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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Oct 13. 2023

사랑하기 때문에

[연재]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어린 시절에 이해되지 않았던 드라마 대사가 있었다.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그리고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였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두 가지를 순서대로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엇을 먼저 먹겠는가라는 이상한 질문에 나는 언제나 맛있는 것을 먼저 먹겠다고 하는 편이었다. 맛없는 것을 먼저 먹는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조금 더 아끼는 마음에서 그런 결정을 한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엔 아끼다가 지금 이 순간을 맛있게 즐기지 못한 것이 조금 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언제나 맛있는 것을 먼저 먹었다. 이런 맥락에서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음이란 쏟아붓고 넘치게 흘러보내도 부족한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다음의 결과가 어찌 되었든 지금 이 순간에 사랑하는 그 대상과 함께하는 마음, 내가 사랑을 쏟아붓고 싶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이 원칙이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깨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너무도 헤아리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것은 두 사람과의 충분한 대화과정이나 서로에 대한 더 많은 사랑의 확인이 없기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던 거다. 때문에 '사랑은 돌아오는 것'이라는 대사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사랑하는 건 지속성이 있는데, 중간에 지속성을 잃었다는 건 처음 사랑은 곧 사랑하지 않았거나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랑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더 긴밀하게 나아가지 못한 채 머뭇거리거나 심지어 헤어지는 결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물어보고 싶었다. '사랑'에 대해서 각자 어떻게들 정의하고 있는지 말이다. 


나의 사랑은 직진만 있었다. 일단 사랑하기 시작했으면 사랑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남녀 사이에 놓여 있을 때에는 상대방이 먼저 고백을 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고 늘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좋아하는 이에게 바라는 것 없이 주는 것을 택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그래서 어쩌면 가장 이기적인 마음과도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최대한 열심히 집중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과 결혼을 모두 해보고서야 사랑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어쩌면 사랑이란 헤어질 수도, 그리고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마침 그 시점에 반려견 고동이를 입양했다. 고동이를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그들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무엇일까를 원론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사랑의 모양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고동이와 함께 산책을 하다 보면 신기한 장면을 경험한다. 반려견이 보호자와 닮은 모습이 그렇다. 어느 때는 같은 모양으로 염색을 한 보호자와 반려견을 보기도 한다. 같은 옷을 입는 것은 흔한 모양이다. 보호자와 반려견의 모습을 통해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와닿는다. 생김새만 닮는 것이 아니다. 산책하는 보호자의 표정이 무엇인가 고민에 빠져 있으면 반려견의 발걸음도 무거워 보인다. 반려견의 눈높이에 맞춰 이것저것 설명을 하며 산책길을 걷는 보호자도 있다. 그런 반려견은 코가 반짝반짝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궁금한 눈빛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보호자는 반려견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며 자신의 모양과 방법대로 그들을 대한다.


산책을 하다가 발걸음을 멈춰 마음껏 세상의 냄새를 맡게 하는 일은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 반려견이 가고 싶은 길, 맡고 싶은 냄새를 맡게 하는 일이다. 이 모든 행위는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부부의 삶은 반려견이 인간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갖춘 후에 조금은 불편하게 인간의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 불편이란 단어가 그들에게는 단순히 불편이 아니며 그저 서로 조율하는 삶이라고 정리한다. 이 모든 출발은 인간이 사랑하는 반려견을 위한 일로 시작한 일이며 그런 일들을 반복하며 살아갈 때 서로가 살아가는 환경은 비슷해진다. 물론 모습이 닮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닮았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한 증거나 다름없다.


나는 나의 반려견 고동이를 통해 사랑의 지평을 넓혔다. 사랑하면 헤어질 수도 있는 것. 사랑하면 놓아줄 때도 있는 것. 사랑하면 본연의 자리로 되돌려 줘야 할 수도 있는 것. 나와 닮아가지만 결국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쏟아붓는 것만이 사랑의 모양은 아니라는 것. 내 방식의 사랑의 표현보다 때로는 네가 나에게 전하는 사랑의 표현에 귀를 기울이고 잠잠히 기다리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말할 수 있음을 알았다. 신기한 것은 동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으로 인간의 사랑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결국에 생명을 대하고 사랑하는 과정 안에 연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과 모양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나와 다른 사랑의 모양에 오해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도 내가 사랑을 조금 더 다른 모양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된 계기와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기다리는 사랑'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어미가 새끼를 낳고 새끼가 스스로 걷기를 기다리거나 무리에서 떨어진 한 생명을 온 무리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도 눈치를 채고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거나 절벽 아래로 떨어져야만 날갯짓을 할 수 있는 어떤 새의 가족은 이제 막 도움닫기를 하려는 아기새를 몰아세우지 않고 몇 번의 시도를 기다려준다. 그것은 모두 그 생명들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응원하는 마음이다. 동물들은 이 마음이 본능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관점이 얼마나 지협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내가 사랑이라 믿고 있던 감정의 요동침을 잠잠히 하고 상대방이 온전해지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진정 사랑이라는 것을 동물들은 알려준다. 


인간은 얼마든지 동물을 지배하고 인간이 원하는 방향성대로 동물을 제어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갖추고 있지만 인간이 동물의 모습대로 살아간다면 인간은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닌 포획자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막대기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야생과 자연은 무시무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토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과 동시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이라 정의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고 그래서 모든 것을 잘 갖추고 있다는 이 아이러니한 마음들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이 눈앞에 놓여 있을 때 두 가지 모두 순서대로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면 눈에 보이는 것부터 먹을 수도 있고 순서를 정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먹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동물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동물과 같은 완벽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지만 (물론 비슷해질 수 있고 충분히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물의 입장과 동물의 발걸음에 충분히 맞춰갈 수 있는 능력이 얼마든지 갖춰져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내가 오랜 세월 사랑에 대하여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이 어느 순간 다른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며 그렇기에 나는 우리가 오늘날 지구에 펼쳐진 수많은 문제들 앞에 좌절하지 않고 보다 더 다양하고 새로운 관점의 사랑의 모양으로 인간은 동물과 지구를 바라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다만 나에게는 이와 같이 사랑에 대한 열린 마음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할 뿐이며, 이와 같이 사랑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이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나아가 내가 조금 더 다양한 모양의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된 동물들에게 그저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삶이 보장되기를 바랄 뿐이다. 


결과적으로 사랑이란 돌아올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 모든 사랑은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대상을 진정으로 사랑했을 때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들이었다. 나는 진정한 사랑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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