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잘 살아가기

<아빠가 내게 스며들었다> 브런치북을 마치며

by 나예스

음지에서 피어난 고사리 같은 나의 이야기를 28화에 걸쳐 써보았다.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구체적인 가족 이야기라 쓰기 전, 쓰는 중, 쓰고 난 후 모두가 조심스러웠다. 나의 상처, 가족의 상처. 이 복잡다단한 마음을 꺼내어 햇볕에 말리는 과정에서 많은 눈물을 쏟았다.


미워했으면서도 자랑스러웠고, 너무 열심히 살아서, 아파서, 너무 처참히 무너져서 애틋한 우리 아빠. 아빠를 너무 많이 생각하느라 다른 가족의 마음을 잘 돌아보지 못했던 시기가 많았음을 고백한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아빠 외의 가족들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매회 글을 업로드하기 전마다 엄마와 동생들에게 허락을 받았다. 기억력이 좋다며 옛 생각에 잠기며 격려해 주었고 내 글에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가족을 위한 헌사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한테 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지는 못했다. 아빠와 외식을 하면서 '아빠가 살아온 걸 지켜본 이야기를 나의 관점에서 글을 써도 되는지' 물었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대답이 없었고 그저 삼계탕의 살점만 발라드셨다. 예전처럼 기억력이 좋았다면 3일이나 지나고서야 승낙을 하셨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점심때는 기억하지 못하신다.


많은 글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애증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미움을 털고 죄책감도 털고, 이해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쓰는게 옳지 않을까 하고 오랫동안 고민 해왔다. 하지만 지금이어야 했다. '가는 데 순서 없다'고 하는 말처럼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 내가 살아 있고 아빠가 살아계시는 지금 내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고 결론을 내고 싶었다. 아빠를 구하면서 나도 살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노라고 누군가가 혹시 조언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써야만 했다. 몇 명이 볼지 모르는 글을 세상 양지에 꺼내기 전에 두려움과 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


누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나와 내 가족의 삶을 드러내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아빠를 빼고서는 나라는 사람이 설명되지 않고, 활달하게 비치는 나의 모습의 이면을 내어놓지 않고는 반쪽짜리 삶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마음이 그저 답답하고 침울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그저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이런 고민과 갈등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겪고 더한 고통과 기적 속에 잘 살아남은 독자가, 지금과 같은 불편한 마음의 시절을 겪는 독자가 분명 곳곳에 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우리 힘은 충분히 냈으니, 그저 잘 살아가자'라고 말하고 싶다.


지나온 삶이 나를 만들었지만, 앞으로의 삶은 내가 만들어 나갈 차례다. 잘 살면 좋고, 아니어도 좋다. 삶은 그저 가만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살 가치가 있다. 이 좋은 세상에서 나를 더 돌보고, 가족들과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지금까지 <아빠가 내게 스며들었다> 브런치 북을 읽어주신 독자와 작가님들께 감사를 담아 인사드립니다. 오늘까지 연재를 마치기로 목표를 잡았는데, 실천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최근에 발행 주기를 몰아서 업로드 했는데 부지런히 읽어주신 작가님들께 특별히 더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해 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