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_독서로 몸값 올리기
3살 연하의 남편과 신혼생활을 하는 도영이 인터넷 서점에서 독서법 책을 검색해서 고른 것은 저자 '내성적인 건물주'의 <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였다. 몇 달 전에 부동산 관련 유튜브를 보다가 알고리즘이 투척해 준 얼굴 없는 사내 영상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었다. 상반신만 나오고 얼굴은 화면 밖에 있는 영상은 '하와이 대저택'과 마찬가지로 호감의 목소리와 군더더기 없는 내용으로 흡인력이 있었다. 책의 필명은 유튜브 채널명을 그대로 쓴 것이었다.
제목에서 '독서법'과 '연봉 3억이 되었다'는 조합을 보니 책을 잘 읽기만 해도 몸값이 3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부푼 희망이 생긴다.
기분 좋게 책을 펼치는 순간 도영의 핸드폰에 벨이 울린다. 모르는 폰번호다.
혹시 예전에 삭제한 지인의 연락처일지도 모른다. 전화를 받았더니 T전화가 거르지 못한 부동산중개소 전화이다.
"사모님~ ○○아파트 가지고 계시지요~?"
"하.. 근데 제 번호 도대체 누구한테 받은 거예요? "
"아~ 하하항~ 사모님~ 혹시 세 주고 계세요? 매도계획 있으신지 해서요~"
"입주했어요. 안 팔아요."
"아~ 네~ 그렇죠~? 저희는 길 건너편에 대박 부동산인데요~ 나중에 파실 의향 있으시거나 큰 평수로 갈아타셔도 좋고요~ 연락 주세요~"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계약서를 쓰러 모델하우스에 방문했을 때 가건물 입구에 포진해 있던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독일 행주나 신도시 토지구획 지도 인쇄물 혹은 명단과 볼펜을 들고 진격해 오는 그녀들을 적당히 무시하고 제치다가 딱 한 명, 거스르지 못했다.
“중간에 P 오르는 거 시세 확인도 할 겸~ 시세를 알아야 분양권 팔 때 유리하잖아요~”
입주할지 중간에 팔지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번호를 적었었다. 그 번호가 돌고 돌아 이름 모를 오만가지 부동산에서 전화가 오고 있는 것이다.
도영은 부동산 전화를 끊고 책을 넘겨 차례를 살펴봤다. 책을 배송받고 나서 자기계발서의 차례를 펴 보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궁금했던 것에 모두 답을 말해 줄 것 같은 소제목들, 다 읽기만 하면 또 한 번 레벨이 상승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 책은 독서를 빠르게 잘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다. 한 권을 읽고도 어떻게 실천을 해서 삶이 바뀌었는지 저자의 성공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독서 왕초보가 읽기 좋도록 쉽고 짧게 쓰여 있어 간결했다. 저자는 무언가를 처음 배울 때 그 분야의 책 3권을 찾아 단기간에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 관리법, 독서법, 부동산 경매하는 방법에 대한 세미나를 수강하는 등 배우는 곳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성적인 성격과 상관없이 '실천'을 했다는 점이다.
모든 자기 계발서의 결론은 '실천'이다. 그 쉬우면서도 어려운 실천을 못 하고 책의 권수만 늘려나가는 것은 좀 더 유식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삶이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도영의 생각이었다.
눈으로 글을 읽는 행위를 반복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 한 권에서 한 개의 진리를 '적용' 하는 것이 몸값을 올리는 독서라고 적혀있었다.
그때 도영의 남편이 컴퓨터방에서 재택근무를 마치고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여보여보, 뭐 해? 책 읽어?"
"응, 다음 독서 모임 책."
"오~ 제목 보니까 나한테 필요한 책 같은데? 연봉 3억~ 캬~!"
도영의 남편이 양 손바닥과 턱을 하늘로 향한 채 팔을 넓게 벌렸다.
"아유 또, 또~흐흣. 여보, 이거 쓴 사람은 유튜버인데 얼굴이 없어. 근데 말은 잘한다? 난 남 앞에서 말하는 거는 자신 없거든. 그리고 우리가 이 책 쓴 사람처럼 부동산 경매 이런 거 할 것도 아니잖아? 내가 뭘 실천하면 좋을까..."
"줘봐, 내가 딱 보고 얘기 해줄 테니."
도영의 남편이 책을 뺏어 들고 후루룩 넘기더니 책을 다시 덮고 눈을 감는다.
"연봉 3억의 신이시여, 우리 도영이에게 답을!!"
책을 아무 데나 쫙 펼친다. 너무 쫙 펼쳐지고 말았다. 그러더니 눈을 번쩍 뜨고 도영에게 펼쳐진 책을 건넨다.
"책 좀 못 살게 굴지 마~. 이 봐봐, 책 덮었는데도 펼친 자국 났어~ "
"응, 책을 신처럼 모시면 안 되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지~. 펼친 곳에 뭐라고 나와 있어?"
"오... 아하!"
"눈에 딱 들어오는 거 있어? 읽어 줘 봐~"
남편의 재촉에 도영이 읊었다. 어제 읽었던 부분인데 다시 보니 생소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의 일을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최고라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내성적인 건물주 <저는 이 독서법으로 연봉 3억이 되었습니다> (p.103)-
"필요한 말 맞는 거 같아? 답이 나왔어? 나 자리 깔아?"
"오, 그런 거 같아. 내가 흥미를 느끼는 일이라... 책 읽는 거, 음악 듣는 거, 또.. 산에 가는 거... 또 뭐 있지?"
"여보야 일기 쓰는 거 좋아하잖아~"
"일기 쓰는 거... 응, 나 글 쓰는 거 좋아하는 거 같아! 근데... 내 글에 자신이 없어서.."
"브런치 작가! 브런치스토리 그거 해봐. 잘만 하면 출판사에서 책도 나온다는데 내가 봤을 때 여보 일기 쓴 것만 옮겨도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그래도 일기를 어떻게 남들한테 보여줘.."
"서랍에서 묵히는 것보다 다듬어서 올리는 게 좀 더 보람 있지 않을까? 일기 보여주기 싫으면 일기 아니라고 하면 되지."
"한번 생각해 볼게, 브런치."
행동하지 않는다면 변하는 것이 없다. 이 책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실용서에는 실천을 할 만한 것이 꼭 한 가지는 있다.
이 책을 읽고 도영이 적용할 것은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찾고 자신만의 속도로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꾸준히 써 오던 일기처럼 브런치에도 ‘쓰기’를 시도해 보는 것이다.
아주 하찮을 정도의 한 걸음을 내디뎌 보는 것이다.
그녀는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했다. 블로그처럼 그냥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작가고시’를 통과해야 글을 쓸 자격이 주어졌다. 브런치 작가신청 팁에 대한 몇 개의 글을 검색했다. 일기를 토대로 2개의 글을 작가의 서랍에 저장한 뒤 자기 P.R을 해야 했다. 간략한 편이지만 입사 지원을 위해 자소서 쓰는 기분이었다. 몇 년간 써온 일기가 있고 사랑 이야기를 연재할 거라고 적었다.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글을 쓸 거라고 포부까지 어필하고 신청했더니 한 번에 통과했다.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남편과의 알콩달콩한 일상 이야기를 브런치에 남겼다.
도영의 부부에겐 늘 일어날 만한 사소한 일상이었는데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니 남다르고 특별한 사건일 때가 종종 있었다.
그녀가 올린 글 중에 반응이 괜찮았던 글을 꼽아보자면, 그녀의 생일상을 차려주겠다는 남편이 가스레인지 3구를 모두 이용해서 조리하다가 과열로 화재경보가 오작동되어 경비실에서 연락이 온 일, 반깁스를 한 발의 뒤꿈치를 바닥에 대고 재밌다며 컴퍼스처럼 빙글빙글 돌리다가 넘어지면서 거실장에 귀를 박아 멍이 든 일, 조립식 MTB 자전거를 사서 앞바퀴 방향을 반대로 조립한 채 1년을 달려왔던 사실을 펑크 수리하러 삼천리 자전거에 갔다가 드디어 알게 된 일 등을 적었고 글 아래 즐거운 댓글들이 달렸다. 댓글에 힘이 나자 더욱 신나게 글을 쓰게 되었다. 하찮은 글쓰기가 모이니 하찮지 않게 된 것이다.
책을 읽었다면 하찮아 보이는 한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 자기 계발서 책을 읽는 이유였다.
이 글은 소설입니다. 등장인물의 에피소드는 사실과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