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K의 연락이 뜸해졌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안부를 건네고, 곧장 긴 수다로 이어지는 사이였다. 그런데 소식이 뚝 끊기자, 바빠서 그런 건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긴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는지, 아이들은 어떤지, 보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얼마 안 있어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다리던 연락이라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낮고 건조했다. 차분했지만 예전처럼 웃음 섞인 말투가 아니었다. 대신 단호한 어투가 낯설게 다가왔다. 짧은 통화였지만, 나에 대한 오해가 깊이 스며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곱씹었다. 나를 대하는 게 왜 달라진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뚜렷한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마지막 만남은 큰아이 졸업식에 맞춰 멀리까지 찾아가 축하했던 기억뿐. 그날도 평소처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그녀의 고민을 들으며 내 나름의 조언을 건넨 뒤 웃으며 헤어졌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알 수 없어 산책길에 서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설명할 길 없는 공허감이 밀려왔다.
친자매는 아니어도 우리는 닮은 점이 많았다. 대화가 잘 통해 직장 문제나 털어놓기 힘든 개인사까지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의 어투가 달라졌다.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그 속에는 하소연이 아니라 절박한 도움을 청하는 기색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설프게나마 내 생각을 솔직히 전하기 시작했다.
“힘들겠네.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누구 탓 하지 말고 네 마음부터 챙겨봐.”라며 배운 상담 지식까지 끌어와 그녀의 사정을 해석하려 했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의 도움일 거라 여겼다.
무엇에 서운했는지 묻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주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이토록 얕은 사이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만 짧은 대화로 느낀 점이라면, 그녀가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망설였지만, 더는 캐묻지 않기로 했다. 결국 단단하다 여긴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내 마음에도 깊은 생채기가 났다.
우리는 오래 쌓인 편안함으로 작은 일에도 공감했고, 명절마다 안부를 나눴다. 형제자매 못지않은 가까운 사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확신이 오히려 독이 된 걸까.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면 기운이 빠졌다. 처음엔 먼 길을 오간 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녀의 감정이 내게 옮겨와 어깨를 짓눌렀던 것이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나 혼자 텅 빈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계속 조언을 반복했다.
결국 문제는 그녀가 아니라 내 태도였다는 생각에 닿았다.
나는 왜 그렇게 조언을 서둘렀을까.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신중해야 했는데, 오히려 더 쉽게 선을 넘고 말았다. 도와주려는 마음과 잘하고 있다는 착각이 만든 일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건 K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이들 앞에서도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정작 필요한 건 엄마의 해결책이 아니라 그저 들어달라는 마음이었는데, 나는 서둘러 빠져나갈 길까지 막아버리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그러다 아이들이 먼저 문을 닫고 나면, 그제야 깨닫곤 했다. 멀어진 거리를 되돌리는 건 언제나 쉽지 않았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이미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라 경청이다. 곁에서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도, 말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길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적어도 그녀 앞에서는 넓게 열어둔 귀가 필요했다. 사람은 누구나 조언보다 곁에서 묵묵히 들어주는 이를 더 원하기 마련이다.
단순한 그 일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나는 또다시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