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엔 둘레길을 걷는다. 둘레길 초입(반대편에서 보면 끝이라 하겠다.)에 있는 아담한 절이 있는데 불자는 아니어도 매번 들려서 세 곳에 절을 올리고 간다. 첫 번째는 대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계단을 올라서 중간쯤에 작은 대웅전 안에서 절을 올린다.
마지막으로 가파른 계단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작은 암자에 들려 호랑이 등에 앉아 계시는 신령님께 절을 올린 후 문턱에 걸쳐서 잠시 앉아 있는데 옆에 장지갑이 눈에 들어온다. 보아하니 일반 양품점에서 파는 것이 아니고 불교용품 전문점에서 샀는지 베이지색 바탕 지갑 표면에는 큰 글씨로 써진 佛자와 불교의 경전 구절이 새겨져 있다.
지갑을 열자 파란색 만 원권이 열 장 정도와 오천 원 권 두세 장 천 원짜리가 몇 장 들어 있어 제법 두툼하였다. 순간 ‘이대로 둘까?’ 하다가 생각이 바뀌어서 사무실에 찾아가서절을 지키는 분께 꼭대기 암자에 누가 두고 간 지갑이 있어서 가져왔는데 잃어버린 사람이 찾으러 오면 주라고 건넨 다음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둘레길로 향했다.
집에 와서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자랑삼아 이야기를 했더니...
“잃어버린 물건은 차라리 그냥 그 자리에 두는 것이 제일 좋은데 왜 그랬냐”라고 한다. 나는 지갑이었고, 그 안에 돈이 있기에 주인 아닌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 있어 염려 때문에 그랬다고 하니까 나더러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묻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맞은데 혹여 안에 든 내용에 대해 틀리다고 하면 어쩔 건데 하고 말한다. 나는 “에이~ 설마 그러겠어 고맙다고 하지 않을지언정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랑 다를 게 뭐 있는가?”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나 역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이사 온 지도 어엿 30년이 넘었다. 도시 생활을 하면서 내가 살았던 시골과 정서적으로 맞지 않은 부분이 생길 때마다 고개를 갸웃했었다.
가령 업무적이든 사적이든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상대가 스스로 지위를 높이거나 부풀려서 말을 하면 사실대로 받아들였고, 다음을 기약하는 약속도 지키려니 했는데 막상 보면 지나가는 빈말 인사도 많았었다.
도시 생활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겪다 보니 나에게 생긴 것은 흡수되고 동화됨으로써생긴못된 불신이었고, 그런 일을 조금씩 겪다 보니 이제는 나도 성격 바탕에 깔린 순수성이 많이 퇴색하여 누가 뭐라고 하면 ‘정말일까?’ 하는 의심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생활 방식이 정녕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가 올 실망과 상처에 대비한 방어 수단으로 삼는다.
아내의 조언을 삶의 지혜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에는 또 조심성 없는 행동이라고 여겨지니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과 삶의 왕도는 무엇인지에대해 조용히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