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타임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맑은 곳>
한참을 걷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춘 곳은 도서관이었다. 시드니 외각을 여행하고 있었던 우리는 식당이나 카페를 들어가지 않는 한, 손 한 번을 씻을 수 없었다. 공중 화장실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고, 사실 괜한 곳에 들어갔다가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해서 여행의 첫날엔 무척 조심스러웠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시드니 유학생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다. 덕분에 비교적 젊은 사람들의 관심사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아침마다 어느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청년과 소통을 하게 된 덕에 시드니 시내 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스폿을 알 수 있었다. 호주 여행은 인종 차별을 경험할 수 있고, 시드니는 오페라 하우스 말고는 갈 곳이 없다는 주변 사람들의 우려와 다르게 우리는 어떠한 인종 차별도 경험하지 않았다. 오페라 하우스 외에도 오페라 하우스를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과 건축물들을 더 많이 보고 느꼈다. 다만, 그놈의 화장실이 문제였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익숙한 곳이니까, 어디서든 말이 수월하게 잘 통하니까. 화장실이 아주 멀리 있거나 보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호주는 달랐다. 이곳은 비행기로만 10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착할 수 있는 곳이고, 나의 연고란 어디에도 없으니 그 흔한 화장실도 내가 찾아야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때의 긴장감이란...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하지만 여행에도 내성이 생긴다. 하루이틀 적응할 시간을 가지면 셋째 날부터는 우리 동네처럼 이른 아침 조깅을 시도해 본다. 나는 여행 중 하버브리지에서의 조깅을 꼭 실천하고 싶었다. 정말이지 꿈만 같은 일이었는데 실천하지는 못했다.
좋은 인연 덕분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장소까지 체크했으니, 이제 마음 놓고 계획대로 여행을 하면 된다. 시드니는 올드타운과 뉴타운 모두 유서 깊은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공원을 온전히 둘러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곳이 정말 세계적인 도시였던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도시민들이 언제든 공원에서 쉼을 얻을 수 있도록 곳곳에 세심한 안전장치도 눈에 띈다. 강아지와 아이들, 학생들과 직장인들, 그리고 노인들까지. 그들은 모두 다른 목적으로 공원에 왔겠지만 나는 그들의 입가에 같은 미소가 보인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들은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조급하지 않다. 삶의 무게가 없는 사람이야 어디에 있겠냐마는 이곳만큼은 그런 걱정도 없어 보인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본 나만의 착각일 수도, 그렇게 느끼고만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다시 도서관. 우리는 공원에서의 편안한 시간을 뒤로하고 카페에서 만났던 그 청년이 알려준 화장실 스폿을 찾아갔다. 공연 옆에 위치한 도서관이었다. 우리나라의 여느 도서관과 비슷했지만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입구에서부터 아이들의 책이 정말 많았다. 책만큼 많았던 건 아이들이었는데, 아이들은 책을 들고 누워있거나 뛰고 있거나 친구와 같이 보고 있거나 혼자서 가만히 앉아 보고 있거나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아이들의 모습에 한 번 놀란 표정을 짓고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찾고 있던 그때, 도서관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우리는 여행 중이고 화장실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직원은 2층으로 안내해 준 뒤, 도서관에서 쉬어가도 된다고 말했다. 친절한 도서관 직원의 설명에 조금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 이 도서관을 마저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도서관 옥상으로 향했다.
건물 자체가 그렇게 높지 않았기 때문에 옥상을 개방하는 것 같았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고 심지어 우리가 올라갔을 때 이미 몇 팀이 옥상에서 커피 한잔과 책을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볼 법한 모양이었지만 이들에게는 그저 일상인 것 같았다. 중심가로 가면 높은 건물이 많지만 조금만 외각으로 벗어나면 모두 낮은 건물이었고, 덕분에 끝없는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시드니의 어느 도서관 옥상에서 만나는 하늘이라... 이 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는 길. 아까 그 직원이 우리를 붙잡았다. 언제든 도서관에 와서 쉬어 가도 된다고, 코로나 자가검사 키트가 필요하면 무료로 드리기도 한다고, 모두가 쉬는 공간이라고 말이다. 화장실 스폿인 줄만 알았던 시드니의 작은 도서관은 그야말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었다. 오래 걷다가 잠시 머물다 가는 쉼이란 바로 이런 곳이어야 한다는 것. 있는 그대로 와도 좋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빌려도 좋고, 누구나 친절하고 모두가 편안한 그런 곳. 여행지에서 만난 도서관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나의 일상에서는 이런 공간이 있었던가,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가 어디든 그런 공간으로 누릴 수 있었지만 망설였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는다, 하면 대부분 '여유가 있다'라고 생각한다. '책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게 현대사회의 당연한 일이 됐으니, 오히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시간적 여유가 있을 거라 여긴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전쟁을 겪은 후 이야기를 썼고, 전쟁 중에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에게 이야기란 '여유'에서 시작된 결과가 아닌 삶을 살아가기 위한 투쟁과도 같았다. 물론 헤밍웨이는 직업이 작가이니 그렇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만 그의 작품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가 작가라는 사실은 필연적이면서도 조금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가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읽고 썼을 거라 확신할 수 있다. 가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모두 음악을 듣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헤밍웨이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수많은 작가들은 그렇게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야기가 삶이 되어서 말이다. 읽어야 비로소 알게 되는 삶. 쓰는 행위로 조금이나마 흉내 내보는 삶. 삶에 대한 모든 것은 이야기가 필연적이다.
쓰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읽기의 중요성은 점차 상실되는 이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다. 집 앞이나 여행지의 화장실 스폿 같은 곳 어디서나 자유롭고 편안하게 책을 읽고 즐기겠다는 마음가짐. 누구에게 자랑하려는 지식이 아닌, 뒤처지지 않으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 아닌, 오직 나의 하루를 위한 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어렵지 않다. 무더운 여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짧은 단편들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