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멋진 것은 과정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예술의 효용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시대에 발맞춰, 때로는 시대를 앞질러 새로운 사상을 창의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현실의 제도들이 주지 못하는 성찰을 제공하는데도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SBS 뉴스 /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Place
놀이공원
Music
디즈니 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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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날씨도 좋은데 어디로 가볼까?"
창 밖을 보니 정말 날씨가 좋았다. 생각해보니 이번주에 아아가 아닌 따뜻한 차를 마셨고, 아침마다 이불을 움켜쥐며 눈을 떴으며,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지고 있었다. 새로운 계절이 오고 코를 스치는 차가운 공기에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주말 오후 이불 속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 반, 가을은 짧으니 겨울이 오기 전에 얼른 즐겨야 한다는 생각 반. 반반씩 섞인 마음 틈새로 무엇을 해야 후회 없는 주말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어디 멀리 여행가기엔 체력이 되지 않는다. 더이상 여행이란 연차를 쓰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동네에서 놀거나 집에만 있기엔 아까운 주말이다.
그럴 때마다 놀이공원을 떠올린다. 도심 속에서 세상과 단절된 공간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몽환적인 세상.
놀이공원에선 패션도 자유롭다. 평소에 입지 못했던 특별한 의상을 입어도 아무렇지 않다. 놀이기구를 타지 않아도 분위기에 취해 그 순간만큼은 디즈니 공주가 된다. 놀이공원에 가면 들리는 음악이 발걸음을 설레게 하고 정말로 동화 속에 있는 기분이 든다.
주말에 하루 종일 놀이공원에서 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다음과 같은 이유가 떠올랐다. 공주의 예쁜 드레스가 입어보고 싶어서, 현실적인 고민따위는 하지 않고 성 안에서 왕자와 행복하게 살 것 같아서.
정말이지 공주가 되면 고민 없이 살 수 있을까?
디즈니 공주의 역사도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는데 인어공주, 백설공주, 신데렐라로 대표되는 고전 공주들은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공주이다. 이야기의 끝은 '마침내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난다.
시간이 흐르고 90년대에 나온 공주 자스민, 포카혼타스, 뮬란은 가만히 앉아서 왕자님을 기다리지 않는다.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만이 공주가 되지도 않는다. 전쟁 영웅이자 자신의 꿈과 사명을 이루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하는 공주들이다.
최근 들어서 디즈니 공주는 자신 앞에 놓인 어려움과 책임을 지혜롭고 당차게 헤쳐 나가는 모습으로 변화한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의 메리다는 공주보다는 옆집 친구 같은 친근한 외모를 갖고 있다. 영화는 붉은 곱슬머리 메리다와 그녀의 엄마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위기를 헤쳐나갔고 전세계 어린이들의 꿈이 되었다.
나는 왜 디즈니 공주가 되고 싶었던 걸까?
이렇게나 다양한 캐릭터의 공주가 있는데 어떤 공주가 되고 싶은걸까?
넷플릭스에서 최근 본 영화 목록을 보고 나서 내가 성장스토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연이 있는 주인공이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무척 노력하여 결국에는 쟁취했다는 서사, 꼴등에서 1등이 되었다는 서사.
특히 '국가대표'를 보면서 눈물을 찔찔 짰다. 스키점프에 대한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해서 결과를 멋지게 보여주는 서사에 감동받았다. '국가대표2'도 보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했다. 내가 왜 이런 서사에 감동받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영화에서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천재 운동선수가 나와 당연하게 1등하는 스토리는 영화로 제작되지 않는다. 관객이 그 스토리에 감동받는 이유는 주인공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영화 내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영화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최선을 다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수능치는 날 당일이다. 그 때의 풍경과 거리, 그 때의 고사장과 시험 문제가 선명히 떠오른다. 내가 문제를 풀었을 때의 기분과 떨림까지 모조리 생생하다.
코끝에 겨울 냄새가 스치는 계절이 되면 그 때가 떠오른다. 패딩을 꺼내 입는 계절에 모교 고사장 앞에서 후배들이 건네주는 핫팩을 받아들었다.
국어 시험지를 받아들고는 '유레카'를 외쳤다. 어려웠던 지문도 술술 읽혔고 끝까지 나를 괴롭혔던 문제들마저 당일에는 술술 풀리다니! 떨리는 손으로 마킹을 끝내도 시간이 남았다. 이대로만 페이스를 유지하자.
다음은 수학 시간. 나는 수학에 약해서 수학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도 늘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수능 시험 전 마지막으로 쳤던 모의고사에서는 무려 40점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받았다. 내가 이렇게나 노력했는데 40점이라니! 엉엉 울면서도 수능에선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파이널 모의고사를 정리했다. 유독 힘들었던 미적분 문제를 풀고 또 풀었었는데 기적처럼 수능에서 공부한 문제가 나왔다.
'공부한 대로만 풀자.' 그런데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 어느덧 종료 5분 전이 되었다. 다급한 마음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러다가 종료 3분 전, 엇? 정답이 나왔다! 심장이 쿵쾅거려서 터져버릴 것 같았다.
죽기 직전에 나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글을 본 적있다. 에이, 그게 뭐야 싶었는데 경험해보니 진짜 그렇다. 내가 시험에서 합격하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동안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6개월에 걸쳐서 성공했던 다이어트도 그렇다.
목표 몸무게에 도달했던 날, 먹고 싶은 음식을 꾹 참아가며 닭가슴살을 먹던 날이 떠오른다. 그동안 내가 먹은 닭이 몇 마리인지! 운동 하기 싫은 날에도 몸을 일으켜서 어떻게든 운동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현대인들은 1시간 운동하는 것도 어렵다던데 하루에 2번 헬스장에 출첵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온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울컥하게 되는 이유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디 좋았던 몸이 아니고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던 나였으니까. 매일 조금씩 근육을 붙여가며 나아졌던 나의 모습.
그러고보니 디즈니 공주의 스토리와 닮아 있다. 아렌델 왕국을 지키기 위해 시련을 극복하고 왕으로 즉위한 엘사와 안나.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을 거부하고 진취적으로 운명을 개척한 뮬란. 부족을 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모아나.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공주처럼 살아왔던 것이다.
내가 시련을 극복하고 성취하고를 반복하며 디즈니 공주로 살아왔다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해내고 싶은 것이 많다.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아 조급해질때면 유튜브에 '디즈니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내가 지금 디즈니 공주라고 상상해보는거다. 왕자님은 날 구하러 오지 않으니 오직 나만이 이 시련을 극복해야만 영화의 결말이 완성되는거다. 난 해낼 수 있다.
기억할만한 순간에는 모두 '과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쉽게 얻었던 것은 잊어버려 기억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성적을 올렸던 경험이나, 다이어트에 성공했던 경험은 잊혀지지 않고 나의 자산이 되었다.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 자신감.
삶에서 그런 순간이 한번쯤은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죽을만큼 노력해서 얻어낸 성취, 그 때의 기쁨! 바로 그 시련을 극복한 순간이 디즈니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다.
더 빨리,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애쓰지 않고 살아보려한다. 천천히 가면서 과정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며 뼛 속까지 각인시키려한다. 빨리 얻어지면 그만큼 빨리 잊어버린다. 결과를 빠르게 내기 않기로 마음 먹으니 편안하고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들은 아직 젊고 삶의 유통기한이 한참 남았다.
나의 버킷리스트엔 전세계 디즈니월드에 도장깨기가 있다. 제일 처음 다녀온 곳은 도쿄의 디즈니월드이다. 나머지 디즈니 월드는 천천히 가볼 요량이다. 공주가 된 기념으로(?) 다음 번 놀이공원을 갈 때면 좀 더 즐기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