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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Feb 06. 2024

흰둥이와의 하룻밤

나의 작은 독립 공간에서 특별한 손님과 함께 한 하룻밤

*짧은 일상 이야기가 담긴 소설입니다. 이 글을 써야 오늘 하루가 진전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생각나는 대로 써 본 소설입니다. 편하게 읽어주세요.*


작은 마법의 가루가 솔솔 뿌려진 듯, 흰둥이는 그렇게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직장인이다. 정확히는 독립한 지 얼마 안 되는 미혼의 직장인이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눈 대신, 팔과 손이, 손가락의 촉감의 눈으로 알람을 보고 꺼준다.


출근은 여러 개의 약속이 맞물려 있다. 내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약속, 아침 9시까지 가야 지각이 아닌 출근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약속, 그 약속이 지켜지면 월급이 내 통장으로 들어오겠다는 약속.


얼마 전 독립해서 직장 근처로 이사하기 전까진, 지하철공사는 나에게 정해진 시간에 차를 탈 수 있게 해 준다는 약속도 있었다. 나는 그 대신 지하철 요금을 지급해야 하는 약속을 했다.


이 수많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작은 일상의 붕괴가 큰 나비효과가 될 수 있기에- 벗어나기엔 달콤한 이불을 걷고 일어나 본다. 몸의 시계에게 아침을 알려주어야기에 블라인드를 걷고 햇빛을 방안에 들여와 본다.


오늘은 비가 오려는지 어둑한 아침이다.


아침은 다양한 표정으로 나타난다. 그 아침의 표정은 오늘 내가 만날 직장 동료- 내지는 상사의 표정처럼- 어떻게 나타날지 아침이 되기 전엔 아무도 모른다. 예측 불가능한 매력이 있는 게 아침의 표정일 것이다.


독립한 내 작은 오피스텔 방에는 나만의 취향이 가득하다. 내 취향만으로 덮인 물건들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입구에는 상큼 달콤한 향의 디퓨저를 올려놨고, 입구 가까이에 작은 욕실이 있다.


욕실 문을 열면, 세면대에는 보랏빛 라벤더 비누가 날아가는 작은 새 모양이 새겨진 채 놓여있다.


날아가는 작은 보랏빛 새를 생각하며, 얼굴을 씻고, 상쾌한 향의 치약으로 치카치카 양치도 한다. 가벼운 샤워를 마치고 제2의 얼굴인 메이크업을 하면 출근 준비의 50%는 완성된 셈이다.


물과 영양제를 먹고, 마음 편히 입고 일할 수 있는 편안하면서도 촉감이 좋은 옷과 가방을 몸에 걸친다. 아 참! 비가 올 것만 같았지. 작은 접이식 우산도 가방에 넣어본다. 조명을 끄고 나가면 출근길의 시작이다.


15분 정도 걸어가면 직장이 나온다. 직장 근처에 오니, 백반집들이 오픈 준비를 시작하는지 모락모락 하얀 김이 난다. 카페는 벌써 무인 자판기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하나 둘 무언가와 약속한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기 시작한다.


익숙하게 직장에 들어선다. 내 자리에 앉아 시계를 보니 9시 10분 전이다. 나쁘지 않다. 동료들과 가벼운 인사를 하고 바로 난 본론인 업무를 시작한다.


나에게는 오랜 시간 함께한 몰티즈 강아지가 있었다. 너무 예뻐한 아이였는데, 무지개다리를 건넌 다음에는 다른 아이를 데려올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 아이를 대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독립하면서 내 마음에 살아있는 그 아이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 2주? 3주? 난 아직도 그 공간의 정리를 끝내지 못했다. 우선 필수로 필요한 것들만 집에 채워놓았다. 이 공간에 정들다 보면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여러 일이 생겨서 내 가구라고는 침대 하나, PC하나 가져오고, 나머지는 붙박이 가구에 적당히 담아두었다. 평일에는 밖에서 세끼 식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계속 펼쳐졌다. 집에 들어오면, 샤워하고 잠을 자기만도 벅찼다.


매일 낯선 집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난 빠르게 잠이 들었다. 이제 겨우 겪은 두어 번의 주말은 청소를 하고, 쉬느라 또 무언가를 할 겨를이 없었다. 효율적으로 잘 채워야 할 공간에 아직은 비어있는 여력이 있다.


독립을 하면, 요리 재료를 사서 잘 손질을 해 요리를 하고, 청소를 매일 같이 하고, 와인 한잔에 영화 한 편을 보고, 주말엔 친구들에게 멋진 인테리어 감각을 살린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될 줄 알았는데..


독립을 했는데도, 그것도 노력해야 얻는 독립의 로망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부족한 대로 재밌다. 여행도 떠나기 전이 제일 설레듯. 이제 내가 내 삶을 혼자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의 성취였다.


그리고 매일매일 무언가 집이라는 공간은 숙제를 준다. 내가 이제는 알아보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설렘 속에 나는 이 독립을 적응하고 받아들여가고 있다.


하늘로 보낸 우리 몰티즈 아가 대신 나에게는 우리 아가와 닮은 듯- 다른 매력이 있는 흰둥이라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친한 친구의 강아지인 흰둥이는 숨 쉬고 있는 그 자체가 매력이다. 그냥 있는 모습도 귀엽다.


친구가 전해주는 흰둥이의 사진과 영상은 나에게 힐링 그 자체다. 흰둥이도 몰티즈다. 같은 몰티즈여도 예전 우리 아가와는 다른 모습의 강아지다. 흰둥이는 흰둥이 그 자체로 그냥 좋다. 흰둥이는 흰둥이다.


이름이 어쩐지 짱구는 못말려에 나오는 강아지 이름과 닮았지만, 친구의 흰둥이는 또 다른 흰둥이다.


점심쯤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친구는 예전에 독립했는데, 이번에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다. 친구가 짐을 싸는 동안 흰둥이는 바뀌어 가는 환경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점점 짐이 빠져가는 모습에 불안했는지, 어제는 급기야 자신의 잠자리가 아닌 펼쳐 놓은 작은 검은 가방 안에 몸을 쏙 집어넣고 들어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친구가 부탁한다. 흰둥이가 불안해하고, 집이 점점 텅 비어가니, 오늘 흰둥이를 너가 데려가 보아줄 수 있겠냐고. 이사 완료하면 흰둥이를 데려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흰둥이가 퇴근길에 우리 집에 왔다.


자주 흰둥이와 놀았던 탓인지 그렇게 또다시 만난 흰둥이는 나를 보고 어색해하지 않는다. 흰둥이는 마구 활발한 아이는 아니다. 얌전하면서도 기분이 좋을 때는 발걸음을 가볍게 통통이며 뛰는 순하디 순한 흰둥이다.


오늘 펼쳐지는 공간은 또 흰둥이에게 새로운 환경이다. 흰둥이는 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나의 독립공간을 한 바퀴 돌며 순찰한다. 그리고는 어디에 있어야 할지 나의 눈을 쳐다본다.


주인 없이, 그리고 바뀌는 환경에 어제, 오늘, 내일 이렇게 3일을 적응해야 하는 흰둥이. 흰둥이에게는 사람도 스트레스받는다는 이사 스트레스가 닥친 것이다. 사람이 아니기에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모를 텐데, 그저 흰둥이는 알고 있던 세상이 사라지니 두려웠을 것이다.


조용히 흰둥이를 안고 쓰다듬어 준다. 그리고 평소 흰둥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정처 없이 집을 배회하던 흰둥이는 어디서 화장실을 가야 할지 찾기 시작한다.


구석에 놓인 배변 패드를 발견하고는 그 위에 올라서서 내 눈을 바라본다. "거기에 쉬해도 돼" 나의 한 마디에 흰둥이는 그제야 예의 바른 눈빛을 거두고 배변을 본다. 배변을 하면서도 어떻게 어디에 해야 할지 살피는 흰둥이.


오늘은 흰둥이가 마음을 조금은 놓고 쉴 수 있을까. 마치 사람처럼 다른 공간에 여행 와서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게 오늘은 우리집이란다면, 참 좋겠다.


PC모니터에 유튜브 음악을 연결해 놓고, 잠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작은 마법의 가루가 솔솔 뿌려진 듯, 흰둥이는 그렇게 잠이 들어 있었다."


아직도 빈틈이 많아 테이블이 없어 보관 케이스를 식탁으로 쓰고 있고, 침대만 덩그러니 있는 내 공간에서 흰둥이는 회색 이불을 포근한 구름 삼아 정신없이 몸을 큰 대자로 펴고는 잠을 잔다.


침대 위에 올려진 강아지 인형 때문일까, 코끼리 인형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나의 잠솔솔 베개 때문일까. 흰둥이는 그렇게 어제 못 잔 그 잠을 마음 놓고 여기서 잔다.


아마도 액자 속 나의 예전 몰티즈 아가가 흰둥이의 꿈속에서 친구가 되어준 걸까.


그렇게 뽀도독 잠이 든 흰둥이 옆에서 나도 주말을 맞이한다. 아직 정리가 덜 된 나의 이 작은 독립 공간이.. 그래도 포근한가 보다. 흰둥이에게 포근했다면 지금, 나에게도 그렇다.


내일은 흰둥이가 친구의 새 집에서 새 정착지 모험을 하고, 마음을 놓고 푹 잠을 잘 수 있기를. 나도 좀 더 허전한 새로운 미지의 영역들을 조금 더 채워가봐야겠다.


독립하고 맞이한 나의 특별한 손님. 흰둥이와의 하룻밤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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