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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바질 Feb 14. 2024

손맛 가득한 나의 그릇들

나의 작은 부엌살림살이에 관하여_그릇

결혼 전 이야기이니 지금으로부터 몇 해 전 이야기이다. 친정집 거실에서 보이던 한 공방이 있었는데, 그곳을 지나칠 때면 엄마와 나는 “저 집 장사는 되나?”라며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곤 하였다. 그렇게 물음표만 달고 다니다가 결혼을 앞둔 직전 해, 엄마 생신을 맞아 우리 가족은 도자기 체험을 하게 되었다. 연배가 있어 보이시는 선생님께서 얕은 에어컨 바람과 함께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엄마는 생선을 무척 좋아하시지만, 이렇다 할만한 생선 그릇을 갖고 있지 않으셨던 터라 나는 생선 그릇을 만들었다. 한쪽은 생선 머리처럼 타원형으로 빚었고, 뒷부분은 네모나게 만들었다. 별거 아닌 작업 같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엄마는 항상 손재주가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데, 그래서인지 흙 속을 한참 헤매시다가 선생님과 함께 그릇을 완성하셨다. 아빠의 경우, 원래 손재주가 좋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처음 만드는 그릇까지 잘 만드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선생님께서도 아빠의 실력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아빠에게 ‘혼수 그릇 세트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아빠는 엄마와 나처럼 똥손인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금손이라 본인의 실력을 낮추며 극구 부인하셨다. 엄마와 나는 “아빠가 만들어준 그릇, 얼마나 의미 있고 좋아?”라는 말을 얼마나 말하였는지 모르겠다. 결국 아빠는 승낙하셨고, 초보자는 하기 어렵다는 물레로 세 달 만에 엄청나게 많은 그릇을 만드셨다. 완성된 많은 그릇을 두고 부모님과 나는 예쁜 것들을 추려내어 드디어 혼수 그릇 세트를 갖게 되었다.     


내가 혼수 그릇을 갖게 되었지만, 성에 차지 않으셨던 아빠는 그릇들을 계속해서 만드셨다. 하지만, 그 그릇들은 구워지지 못한 채 다시 흙으로 돌아갔다. 선생님은 당시 암이셨는데, 아빠가 잠시 쉰다고 하셨던 사이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새해의 들뜬 기쁨이 사그라드는 이맘때 저녁 설거지를 할 때면 선생님이 생각난다. 손맛 가득한 나의 혼수 그릇은 이렇게 만들어졌고, 그렇게 사라졌다.      


나에게 혼수 그릇이 남았다면, 부모님께는 '도자기 만들기'라는 취미 활동이 생겼다. 부모님은 도자기를 1년가량 만드시면서 나에게 새로운 그릇들을 다시 선보이셨고, 나는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그릇으로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 예뻐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존재여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그릇들.      


유행하는 모양도 색도 아닌 그릇들인데도 질리지 않고 사용 중인 것이 가끔은 갸우뚱하다. 물건이 질리지 않는다는 것. 참 신기하다. 마음과 마음이 녹아들어 가는 순간, 그 물건은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것 같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잘 지내야지. 우리, 오래도록 잘 지내보자!


구운 도자기 그릇 아랫부분 사포질 역시 아빠가 해주셨다. '결혼을 진짜 하는구나.' 실감했던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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