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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킴 Oct 18. 2023

'위대한 쇼맨' 나는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어."

"얼마나?" 

"모르겠어."



오늘의 곁들임




Movie 
위대한 쇼맨


Music
This is me


곡을 누르면 유튜브로 연결됩니다. 
음악을 감상하면서 글을 읽어보세요.


 




얼굴에 수염이 수북하게 났지만 노래 하나는 잘 부르는 여자, 공중 곡예를 하는 흑인 남매, 전신에 문신이 있는 남자, 온 몸에 짐승처럼 털이 난 남자, 몸무게가 227kg인 남자, 키가 거인처럼 큰 남자, 알비노에 걸린 남자.


모두가 꺼려하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을 피해 숨어 사는데 익숙해져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부르는 이 음악. 


This is me! 

이게 나니까!



근대적 서커스의 창시자인 바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휴 잭맨 주연의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 이 영화는 'This is me'의 OST로 더 유명하다. 이 노래를 듣게 된 것은 어두운 방 안에서 공허한 눈빛으로 잠을 청하려고 할 때였다. 노래를 듣자마자 가사가 위로가 되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기까지, 나의 성격을 파악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니 어른이 되어서까지 문제풀이 시험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쏟아야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선 시험문제풀이에만 집중하느라 정답 찾는 법만 교육받는다. 거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느라 나를 찾는 법은 못 배웠다. 


그리고 나에게 요구하는 역할인 '딸' '언니' '교사' 에 더 신경을 썼다. 나 자신을 역할에 맞췄다고 해야할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내가 해내야하는 일이 먼저였다. 



교사가 된 이후로 사회에서 나를 바라보는 기준이 더 생긴 느낌이었다. 난 음주가무를 좋아한다.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클럽도 좋고,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오는 바도 좋다.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노래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사람들에게 직업을 얘기하면 당황스러운 표정이 지나간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교사의 이미지와 내 모습이 매치가 안되는 모양이다.

'교사는 힙합 음악을 좋아해선 안되고, 교사는 비키니를 입고 수영장에 가서는 안돼. 교사는 늘 정직해야지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난 그러한 도덕적 잣대들이 힘겨워 어느 순간 직업을 밝히고 싶지 않아졌다.



업무 스타일은 어떨까? 난 납득이 안되는 일을 지시하는 것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왜 해야하는지 모를 쓸데없는 행사들에 지쳐갔다. A를 해결하기 위해서 B를 하면 명쾌한데, B를 위해서 중간에 거쳐야할 A', A''가 끼여있는 느낌이 싫었다. 불합리하거나 수직적인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인가 교장선생님의 업무 처리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해 후배 교사들에게 불합리한 일을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빠른 시간내에 성과에 도달하는 법에 대해 관심이 많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어 시간을 때워야하는 일에 맞지 않는다. 이 사실을 첫 직장을 가지기 전에 알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면 무작정 좋아보이는 기업에 들어가려고 시간을 쏟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애석하게도 내가 혼자 자유롭게 일할 때 성과가 나는 스타일이라는걸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런데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제와서 직업을 바꾸기에는 대학에서 공부한 시간이며, 그동안의 노력과 돈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내 고민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가족들은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말했다.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니겠어? 다들 그렇게 살아. 월요일이 싫고 주말만 기다리며 사는 거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나는 현실을 택했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내가 선택한 길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나를 고용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교육부 엄밀하게는 국가가 직원으로서 열심히 일한 나를 버렸다는 배신감에 휩싸였다.



배신감 뿐만 아니라 공허함, 우울함, 억울함 등등 부정적인 감정이 잠식했다. 불현듯 치미는 분노의 수치가 점점 높아졌다. 학부모, 교감, 교장, 교육부, 국가 모두에게 화가 났다.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교사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던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다. 교사가 되기로 선택을 했던 그 순간이 너무도 후회스러워 타임머신이 있다면 되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거의 나는 나의 성격과 업무처리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직업 선택을 했고 그 결과 직장이 지옥이 되었다. 지옥같은 직장에서 평생 일하는 것만큼 가혹한 형벌이 또 어디 있을까.





나는 과거의 나를 원망하고 후회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잠이 들면 나는 어김없이 그 교실로 끌려갔다. 잠에서 깨면 교실에서 허망하게 학교 옥상을 바라보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 속에 갇혀 몇년이나 스스로를 원망하고 후회했다. 임용고시를 공부했던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미칠 지경이었다. 건강이 망가질 정도로 내가 얼마나 처절하게 공부했었는데 범죄자 취급을 당하려고 했던 노력이 아니란 말이다! 





그 터널 속에서 어디가 끝인지도 모른 채 걸을 때 일으켜 준 노래가 바로 This is me 이다. 노래에 감동을 받고 찾아보니 위대한 쇼맨의 ost라고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의 잘못이 아니야' 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엉엉 울었다. 



'문제풀이만을 하며 10대, 20대를 보내야만 했던 것도 너의 잘못이 아니며, 뉴스에서 청년 실업률이 최고조라 공무원 시험 응시자 수가 사상 최대라고 떠들어대 지레 겁을 먹었던 것도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과거의 내가 했던 선택에 대해 인정하고, 과거의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직업을 가지며 사회 속에서 살아갈지 알아볼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지만 조급함에 등떠밀려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난 타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받지만, 혼자 사색하는 시간도 꼭 필요한 사람이다. 오늘 사람들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내일은 혼자 집에서 뒹굴거리며 에너지를 충전해야한다. 언젠가 3일 내내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기가 빨려서 침대 위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집에만 있다보면 또 사람들과 만나 하하호호 웃고 싶어진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지기도 해 동호회 이곳 저곳에 기웃거려본다.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정말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세요!'라고 평가하지만 나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은 '우울하고 예민하다'라고 평가한다. 어쩌겠어, 둘 다 나인걸. MBTI 검사를 해보면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E인 성향과 혼자 방에서 누워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I인 성향이 반반 나온다. E와 I가 반반 섞인 사람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데 어색함이 없지만, 낯선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하고 집에 오는 길이 정말 피곤하다. 



조급해하지 않고 나를 바로 바라보는 용기를 가지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싫어하는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성격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 이게 나인걸. 




수염이 풍성하고 뚱뚱한 체형도, 키가 어린아이 정도로 작은 왜소증도, 체구가 220kg가 넘어가는 거구도, 몸이 붙어 있는 형제도, 키가 거인처럼 아주 큰 사람도 똑같이 외치니까. 


난 이렇게 태어났어, 이게 나야!





나에 대해 잘 알게 되니 내가 더 이상 밉지 않고 친구같이 느껴졌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겠지만 나를 용서하는 시간을 더 가지려고 한다. 내가 그동안 주지 못했던 시간을 내가 나에게 선물로 줄 것이다. 

급할 것도 없다. 하나씩 부딪혀보고 몸소 깨달아 가며 그 시간을 보내고 싶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리느라 고생한 나를 위해 잠시 멈춰서는 소중한 시간이 될 테야. 여러분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나요? 힘든 터널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은 영화와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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