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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껍질 Mar 01. 2024

방송 출연은 이렇게 하게 되는 거구나

엄마의 집짓기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왔습니다!”라는 브런치 첫 알림을 받고 내가 작가님이구나, 약간의 감동을 느끼며 접속했다. 그런데 엄마아빠가 가장 애정하고, 그래서 나도 제법 익숙해진 ‘EBS 건축탐구 집’ 프로그램의 작가님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글을 아주 재밌게 읽었고, 방송 출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내용에 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사고 쳤어, 나 오늘부터 효녀라고 불러”라는 맥락 없는 말에 어이없어하는 엄마에게 사실 엄마의 집 짓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고, 엄마가 나의 창작에 참견하지 않겠다고 하면 보여주겠다고, 아무튼 중요한 건 건축탐구 집에서 출현 제의가 왔다고 속사포로 쏟아냈다.


감탄사를 연발하던 엄마와 퇴근 후 이야기하기로 하고, 회사 동기들과 밥을 먹으며 “나 좋은 일 있다! 근데 비밀이야”, 하니 로또가 된 거냐, 청약이 된 거냐 했다. 기분이 너무 좋고 동기들의 반응도 재밌어서 점심시간 내내 함빡 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이맘때 엄마는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고, 그럼 덩달아 예민해지는 기분이 들어 말다툼이 종종 있었다. 안쓰럽고 힘든 게 눈에 보여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말은 또 예쁘게 안 나와서 대화 끝에는 항상 속상한 마음이 남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마침 글을 쓰고 싶다,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한가득이어서 천안에 다녀온 다음 날 두 편의 글을 뚝딱 써서 브런치 작가로 지원했다. 그리고 며칠 뒤 연재를 축하한다는 메일을 받고 본격적으로 부모님의 천안 생활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냅다 "나랑 오늘 인터뷰해 줘" 하고, “이번주는 어떤 작업했어?"라며 만날 때마다 묻고, "건축 현장 사진 진짜 그냥 다 찍어둬 그거 다 그 순간에만 담을 수 있는 거야"라는 말로 시작해서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큰딸이었다. 이야기를 해주면 열심히 듣기는 하는데, 10편의 글이 쌓여갈 때까지 도대체 딸이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궁금해했을 부모님의 마음도 알고 있었지만 글을 보여주는 건 여러모로 굳은 다짐이 필요한 일이었다. 앞에서는 매번 툴툴거리고 집에 대한 솔직한 비평을 해도 사실은 엄마를 제법 좋아하고 집이 꽤나 마음에 든다는 고백 같은 느낌이라, 차일피일 미루고 미뤘다. 더해서 언제나 부모님에게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이므로, 나의 창작 의도와 문체가 두 분의 피드백에 따라 갈피를 못 잡고 달라질까 봐 하는 걱정도 앞섰던 것 같다.


그런데, 방송 출연 제안이라니 글을 처음 쓰면서 부모님께 “내가 건축탐구 집과 유퀴즈에서 연락 오게 해 줄게”라고 했던 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창작자의 의도, 약간 수줍고 부끄러운 마음보다 이제는 두 분의 알 권리를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끼는 편지지에 브런치 주소를 적어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선물이야, 엄청 좋은! “ 이라며 엄마의 손에 쥐어주었다. 바로 방으로 호로록 숨어버렸는데, 역시나 엄마가 이게 뭐냐며 검색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편지지를 살피고 있었다. "에휴, 휴대폰 줘봐" 라며 카톡으로 직접 내 글 링크를 보내준 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옆에 앉아 내 글의 주인공이자 지금은 독자가 된 엄마의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봤다.


엄마는 울고 웃고, 내가 이런 말도 했냐며 재미있어했다. 고작 10편 정도의 글을 읽는데 수많은 리액션이 오가고, 책상에는 휴지가 한가득이었다. 그런 엄마를 보니 내가 한 게 효도가 맞구나 싶었다.


망해도, 아무도 안 읽어도 기억에 남을 아주 특별한 효도는 되겠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 글은 좋은 기회로 연결되었다. ‘엄마의 집짓기’ 글로 시작된 인연은 건축이 완공될 때까지 겨울 내내 이어지다가 해가 지난 뒤 최근에 촬영이 이루어졌다. 방송 전이라 두근거리는 마음인데, 엄마의 집 짓기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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