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 하연의 이야기
나에게 사랑은 굉장히 멀리 있는 존재였다.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정말로 존재할까?'라며 의문을 품기도 하던 나에게, 삶에서 가장 큰 가치로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꽤나 반갑고 어찌 보면 경이롭게도 느껴진다. 하연도 그중 한 명이다.
하연에게 사랑은 목숨과도 같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그녀는 이번 <소마 2023>과 포터뷰 7월호를 함께했다.
사랑이 없으면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하연. 누군가가 보기에는 사소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에도 깊은 사랑을 부여할 수 있는 그녀가 다감하고 따뜻하다고 느껴져 한편으로는 부러움이 들었다. 그녀의 사랑은 어떤 모양을 띠고 있는 것일까.
오늘의 주제로 '사랑'을 고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제가 사랑 빼면 시체예요. (웃음) 제가 계속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사랑을 고른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친구들끼리 사랑할 수도 있고. 저는 좀 물건을 사랑하는 편이에요.
어떤 물건을 사랑하시나요? 절대 못 버리는 애착하는 물건들이 있어요. 저와 나이가 똑같은 인형이 있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백화점에서 직접 골라서 샀는데, 아직도 제 친구예요. 슬플 때 가끔씩 말을 걸어요. (웃음) 혼자서라도 위로받는 느낌?
무언가 제가 생각해보지 못한 사랑의 느낌이네요. 제가 무언가에 의지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의지할 대상이 필요한 느낌일까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굳이 의지를 하지 않아도 사랑할 순 있지만, 의지하는 것 자체가 제가 하는 사랑의 방식인 것 같아요.
사랑의 방식과 모양은 정말 다양하다는 걸 살아가며 많이 느껴요.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다면 여기서 오는 단점을 느낀 적도 있어요? 그렇죠. 일단 사람은 자기한테 의지하려고 하면 부담을 느껴요. 부담을 느끼고 도망가죠. 저는 저의 의지가 필요한 사랑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잘 만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것도 나의 사랑의 방식인데. 그냥 무작정 얘는 홀로서기를 못하는 사람, 으로 받아들여지니까. 저로서는 되게 억울한 거죠. 지금 남자친구는 제가 의지하는 걸 되게 좋아해 줘요. 그리고 처음으로 알아줬어요. 이게 제 사랑의 방식이라는 걸요.
너무 좋네요. 그럼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사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살면서 이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제가 성격이 되게 까다롭거든요. (웃음) 예민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요. 제 마음에 드는 게 잘 없어요. 그러니까 제 마음에 드는 것들을 세상에서 찾기가 어려운 거죠. 그런데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찾으면, 저는 그걸 끝까지 지키고 싶어요. 그래서 애착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또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굉장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네요. 그런 자신에게는 만족해요? 사실 살기에는 조금 힘들어요.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는 것 자체가 재미가 없게 느껴질 때도 가끔 있고요. 무언가에 실망한 적이 많으니까, 도전적이기보다는 기대를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보장된 선택을 하시겠네요. 안전한 선택들을 추구하면서요. 그런데 또 이게 안정감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데, 사실 제 마음에 들고 싶은 거죠.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실 그래서 힘들 때도 꽤 있어요. 그냥 나도 무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렇지만 무디지 않아서 좋은 것도 있지 않아요? 그렇죠.
저는 사실 사랑과 굉장히 먼 사람이었어요. 사랑에 관해 크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고요. 그런데 최근에 정말 많은 걸 사랑하는 친구를 알게 되었어요. 정말 사랑이 샘솟는 친구를 만났거든요. 그래서 요즘 되게 재미있는 나날을 저는 요즘 세상이 사랑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생각을 오래 했거든요. 맞아요.
그래서 전 되게 신기해요. 사랑에 큰 초점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에게 사랑은 제 목숨과도 같아요. 없으면 살아가지 못해요.
왜 그렇게 중요해요? 정말 궁금해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이, 제 속을 하나씩 하나씩 채우고 있는 느낌이에요. 예를 들자면 발은 담요, 손은 인형, 가슴은 연인 부모님 친구... 이런 식으로요. 제가 의지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요. 사랑이 없다면 못 살 것 같아요. (잠시)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보자면 제 기준에 부합하고 저랑 결이 맞고, 그런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행위가 0살부터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그게 어떤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만약에 제가 이 바스켓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얘가 갑자기 불타서 없어졌어요. 그럼 전 얘 같은 애를 찾으러 온 동네를 돌아다닐 거예요.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절망하겠죠. 무조건 내 마음에 드는 걸 찾아다니는데,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고.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 저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이야기하고... 이런 과정이 싫은 거죠. 그러니까 리셋된 느낌. 못 살 것 같아요. 약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용기가 많이 없어서. 그래서 새로운 사람 사귀는 게 참 힘들어요.
그렇겠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시작한다는 건 그렇게 힘든 일로 하연 씨에게 다가올 것 같아요.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좋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요. 사실 저도 그렇게 좋게 바라볼 수만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힘드니까요. 이미 내 온몸을 꽁꽁 감싸고. 내 마음에 다 들어가 감동을 주고, 나누고 했던 것들이 없어지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저는 그래서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게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긍정적인 사람이 가진 매력이 있잖아요.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겉으로만 긍정적인 듯 행동하고 속으로는 사실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무디고 예민하지 않은 것에서 긍정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맞아요. 어쨌든 긍정적이지 못하게 되는 게 예민하고 걱정이 많고, 그런 데에서 발현이 되는 것 같아서요. 생각이 많다보니까 어떤 좋지 못한 결과도 예상해보고, 다른 변수도 고민해보고 하게 되니까요. 저는 긍정적인 사람도, 사랑을 알고 있는 사람도 다 신기하고 너무 부럽다고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이게 사랑이구나'하고 아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지 않나요? 그런가요? 전 사실 마음에 들면 다 사랑인 것 같아요. (웃음)
누군가는 어렵다고 느끼는 걸, 어렵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건 또 그것대로 축복 아닐까요?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는 걸 쉽게 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가 사랑한다고 느낀 것에 더 애착이 가는 게, 얘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 순간에 얘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 사람 같은 사람은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그런데 특히 연인에게 그렇게 하면 도망가더라고요.
그게 참 신기한 차이인 것 같아요. 사랑을 하거나 받을 때,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는 것과 사랑이 너무 큰 의지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 한 끗 차이일 수 있는 거잖아요. 한 끗 차이라도 또 스스로는 그 둘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고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어렵고 재미있다고 느껴요. 저는 사실 무언가 정말 사랑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크게 없거든요. 연애를 해도 그냥 그냥, 무언가를 아껴도 그냥 그냥. 정말로 '사랑'한다기보다는 이게 사랑인가 봐, 정도의 느낌만 느껴본 것 같아요. 저는 모든 것에 사랑의 의미를 부여해요. 사소한 선물이라든지 행동에서라도. 제가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라는 걸 느껴요. 그나저나 제가 어제 포터뷰 때 무슨 질문을 하실까, 계속 생각을 해 봤는데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되게 새로워요. 그래서 또 한 번 깨우쳤어요. 사람마다 사랑이란 다 다르구나, 하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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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SOMMAR CHO
photographer SOMMAR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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