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도 습관이 된다.
“오늘까지 ○○보고서 제출해 주세요.
기한을 촉박하게 드리는 점 죄송합니다.”
또다시 날아온 급한 메일.
한숨부터 나왔다.
‘또 시작이구나.’
늘 이런 식이다.
뭐가 그렇게 급한 건지,
항상 일은 촉박하게 주어졌고
여유를 두고 미리 말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패턴.
벌써 5년째였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업무,
이미 제출했던 자료를 또 요청하는 의원요구,
누가 봐도 이상한 결론인데
“윗선 지시입니다”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여야 했던 일들.
민원인의 억지에도 “알겠습니다”를 반복하며,
자존심보다 분위기를 먼저 살펴야 하는 나날들.
혹여 비나 눈이라도 많이 오는 날이면,
'비상대기' 문자가 올까 봐 괜히 더 긴장했다.
그런 긴장은
가족들과 모처럼 식사하는 주말에도 이어졌다.
시선은 휴대폰에 고정된 채,
‘오늘은 제발 조용히 넘어가자...’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이 안에서,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러운 건 없었다.
그렇게 불만이 가득한데,
왜 계속 다니는 걸까.
왜 그만두지 못할까.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알량한 체면,
그리고 기혼자에게 주어지는
육아휴직이라는 메리트.
아마도
‘안정’이라는 말이 주는
착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너질 듯한 구조물 안에서도
‘그래도 버티면 안전할 거야’라는
이상한 믿음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게 맞는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이 조직에 나만 불만이 있는 걸까?
시험에 합격만 하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을 줄 알았는데,
그토록 바라던 그곳에서
나는 매일 불안감에 휘청이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혼자 산책을 하며
길가를 유유히 걷는 비둘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저 비둘기는 어딘가로 향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움츠리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났다.
그 웃음 속엔 부러움도, 자책도 조금 섞여 있었다.
나를 가로막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회사 바깥은 지옥이라는 말,
그게 진짜일까 봐 두려웠다.
특별한 재능도 없고,
대단한 스펙도 없는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래서 또 하루,
불안을 품은 채
같은 자리에서 그저 버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