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는 음식에 담긴 마음
Movie
리틀포레스트
Music
융진 - 걷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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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엄마는 항상 식구들의 밥을 신경 쓰느라 부엌에 있었다. 엄마는 밥을 하는 것이 자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엄마는 같이 식사를 하지 않고 셰프처럼 부족한 음식은 없는지 살폈다. 다 먹은 밥상을 치우고 나면 그 때서야 엄마 몫의 식사를 했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돌아간 고향에서 엄마를 떠올리면 항상 함께한 음식이 있었다. 엄마는 혜원이 힘들 때 이 곳을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남편 사후에도 시골에 계속 남아있었다. 혜원이 수능을 본 뒤 며칠 후, 편지를 숨겨두고 홀연히 떠난 엄마. 혜원은 엄마를 떠올리며 요리를 한다.
함께 하는 음식에 담긴 마음은 '우정'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맛집 정보를 찾아보고 카페 리스트를 저장해놓는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술이 빠지지 않지. 혜원이 '재하'와 '은숙'과 함께 막걸리를 만들어 먹는 장면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막걸리의 최고의 안주는 같이 나눠 마실 사람이라고.
함께 하는 음식에 담긴 마음은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음식을 같이 먹으며 사랑을 표현한다. 처음 만나는 이성과 소개팅을 할 때 식사를 하러 간다. 엄마가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했던 것은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할 때가 생각난다. 학교 뒷문으로 난 좁은 길을 통과해 걷다 보면 '엄마 밥상' '엄마 손맛'이란 간판을 내 건 밥집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집 떠나 타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집밥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해 지갑을 열게 하려는 심산이렸다.
정말 엄마의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주린 배를 움켜쥐고 끼니를 때우기 위해 인스턴트 음식으로 연명했던 지난 며칠이 떠오르면서 오늘만큼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엄마의 된장찌개를 먹는 호사를 누리고 싶었다. 줄지어 서 있는 밥집들 중 '엄마 손맛'이라는 가게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진짜 엄마'의 밥을 먹고살았던 고등학생 때가 떠올랐다. 매일 아침 일곱 시에 나를 깨워 먹어야 공부도 잘 한다며 숟가락을 쥐어 주던 엄마. 엄마는 그렇게 다 큰 딸내미를 어르고 얼러 학교에 보냈다.
나는 그저 공부만 하면 되었다. 엄마가 내 교복을 다려주었고, 내가 학교에 간 사이에 이부자리를 개어 방 청소를 말끔히 해 놓았다. 그땐 감사한지도 몰랐고 그래서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식탁에 밥상이 뚝딱 차려지는 일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스물에 혼자 상경한 후부터 밥을 해 먹는다는 일이 이리도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일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식당 아주머니의 노동에 대한 이용료를 내고 밥을 사 먹든, 마트에 가서 1인 가구를 위해 진열되어 있던 냉동식품을 사와 요리를 하든, 밥을 챙겨 먹기 위한 그 모든 행위들에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다.
엄마의 집에 얹혀살았더라면 한 번 장을 보는 데 별로 산 게 없어도 항상 오만원은 훌쩍 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방세를 제외하고 받는 용돈 30만 원으로 타향살이를 하기엔 늘 빠듯했다. 엄마와 마트에 가면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집었던 내가 100원 차이에도 벌벌 떨며 최대한 투자 대비 효용을 많이 낼 수 있는 것들로만 카트에 담았다. 그렇게 200원이 더 싼 계란 10구와, 만원을 투자하면 15일 치 반찬을 해결할 수 있는 냉동만두를 덜렁 사들고 집에 오는 길엔 항상 엄마 생각이 났다.
이게 끝이 아니다. 장을 보고 집에 도착하면 좁디좁은 원룸 부엌에 서서 대파 한 단을 손질하고 양파 껍질을 까야한다. 그나마 엄마가 신문지에 바리바리 싸서 보내준 고추장과 참기름이 있어서 다행이다. 몇 가지 재료를 대충 넣고 끓인 찌개가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어제 만들어 다 식어빠진 밥을 말았다. 오늘 반찬은 두 개 정도면 되겠지.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유난히 심해질 때면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내일 집에 온다고? 어이구야~ 뭐 먹고 싶어?' 전투적인 서울살이를 하다 몇달만에 '고향집'에 가게 될 때면 드디어 엄마의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또 한 가지 기뻤던 사실은, 고향집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더 이상 밥 챙겨 먹는 성가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간 한 끼에 하나의 반찬만 놓고 먹었던 내 밥상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종류별로 여러 개의 반찬을 내왔다. 그동안 아무리 흉내 내도 결코 따라 할 수 없었던 찰진 감자볶음이나 맛을 내기가 여간 어려웠던 찌개들이 연이어 밥상에 올라왔다.
엄마는 이 밥상을 차려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
며칠 뒤면 다시 상경해야 하기에 최대한 기름진 맛을 많이 느끼기 위해서 쉴 새 없이 숟가락을 움직였다.
마치 겨울잠 준비를 하는 다람쥐처럼 볼에 먹을 것을 욱여넣고 또 욱여넣었다.
엄마 안녕, 기말고사 끝나고 다시 또 올게.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버스에 몸을 실을 때면 엄마는 항상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한다.
엄마에게 밥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다시금 엄마는 나를 뺀 나머지 식구들의 입에 따뜻한 쌀밥을 넣어주기 위해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밥솥의 버튼을 누르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순두부찌개가 나왔다. 순두부찌개의 계란 노른자를 톡 터트리며 잠시나마 엄마의 손맛을 느꼈다. 동시에 아 오늘도 한 끼를 해결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루에 세 끼를 챙겨 먹는다는 건 여간 부지런해서는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 한 몸 건사하기 위해 밥상 차리는 귀찮음을 감수하기 싫어 하루에 두 끼만 먹곤 한다.
함께 하는 음식에 담긴 마음은 '화해'이다.
혜원이 엄마로부터 받았던 크림브륄레처럼. 은숙과 싸웠을 때 사과를 전하기 위해 다시 크림브륄레를 만든다. 음식에 '화해'를 담아 실타래처럼 얽힌 감정을 푼다. 사춘기 소녀가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나서 한참을 씩씩거린다. 어느덧 밥먹을 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거실로 나가면 엄마는 내게 슬그머니 다가와 밥먹으라고 부른다. 엄마가 밥을 먹으라고 하고 내가 밥을 먹는다는 건 이미 화해의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밥을 먹으면서 특별한 사과 없이도 화해를 한다.
남편과 싸웠을 때도 마찬가지다. 혜원에게 크림브륄레가 있다면 우리에겐 와인이 있다. 우리는 싸우는 방식도 화해하는 방식도 다르다. 몇번의 싸움끝에 알아낸 사실은 각자 화해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는 빨리 화해하기를 바라고 나는 감정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서로의 타이밍이 지나면 거실의 적막을 깨기 위해 와인을 꺼낸다. 먼저 사과를 건네는 사람이 와인에 어울리는 안주거리를 준비한다. 정성스럽게 요리한 안주가 맛있다고 엄지를 추켜 세워주면 특별한 화해의 기술이 필요없다. 아무말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이 있다.
계절이 지나고 혜원은 자신의 리틀 포레스트로 돌아온다. 말없이 떠난 엄마가 혜원에게 네가 돌아올 곳을 마련해 주고 싶다던 그 말대로. 혜원의 집은 혜원이 힘들 때마다 혜원의 작은 숲이 되어 쉴 곳을 마련해준다.
나의 리틀포레스트는 뭘까? 힘들고 지칠 때 쉴 수 있는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 그동안 생존요리를 했던 횟수만큼 요리 실력이 늘었다. 나는 함께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사회에서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집에 와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시간을 보낸다. 감사한 저녁식사로 인해 다음날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다. 같이 요리하고 차려먹는 잔잔한 일상, 나에겐 '집밥'이 리틀 포레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