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사회, 과학책을 읽어대는 현대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스스로의 행복을 찾지 못해 파랑새를 찾듯 먼 길을 돌아 다닌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단지 그런 자문의 결과와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가갈 엄두가 안나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며 살던 내가 ‘누추한 내 자신’과 직면한 것은 이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였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향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정글짐.
운동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 맞게 턱걸이도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 정글짐을 발견한 나는 학창 시절을 생각하며 호기롭게 뛰어 들었다.
그리고 직면했다.
늘어진 뱃살을 출렁이며 매달려서 단 한번도 자기 몸뚱이를 제대로 땡기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그게 나였고.
그게 평소에 X가 바라보던 이였으리라.
내 스스로 보기 싫은 내 자신을 다른 사람들은 보고 싶을까?
남이 어떻게 보던 뭔 상관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는 패기는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혼한 사람의 입장에서 발견한 나의 누추한 모습은 새로운 시작의 걸림돌이 되고도 충분했다.
평생 혼자 산다면 모를까 난 이혼 후에도 사랑하고 사랑 받으면서 살고 싶으니까.
사랑받고 싶으면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두시간을 걷고 턱걸이 횟수를 올리며 저녁 대신 견과류를 먹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저녁 대신 견과류 다이어트는 왠만해서 추천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몰라도 나이 먹고서 그렇게 다이어트 하면 내가 죽던가 아니면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진다.
턱걸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내 몸매는 대학 때와 상당히 근접해졌고 버리지 못하고 모셔 놓은 맞춤 정장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는 받게 된 이혼 후 첫 데이트 신청.
오 예스!
누추한 나에게서 벗어나는 첫번째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나를 관리하는 것.
난 몸짱이 되고 싶지도 않고 크게 외모를 꾸미지도 않는다.
단지 낮디 낮은 스스로의 만족도를 충족 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데이트에 나가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누추했던 부분이 남아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