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의 과학
Coffee
하루에 한 잔은 꼭 마시는 커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원두별로 종류도 많고 맛도 다양한 커피이지만 커피숍에선 늘 먹던 아아만 주문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퇴근 후 무료한 시간을 때우려 원데이 커피클래스에 참가한 적이 있다. 원두의 신맛, 단맛, 쓴맛을 골고루 체험하고 나니 몰랐던 세상에 눈이 뜨이는 기분이였다. 아 메리카노의 과학
에티오피아 원두는 열대과일 같은 단맛과 상큼한 산미가 났다. 클래스 강사님께서 케냐는 커피를 재배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환경을 갖춰 풍부한 맛을 가진 원두라 하셨다. 콜롬비아 원두, 코스타리카 원두는 산미가 어느 정도 있는 원두이다. 코스타리카는 오렌지, 자몽, 라임향도 났다.
산미와 반대되는 커피는 고소한 맛이 나는 스모키한 커피라고 표현했다. 브라질 원두는 부드럽고 카라멜 초콜릿향이 난다. 강사님께서 과테말라는 견과류 맛이, 인도네시아는 다크초콜릿 맛이 난다고 하셨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맛을 구별하지 못하겠다. 한참 동안 커피를 입 안에서 굴리다보니 내가 언제부터 커피를 즐겨마시게 되었던가하는 생각이 문득 났다. 분명 예전에는 써서 커피를 마시지 못했는데 말이다.
'난 커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 꿈을 이루면 또각 구두를 신고 다녀야지!'
사랑, 우정, 꿈 모두 갖겠다고 덤비던 시절이 있었다. 갖고 싶은 게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꿈 많은 소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소녀는 점점 생기 잃은 눈빛으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따금 지하철 창문에 똑같은 하루에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 어른의 모습이 비칠 때면 깜짝 놀란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피곤한 내 눈동자를 보노라면 10년 전 서울 지하철을 처음 타고 설레여하던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열여덟의 나는 TV 뉴스에 나오는 국회의사당과 경복궁이 서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우리 가족은 바다로 여행가는 것을 좋아해서 여행으로라도 서울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에 뽑혀 발대식에 참여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엄마는 서울에 간다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같이 기차를 타고 가주었다. 엄마랑 둘이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을 때의 그 때 그 놀라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게 우리나라라고?' 집 근처의 모습과 전혀 다른 풍경에 깜짝 놀랐다.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빌딩은 마치 외국에 온 것같은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지하철을 타는 것도 아주 어려웠다. 내가 살던 동네는 지하철이 없어서 한번도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야만 하는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야하는 것일까? 타는 방향도 어려웠고, 노선 색깔은 또 어찌나 많은지! 수많은 지하철 노선이 미로같이 느껴졌다. 역무원에게 물어물어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소녀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지 오래다. 익숙하게 지하철을 타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움직여도 발걸음이 알아서 목적지까지 안내해준다. 자주 다니는 노선은 앞을 보지 않고 걸어도 유령처럼 저절로 움직인다.
처음 아메리카노를 먹었을 때가 떠오른다. 대학생이 되어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 갔는데 친구들 중 한 명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나는 커피를 마실 줄 모르는 몸만 어른인 아이였으므로 초콜릿 라떼를 주문했다. 우리들 대부분은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못했으므로 친구의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뺏어 먹고 이렇게 외쳤다.
'뭐 이런 맛이 다 있어?'
'이런 건 무슨 맛으로 먹는거야?'
'깔끔하잖아, 조금만 있으면 너도 아메리카노만 먹게 될걸?'
시간이 지나자 우린 커피를 시켜먹기 시작했는데 카라멜 마끼야또가 한계였다. 그보다 더 쓴 커피는 너무 써 마시질 못했다. 난 그때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실 줄 알게 되었으니까! 카라멜 마끼야또만 먹으면서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거기다가 술집에 주민등록증을 당당히 내밀고 들어갈 수 있으니까, 운전면허증도 땄으니까 정말 어른이 된 거지!
그 땐 몰랐다, 진짜 어른은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게 된 순간부터 온다는 것을. 친구의 말처럼 '아메리카노의 깔끔한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아메리카노를 생명수처럼 달고 사는 피곤함에 찌든 '진짜 어른'이 되어버리니 하루라도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못하면 피곤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아메리카노를 마실 줄 알게 된 이후에는 원두의 맛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카페에 가면 산미가 있는 것과 고소한 맛이 나는 것 중에 선택하라고 했다. 처음엔 두 가지 맛을 구분하지 못했다. 여러 번 원두를 바꾸어서 먹어보고,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스페셜티도 마셔본 이후에야 혀가 조금씩 맛의 차이를 감별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취향을 알아가게 되었다고 할까? 나는 산미 있는 아메리카노만 마시게 되었다.
산미 있는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줄 알게 되는 어른이 되어서야 청춘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다. 청춘 드라마를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아련함, 그리움.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하며 씁쓸한 맛이 목구멍을 콱 막혀온다. 그 맛은 쉽게 씻겨내려가지 않고 가슴 속 돌덩이가 되어 콱 박혀버린다. 그 돌덩이를 치워내면 어린 시절의 꿈 많던 내가 보인다.
나는 꿈꾸었던 것들을 이루는데 성공한 멋진 어른이 되었을까?
먼저, 우정부터 보자면 '흠...' 스럽다.
모든게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영원히 친하게 지낼 것을 약속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퇴근하고 나서 남는 시간을 쪼개 친구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경조사 때가 아니면 얼굴 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사랑을 보자면 더 '흠...' 스럽다.
영원히 사랑할 것을 약속했던 첫사랑과는 헤어진지 오래다. 물론 그 다음에 줄줄이 만난 남자들과도 똑같이 약속했지만 줄줄이 헤어져버렸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정과 사랑 모두 실패했으니 다음 순서인 '꿈'은 어떨까? 꿈을 보자면 더욱 처참하다. 예전 내 꿈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기가 찬다. 나는 생활통지표에 우주가 좋아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써냈다. 아뿔싸, 우정, 사랑, 꿈 어느 것 하나 이룬 것이 없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을까?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울고 웃고 행복하고 불안하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사랑과 이별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한번의 사랑과 이별을 겪고 나면 수많은 감정들을 배우게 된다. 처음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은 새롭고 설레여서 잠도 잘 못잤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꿈을 얘기했던 순간이 별처럼 반짝였다.
참 해맑았던 순간들이었지만 정작 그 순간에는 몰랐다. 지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맑고 순수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 그 때의 감정도 잘 알게 되면서 내가 왜 그랬는지 알게 된다. 이렇게 했었어야하는데, 하는 후회와 그렇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아련함이 밀려온다.
누군가 내게 청춘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초콜릿 라떼에서 카라멜 마끼야또까지'라고 답하겠다. 우리에게 있었던 처음이어서 설레였던 순간들은 초콜릿 라떼와 카라멜 마끼야또처럼 달디 달다.
청춘이 지나가는 순간은 '카라멜 마끼야또에서 아메리카노까지'라고 답하겠다. 청춘이 지나간다는 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다. 삶의 지혜와 혜안이 생긴만큼 해맑음과 순수함은 잃어버린다.
청춘이 지나갔음을 알게되는 순간은 '아메리카노'라고 답하겠다. 언제부턴가 아메리카노만 마시게 되고, 언제부턴가 커피 취향이 바뀌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다. 현실과 이상을 타협할 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커피 취향이 바뀐다.
난 어린 시절 꿈꾸었던 우정, 사랑, 꿈 모두 못 이루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다. 나한테도 빛났던 순간들이 있었고, 처음이어서 서툴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순간들이 지나가 서글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내게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족하다. 다들 눈을 감고 그 순간들을 떠올려 보시라.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가?
아, 내일 또 출근하면서 아메리카노를 사먹겠지만 가끔은 초콜릿 라떼와 카라멜 마끼야또를 주문해본다. 지금은 달아서 한 잔을 다 못 먹는 걸 알면서도 커피 한잔으로 세상을 꿈꾸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