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가 데려온 두 개의 이야기

by 은진


“복숭아를 먹으며 읽어야 한다”는 후기를 처음 봤을 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읽으면서 과일까지 챙기라니, 누가 그럴까 싶었다. 그런데 곧 그 말이 내 얘기가 되었다. 달콤한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물다 과즙이 책장에 뚝 떨어졌을 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그 손으로 또 페이지를 넘겼다. 책이 아니라 과일 냄새가 밴 독서록이 되어버렸다.


내게 복숭아는 그냥 여름 과일이 아니다. 막 딸 때 전해지던 묵직한 감각, 껍질을 스칠 때의 까끌거림, 팔지 못하는 복숭아를 도려내 먹던 맛, 불쑥 나타나던 벌레까지… 그 모든 게 내 기억의 방 어딘가에 여전히 남아 있다.


제철 과일 코너에 들어서면 복숭아가 상자마다 빼곡하다. 백도, 황도, 딱딱이, 물렁이… 이름도 생산자도 다양하다. 나는 습관처럼 코를 가까이 대고 향을 맡는다. 빛깔을 들여다보다 보면, 문득 예전 우리 집 과수원이 겹쳐온다. 벌겋게 익은 부모님의 얼굴, 밀짚모자 아래로 흐르던 땀방울. 여름이면 나는 복숭아밭 일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 붙잡히다시피 나무 사이를 오가곤 했다. 그래서 내게 진열대 위 복숭아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온 가족이 매달려 키워낸 귀한 열매이자, 한때는 벗어나고만 싶던 여름이다.


나만의 독서 후기, by 은진


내게 복숭아가 피하고 싶던 여름이었다면, 소설 속 복숭아는 이야기를 끝까지 지탱하는 줄기였다. 과수원집 딸 빅토리아는 인디언 윌과의 사랑 앞에서 가족의 반대와 인종차별을 겪는다. 동생의 폭력으로 윌을 잃은 상처는 짐처럼 그녀를 따라다녔다. 차가운 시선 속에서 낳은 아이조차 끝내 품에 두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고난을 양분 삼아 이겨냈고, 윌이 가르쳐준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지혜로 결국 나무에서 달디단 열매를 얻는다.

열일곱 살 빅토리아의 모습은 복숭아밭에서 멀어지고만 싶던 내 나이와 겹친다. 그러나 단단히 버텨낸 그녀에 비해 그 시절의 나는 그냥 떼쓰는 아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이 유난히 진하게 다가온 건, 상상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겪은 체험이 글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셀리 리드는 콜로라도에서 지내며 홀로 캠핑을 다니고, 숲과 나무, 동물과 가까이 살아왔다. 불편과 위험을 감수했지만, 그 속에서 얻은 경험들이 글에 스며 있었다. 빅토리아가 아이를 낳고 길을 헤매다 사슴 가족을 마주하는 장면도, 작가가 실제로 목격한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따라갔다. 어미를 따르는 앙상한 새끼의 발걸음이 지친 인물뿐 아니라 내게도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넘어지고 밀려나도 다시 일어나라고.


예전 우리 집 근처는 온통 복숭아밭이었다. 봄이면 분홍빛 꽃이 흐드러졌고, 여름이면 부모님은 까다로운 복숭아에 온종일 매달리셨다. 여름방학이면 나는 까끌거리는 복숭아가 보기만 해도 싫어 도망칠 궁리만 했다. 그러나 막상 뛰쳐나가도 결국 밭 둘레를 맴돌 뿐이었다. 고생하는 가족들을 외면할 만큼 강심장은 아니었다. 과수원집 딸이라 하면 “복숭아는 실컷 먹었겠네”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토록 싫어했는데, 지금도 복숭아를 좋아한다.


대학에 들어가 정식 허가를 얻고서야 비로소 밭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예쁘고 맛있는 것만 골라 팔아 번 돈으로 내 등록금을 댄 것도 결국 복숭아나무였다. 계절은 바뀌고 자식들이 자라 집을 떠나도, 복숭아는 해마다 다시 열렸다. 이 책은 내게, 그 여름날의 땀과 달콤함을 한꺼번에 다시 데려왔다.

이번에는 속이 노랗고 달달한 황도복숭아를 집으로 데려와, 그 여름을 다시 맛봐야겠다.


흐르는 강물처럼 –셀리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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