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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킴 Oct 21. 2023

계절은 비와 함께 오며 '향기' 내어주니

오늘의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의 곁들임




Scent
시간을 향기로 기억하다



아침 출근길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 겨울이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짐과 동시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올해도 얼마 남지 않고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내년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통상적으로 겨울은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이지만 11월부터 패딩을 꺼내기 시작해서 3월까지는 입는 것 같으니 5개월은 겨울옷을 입고 지낸다. 그나마 12월은 크리스마스로 기분이 들뜨고 소중한 사람들과 연말모임을 하다보니 빨리 지나간다. 하지만 1월, 2월이 되면 거리의 불빛들도 꺼지고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때부터 겨울은 길게 느껴진다.



봄과 가을의 적당한 온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야속하다. 봄가을은 어째서 이리도 짧은 것일까? 분명 학교에서는 3개월 단위로 계절이 바뀐다고 배웠는데 말이다. 실제 체감 계절로는 11월과 3월이 겨울에 편입되고, 5월부터 9월까지는 여름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조상들은 절기를 통해서 계절을 구분하였기에 해당 절기가 되면 뉴스에서 '오늘은 00입니다, 그래서 날씨가...' 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정확한 계절 구별법이 있는데 바로 '비'이다.  나는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을 안다. 비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꼭 온다는 것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내리는 비가 내리고 나면 따듯해진다. 봄에서 여름으로 갈 때 비가 내리면 후텁지근해진다. 여름에서 가을이 될 때는 공기가 차가워지고, 겨울비가 내리면 제법 두꺼운 외투를 꺼내야 한다. 그래서 계절이 바뀔 즈음 비가 내리면 '아 이제 계절이 바뀌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비의 냄새를 맡고 계절에 어울리는 향을 찾아 떠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적어두었던 일기장을 펼쳤다.



오늘은 2월 중순이니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봄비가 내렸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하루종일 창가에서 빗소리만 들었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무겁다. 생리할 때가 되었나 스케줄러를 확인해보려 했는데 지난 달에 언제 했었는지 체크를 해놓지 못했다. 젠장 미리 미리 체크해놓을걸..


내 마음은 잘하고 싶은 마음과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욕망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모양새이다.

벌려놓은 일이 많다. 해야할 일도 많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다. 그 모든 것을 다 해내야하는데 오늘은 몸이 움직여지지 않네. 그래서 우울한가보다. 봄이 오면 데미안의 소설마냥 알을 깨고 나오고 싶다.



봄비가 내리고 나면 봄에 어울리는 향을 찾는다. 봄엔 역시 플로럴향이 제일이다. 잠들어있던 꽃봉오리가 '팡'하고 터지는 것만 같은, 장미정원에 서 있는 듯한 향. 오렌지나무의 향에 은은한 플라워의 향이 감돌면 금상첨화. 피치, 베르가못, 재스민, 연꽃 향을 뿌리고 나면 어쩐지 우아한 여인이 되어 장미정원을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풀잎향도 기분 따라 바꿔 뿌리기 좋다. 싱그러운 풀잎 내음, 코 끝을 간지럽히는 가벼운 향.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향을 뿌릴지 고민하며 그날 하루 내가 얻고 싶은 기분을 뿌린다.





여름엔 두 가지 계열의 향을 쓰는 것 같다. 첫번째는 코튼향. 비누향이 물씬 나면 세탁 후 햇빛 가득한 곳에 쨍쨍하게 말린 이불이 연상된다. 햇볕에 잘 마른 빨래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향을 맡으면 심신이 편안해진다. 두번째는 상큼한 향. 레몬, 페퍼민트, 허브 향을 뿌리면 상쾌하고 시원한 기분이 든다. 해안가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 냄새가 느껴진다. 더운 여름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느낌이랄까?



창 밖을 바라보며 내리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비를 맞고 있는 동안은 고통스럽지만 이 비는 반드시 그칠 것이다. 지금 내 인생도 비를 맞고 있다. 비 갠 후 하늘이 푸른 것처럼 내 인생의 비가 그치고 나면 인생 2막이 펼쳐지기를. 





오늘은 가을비가 내렸다. 여름이 너무 길고 더워서 언제 시원해지려나 생각했는데 가을비가 내리고 나니 벌써 아침공기가 다르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 창문을 열어 두어도 차가운 공기가 뺨에 내린다. 요새 처서 매직, 말복 매직이라는 말이 있던데 8월 중하순이 되면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시원하다. 가을은 참으로 하늘이 높고 푸르르다. 깨끗한 하늘을 보면 저절로 피크닉을 가고 싶어진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항상 날이 맑으면 어디서 찍어도 예쁜 인생샷을 건질 수 있을 텐데! 봄엔 미세먼지, 여름과 겨울은 덥고 추워서 가을을 놓치면 1년 동안 피크닉을 기다려야하니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점점 낙엽이 떨어진다. 형형색색 꽃도 끝을 모르던 태양도 힘을 잃어버린다. 낙엽이 떨어지면 센치해지는 마음만큼 따뜻하고 포근한 향이 그립다. 샌달우드의 은은하고 부드러운 나무향을 꺼낸다. 우디향의 묵직하고 목까지 올라오는 니트를 입은 듯한 따뜻함이 좋다.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바닐라라떼를 먹고 싶은 날이 있다. 커피에 바닐라 시럽을 뿌리고 나서 바닐라향을 머금은 파우더리한 향을 찾는다. 우유 위 거품에 시나몬을 살짝 얹은 날엔 스파이시한 시나몬 향을 뿌린다. 그런 날엔 괜시리 가죽 자켓을 입고 집 밖을 나선다.




오늘은 겨울을 알리는 겨울비가 내렸다. 거리를 가득 채우는 불빛과 캐롤 소리,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과 먹는 맛있는 식사, 양털처럼 부드러운 목도리와 반짝 반짝 빛나는 트리까지. 나는 크리스마스가 참 좋다. 연말을 빌미로 바쁘게 사느라 잘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메리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이어'를 외치는 것도 좋다. 한 해를 무탈하게 보낼 수 있었던 고마운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한다. 각자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는 재미가 있다. 겨울에 단연코 손이 많이 가는 향은 머스크 향이다. 포근하고 밀키한 향을 맡으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홈파티에서 먹을 달달한 디저트와 어울리는 달콤한 향은 찰떡궁합이다. 새해가 되면 괜시리 올해 이뤄내야할 목표를 적어보기도 하고 참 설렌다. 그래서 헬스장의 1월 매출이 가장 높다고 나온다고 하지? 내년을 기다리면서 사계절의 향을 다시금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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