운 흙 속에 방울이를 심었는데 흙이 줄기를 지지하는 느낌이 아예 없어 물을 듬뿍 줬다. 그런데 이게 웬걸. 흙이 너무 건조한 탓이었는지 물과 흙이 따로 놀았다. 흙을 반죽하듯 손으로 저어줬다. 내가 잘한 게 맞는 건지, 방울이가 잘못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상태에서 분갈이를 마쳤다.

2024.04.28.

심란함

28일차

  이틀만에 마주한 방울이는 분갈이 전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다. 우선 흙이 너무 말라 있었다. 그렇게 물을 듬뿍 줬는데도 흙 양이 많고 원체 건조했던 탓에 그마저도 부족했던가보다. 보자마자 당황한 채로 겉 흙이 촉촉해지도록 물을 줬다. 방울이를 유심히 지켜보니 힘이 하나도 없이 축 처져있었다. 잎 하나하나에 힘이 가득했던 예전의 방울이었는데 뭐가 방울이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몰라 심란해졌다. 내가 뿌리를 온전하지 못하게 방울이를 파냈던 것일까. 오래된 흙이 문제였을까. 기쁨 속에서 맞이했던 방울이가 이제는 나에게 속상함을 안겨준다. 부디 죽지 말아주기를, 다시 생기를 되찾기를 바라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듯한 느낌에 마음이 좋지 않다. 무럭무럭 자란 토리와 마리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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