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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껍질 Jan 09. 2024

내 안에 이런 글이 있었다니

엄마의 집짓기

“글 쓰는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나도 내가 이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어”


광덕산 호두마을의 집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다, 이전에도 짧게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엄마는 건축을 시작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왔다.


“정말 하루도 안 빼먹었어. 다이어리를 두고 어디 여행을 갈 수 있잖아 그러면 그날 일기는 다른 곳에 기록해 두고 옮겨 적었어. “라는 엄마는 학창 시절에 일기를 꼬박꼬박 잘 썼는데 그 습관이 나이가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수년간의 하루하루 기록이 모여, 글 쓰는 역량으로 쌓인 모양이다.


어느 날 광덕의 이야기를 전하는 신문 창간호에 엄마의 이야기를 싣자는 감사한 제안이 왔다. 수개월을 지어지는 중에 있던 집, 언제 끝날지 동네 사람들 모두가 궁금해했는데 드디어 완성이 되었으니 왜 지었는지, 집주인은 누구인지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는 첫 번째 글을 쓰게 되었는데, 여러 작업들이 약속한 듯 몰리는 바람에 늦은 밤 한 번에 써낸 글로 전달했다고 한다. 정신없는 시간들이 지나고 다시 보니 생각보다 좋은 글이 나왔다며 쑥스러움과 호기심이 교차하는 표정로 어떠냐며 건네주었다.


처음 읽어 보는 엄마의 글, 아래는 글 초안과 기사 사진이다.




제목 : 광덕에서 꿈을 펼치다.

부제 : 힘들어도 재미있는 경험들이 있는 곳서 편안해한다는 걸 깨달아.


(여전히 설레는 광덕)

"자기는 꼭, 엊그제 땅보고 온 사람 같다"하는 지인의 말이 재밌다.

광덕을 만난 지 12년 차에 듣는 말 치고는 인상적이다.

변함없는 내 사랑을 들킨 듯싶다.

12년 전, 그날의 광덕 호두마을 겨울은 낭만적이었다.

겨울에 핀 눈 꽃송이들의 향연 같았던 광덕의 설경.

마을까지 시원하게 만들던 첫 만남의 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딸들에게 자연을 선물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도 있었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쉬었다 가고 싶은 바람도 있어서 바로 가족을 위한 아지트로 결정하고 땅을 사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바닥 10평짜리 집을 짓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피곤도 풀고 몸도 회복되는 건강한 시간이 행운처럼 주어졌다.

아이들에게는 새로움을 주는 "힙"한 곳이었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재밌어했다.

광덕의 자연, 마치 광덕에만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4 개절을 보고 자라면서 행복해했다.

그 후 10년, 마치 기다림을 통해 드디어 소중한 것을 갖데 된 것처럼 진짜 광덕 사람이 되기로 결정, 정년을 9년 앞두고 퇴직을 했다

주말 손님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완전한 정착을 위해 또 집을 짓기 시작했고 진행 중에 있다.

주말에 겨우 잠깐 데이트하는 사이가 아니고 사랑하는 반려자와 살 집을 짓는 것처럼 설레는 일이다.


(이유 있는 광덕 자랑)

큰길에서 5리쯤 구불구불 한참을 들어오면 우리 마을 만복골을 만나게 되고 "와! 이런 곳에 아기자기한 집들이 있었네"하며 놀라게 된다.

알을 품고 있는 어미닭의 따뜻한 품속 같은 푸근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곳에 다섯 가구가 다섯 손가락처럼 붙어 있는 더 작은 마을이 있다.

낯선 타향살이 적응을 위해 어떤 연이라도 찾고 싶을 때 남편의 띠(용)는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띠퍼들이 맞춰지는 신가한 경험이다.

옆집 뒷집 아랫집이 같은 나이 바로 친구가 되는 우연 같은 만남이랄까 같은 나이가 아니라 치면 띠동갑이라도 되는 반가운 인연들 이웃을 찾고 나니 만복골이 더 쉽게 우리 집인가 싶다.

나름 도시에서 오래 살다 보니 자연 속에서 들이쉬는 맑은 공기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 터에 "자연보존지역"의 규제가 적용되는 특성까지 있어 광덕의 공기는 으뜸 중에 으뜸이다.

저 깊은 상층에서 내려오는 깔끔한 1 급수의 물줄기는 우리 집 앞을 4계절 내내 흘러 더 이상 버들치를 찾아 떠날 필요가 없다.

광덕에는 호두가 지천이다.

호두나무를 처음 보는 날 "호두나무는 어딨어요? 호두에 대한 예를 갖추지 못했다. 바로 앞에서 호두가 보이지 않았다.

과실수는 예쁘다는 생각이 맞지 않았다. 실망이라면 실망

호두나무는 보호색? 얌전하고 내성적인 호두나무, 드러내지 않고 조용하다.

내가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이기 시작하니 마을 전체가 호두다 감동이다.

호두는 정말 맛있다 고소하다 건강하게 만든다.

요즘엔 생호두가 더 좋다.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호두나무에 둘러쌓여 살고 있다는 게 좋다. 그냥 행복하다.


(광덕에서 찾은 꿈)

광덕에서는 늘 상상하게 된다. 머릿속이 즐겁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솟아나고 자연 앞에서 움직임이 많아진다. 바쁘다.

풀을 뽑고 땅을 고르고 퇴비를 먹여 토실토실 흙을 살찌우고 먹거리나 꽃을 심고 날마다 살핀다.

장갑 장화 앞치마와 두건을 장착하고 정원에 한 발을 디디면 어느새 해가 넘어간다

종일 일해서 분명 피곤한데 미소가 머물고 배부르다.

이런 것을 요즘 말로 "찰떡"이라고 하는가 싶다.

정원사의 꿈은 삶이 되어가고 나무 전정하는 남편도 멋있어진다,

꿈은 계속 다채로워진다. 광덕을 표현하는 작가도 되고 싶다.

함께하는 행복한 공방과 갤러리도 만들어 이웃들과 쪼물쪼물 만든 것들을 전시도 하는 문화 공간을 꾸리고 싶다.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알아가는 좋은 시간도 갖게 될 것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서로의 재능들을 뽑아내도록 도와주고 싶다.

한여름 밤에 모깃불을 피워 놓고 정원 안에 극장을 만들어 이웃들과 월드컵도 보고 영화 관람도 하고 싶다.

광덕에 있는 먹거리들 (채소, 과일, 버섯, 나물, 꽃차 그리고 호두)를 나누어 먹으면서 토론도 하고 싶다

광덕은 나를 꿈꾸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광덕이어야 꿈꿀 수 있는 꿈이 있어 정착지로 결정하고 놀거리 나눌거리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상상이 오늘도 나를 가슴 뛰게 한다.


창간호에 실린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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