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는 뒷모습

2025월 7월 17일 병원 동행자 일기

by 오복파크


저녁에 자려는데 언니가 할 말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아빠가 아침에 쓰러졌다고, 의사 선생님에게는 말을 안 한다고 했다고, 내일 병원에 함께 가는 내가 대신 꼭 말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밤새 천둥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와서 그런지, 무의식 중에 아빠가 걱정되었는지 내내 잠을 설쳤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아빠가 터미널에서 병원에 가는 길에 쓰러지지는 않을까, 상상을 하면서 울었다. 오전에는 한 기자회견에 참석해야 했는데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빠가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에 마중을 나갔다.


아빠는 얼굴이 좀 부어있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소식을 들었는지, 오랜만에 동생의 얼굴을 보려고 했는지 큰고모까지 터미널에 나와있었다. 고모는 쉬지 않고 말을 했는데, 작은 몸채 때문인지 삐약삐약 하는 병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인지 병원을 오가는 아빠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환한 웃음을 보았다.



병원에 있는 내내 아빠의 머릿속은 바쁘다. 이 과정을 마치고 다음에 해야 할 것을 계속 생각한다. 오자마자 피를 뽑고는 별관으로 CT촬영을 하러 갔고, 어플로 혈액검사 수치를 틈틈이 확인했다. 수혈을 맞아야 하는 수치가 확인되면 바로 수혈실에 접수를 하러 간다. 오가는 길에 있는 접수처에 들러서 검진받을 두 개의 과에 접수까지 마친다. 서두른 덕분에 어떤 검사들은 예약시간보다 일찍 한다. 비가 와서 젖은 샌들 때문에 발가락이 쓸려서, 안 그래도 느린 걸음이 더 느려져서 오늘 내내 아빠의 뒷꽁무니만 쫓아다녔다. 오늘은 고모도 함께. 아빠는 평생을 서두르고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꼈을까. 예약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CT촬영을 한 것처럼. 그리고 서둘렀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을까. 서둘렀기 때문에 놓친 것은 없었을까.



고모가 점심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고모는 내내 얼마 전에 태어난 손주 이야기를 했다. 나의 사촌인 본인의 딸이 얼마나 재미있게 사는지 모른다고. 결혼을 안 하고 싶으면 연애는 계속하라고. 연애를 하면 결혼도 서둘러하라고. 지금까지 살아보니 자식이 있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사유리가 이해가 된다고. 생각보다 고모가 트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헤어지기 직전에는 인생은 짧으니 아무튼 재미있게 살라는 말을 하셨다. 언제 봐도 그대로인 60대 중반의 고모는 그래서 이렇게 어린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항상 싸매지 않고 가볍게 훌훌 살아서. 네 해주신 말씀 잘 염두할게요. 고맙습니다 고모.



서두른 아빠는 새빨간 피주머니를 단 채로 2개의 진료를 마쳤다. 아빠처럼 무언가를 팔목에 꽂아놓고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나같이 아픈 모습으로. 내 가족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져서 우는 아이에게는 방긋 웃는 모습을 보이며 손인사를 했고 몸이 다 굳어버린 어른이 의자를 4개 차지하고 누울 때는 내 부모처럼 도움을 드렸다. 나머지 1팩의 피주머니를 더 맞으러 간 아빠를 기다리면서 아빠가 입고 나올 겉옷을 가방에서 꺼냈다. 가슴주머니가 딱딱해서 열어보니 연금복권과 로또가 적지 않게 나왔다. 돈이 없는 아빠의 해결책. 보호자는 더욱 기다림이 많다. 오늘도 기다리다가 이 글을 쓴다. 아빠의 서두르는 뒷모습을 그냥 스쳐 보낼 수 없어서. 그러고는 앉은 채로 잔뜩 졸았다.


오후 4시에 버스를 예매한 아빠는 병원을 빠져나오며 이제는 달린다. 그러다가 비가 와서 미끄러진 바닥에 넘어지면 안 되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서 쓰러지면 안 되는데, 아직 시간 충분해서 그냥 조금 덜 서둘러도 괜찮은데. 약국에서도 좀처럼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약사가 약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을 다 기다리지 못하고 약을 뺏다시피 한다. 약사님 제가 대신 미안합니다. 버스를 타기 전 화장실까지 부지런히 다녀온 아빠의 걸음이 이제야 느려진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남은 시간은 10분. 얼굴에는 긴장감이 사라졌다. 고생했어요 아빠.



아빠는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제야 나도 가방의 무게가 느껴지고, 지난밤에 자지 못한 피로가 몰려온다. 버스터미널에는 평일에도 사람이 많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병원엘 다녀오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항암을 하는지 머리를 빡빡 깎은 채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 걸음도 느리고 표정도 안 좋은 할아버지와 부축을 하는 할머니, 약봉지를 쫄래쫄래 들면서 자식에게 괜찮다는 안부를 알리는 아주머니.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리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모두 내 가족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 나는 이제 그들이 보인다. 그들을 느낄 수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