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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문 May 03. 2023

쉽지 않았던 일 구하기_1

마지막 기회야, 알겠어?


역시나 공원은 예뻤다. 너무 넓어서 다 돌아보진 못 했지만, 조금 들어가 그 넓은 공원 가운데 서있는 것만 해도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코리아 타운도 가보았다. 순두부찌개부터 곱창, 만둣국, 붕어빵, 호두과자 등 안 파는 게 없어서 행복했다. 돈 많이 벌어서 많이 사 먹으러 와야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카페에 'Now Hiring(구인 중입니다)'라고 쓰여 있는 작은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그래, 집을 구했으니 이제는 일을 구할 차례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750불 월세를 낼 수는 없다.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서 외국 회사에 취직하는 멋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아르바이트밖에 해보지 못한 대학생이었기에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름 짧게나마 홀서빙 알바와 커피 만드는 일을 해봤기에, 지나가다 눈에 띄는 포스터들 또한 대부분 서버와 바리스타를 구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지냈던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Smart serve'라는 자격증이 필요했다. 주류를 엄격하게 다루는 국가여서 그런지 올바른 주류 서빙 방법을 배웠다는 걸 증명해야만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Smart serve는 학원을 다닐 필요 없이 인터넷으로 배우고 응시할 수 있다. 방법은 그렇게 쉬웠지만, 내용은 쉽지가 않았다. 수많은 영어 활자들을 보니 머리가 돌처럼 굳는 게 느껴졌다. 집에서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집중력을 잃고 그림을 그리고 있거나,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음료를 하나 더 시킬까 고민에 빠지곤 했다. 아직 구직은 시작도 못했는데, 자격증 공부는 챕터 1에서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시험은 일단 제쳐두고, Kijiji 사이트에 들어갔다. 이전에 말했듯이, Kijiji는 룸렌트 글을 올리기도 하지만, 구인구직 글을 올리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이력서를 만들어 파일로 가져왔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구인글을 발견하면 바로바로 지원할 수 있었다. 아직 홀서빙은 자격증이 없어 지원할 수 없었기에 바리스타를 검색해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이럴 수가, 오후 2시 반까지 인터뷰를 보러 오라는 메일이 하나 와있었다! 어제 아무 생각 없이 지원했던 곳들 중에 한 곳에서 나를 부른 것이다. 신기하면서, 두근거리면서, 빨리 준비해서 나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떨리기도 했다. 부랴부랴 인터뷰 준비를 하고 최대한 단정하게 꾸며 스트릿카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처음 타본 스트릿카는 그냥 느릿느릿한 버스 같았다.



가게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도착한 게 흠이었지만. 1시간이나 일찍 와버려서 옆에 있는 팀홀튼 카페에 들어갔다. 이곳에 와서 영어를 뱉어본 적이 별로 없어 사실 주문하기가 꺼려졌는데, 다행히 키오스크가 있었다. 따뜻한 음료를 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대로 준비하지 못한 인터뷰 예상 질문과 대답들을 입으로 줄줄 외웠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2시 20분이 고, 나는 면접을 보러 가게에 들어갔다. 2층까지 있는 생각보다  나이 또래의 여자애들 셋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앞에서 쭈뼛대고 있자 명이 내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 물었다. 나는 면접을 보러 왔다고 했다. 그러자 친구는 2층에서 올라간 직원들만의 공간으로 안내했다. 옷가지를 정리하고 사장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런데…. 영어가 정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들리는데 목소리까지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단어 가지만 알아듣고 어물쩍 대답을 했다. 바리스타, 아메리카노, 카페 라떼, 카푸치노. 떨리는 목소리로 Yes, I can.이라 대답했다. 토요일, 일요일, 아침, 빠르고 바쁘게. 나는 Okay, yes, yes.라고 대답했다. 있는 말이 'Yes'밖에 없었다. 예스맨이 나는 마지막에 사장이 내일 아침 9시에 보자고 하는 말에 처음으로 Yes가 아닌 thank you.라는 말을 뱉었다. 참혹한 나의 영어 실력에 기가 죽었다. 그래도 다음 트라이얼을 해보자는 말을 들었때문에 아직 기회가 있다 생각했다. 실력으로 보여줘서 구직을 성공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잠깐 내린 비가 그쳐 있었다. 다음 날 트라이얼이 있지만 그래도 다른 곳에도 계속해서 지원해봐야 했기에 이력서를 출력하러 갔다. 한국에서는 보통 아르바이트 어플이나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구인구직을 하지만, 이곳에서는 나름 '구인 중' 포스터도 많이 붙어있고 오프라인으로도 많이 지원하는 것 같았다. 10장 정도를 출력하고 터덜터덜 한인마트에 가서 삼겹살과 냉동 만두를 샀다. 삼겹살은 Thin(얇은 것)과 Thick(두꺼운 것)이 있었는데, 얇은 건 12불이고 두꺼운 건 18불이었다. 두꺼운 삼겹살을 좋아하지만 무직인 지금 감히 18불짜리를 고를 수는 없어 Thin을 구매했다. 속상했다. 불편한 로퍼때문에 발이 너무 아파 바로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트라이얼을 가야 하니까 Smart serve 자격증 공부를 조금 더 하다가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9시, 나는 가게에 트라이얼을 하러 갔다. 사장은 내게 '너 어느 포지션이라고 했지?'라고 물었다. 이걸 그새 잊어버렸나? 나는 조그맣게 '바리스타요.'라 답했다. 사장은 메뉴판을 갖다 주며 여기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모든 메뉴를 다 외우고, 외운 다음에 자신을 부르라 했다. 구석에 앉아 영어 메뉴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외우기 시작했다. 그런 내게 어제 본 세 명의 서버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그랬던 것일까, 와서 뭐라 뭐라 물어봤는데 나는 알아듣지 못해서 'Sorry?'라 되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내게 무슨 말을 건넸다. 말이 너무 빨라서 벙쪄있으니까 한숨을 쉬더니 'Na~~~ me~~~(이~~~ 름~~~)'이라고 했다. 아, 이름을 물어본 거구나. 이것조차 못 알아듣다니 정말 부끄러워서 구석으로 숨고 싶었다. 그 친구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건지 금방 자리를 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떨구어 메뉴판을 줄줄 외웠고, 어느 정도 외운 뒤에는 사장을 불러 외웠다고 했다. 사장은 카푸치노 한잔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내리고 우유를 부어 내놓았다. 그랬더니 사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내게 그렇게 느려선 된다고 말했다. 난 다시 예스맨이 되어 더 빨리 만들겠다고 대답했다.




가게가 오픈했고 손님들이 들어왔다. 아침이라 그런지 커피 음료 주문이 많아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솔직히 이렇다 실수 없이, 클레임도 없이 '아 오늘 잘했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을 뿌듯하게 해냈다. 약 3시간 정도가 지나자 사장이 나를 불렀다. 잘했다고 말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너는 너무 일처리가 느리고 너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네. 너는 웨이트리스 애들이 도와줘선 안 되고 bar에서 혼자 일해야 하는 거야. 그렇게 느리면 일을 시켜줄 수 없어. 내가 다음 주에 한 번 더 너를 부를 건데, 그때 와서 잘하면 뽑아줄게. 마지막 기회야. 여기에다가 네 폰 번호랑 이름 적고 가. 다음 주에 전화할 테니까 그때 한 번 더 나와. LAST CHANCE, Okay?'


와다다 말하는 사장의 말에 나는 순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 얼굴 표정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처음이니까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어봐가면서 일한 건데. 냉장고에 뭐가 들어있는지, 하얀 소스통 안에 든 게 캐러멜인지 초코시럽인지, 새 얼음통이 어디에 있는지 처음인 내가 혼자서 어떻게 아느냔 말이다. 시킨 일 다 하고 주문받은 음료 다 만들고 손님들도 불만이 없었는데 저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확 나빠졌다. 다음 주에 와봤자 더 잘할 자신이 없었고 똑같은 말을 들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엔 'Yes'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나오긴 했지만, 이곳에 다시 오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빨리빨리의 나라' 한국에서도 문제 없이 일했던 나의 가치를 아보지 못하는 곳이라니. 나도 사장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다른 웨이트리스들은 친해지면 좋았겠지만··· 영어를 너무 못해서 친해지기 어려웠을 거고, 나는 이렇게 바쁜 데에서 일하고 싶진 않고, 또···. 괜히 불만스러운 말들만 터져 나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자격증 공부도 제쳐두고 누웠다. 그래, 이름도 못 말할 만큼 영어도 못하고 일도 느려 터졌으니 써줄리가 없지. 하, 대체 캐나다가 뭐가 좋은 나라라는 거지? 난 왜 이곳에 와서 괜히 고생을 하고 있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리를 뒤덮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의 마지막 기회를 날린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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