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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런 Aug 23. 2024

남편의 동굴로 같이 들어가다

[3장 -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방법]

'동굴로 들어간 남편'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단어다. 성격이 급한 내게는 더더욱 그렇다. 사실 동굴에 들어간 것이 큰 잘못은 아니지만 어서 빨리 나와주길 바라는 상대의 마음은 애가 타기만 한다.


남편은 다투고 난 후 곧잘 동굴로 들어가곤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다스려 다시 대화를 하자고 하는 남편을 나는 그저 답답하게만 바라보았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하는 생각에 속이 탔다.


나는 다투고 나면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감정을 풀 수 있는 시간을 회피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골든 타임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감정의 응어리가 더 극심해질 것만 같았다. 찝찝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며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우는 상황을 경험할 자신도 없었다.


특히 남편이 자신만의 은밀한 공간으로 들어갈 때면 정신이 아찔해졌다. 남편은 다투고 난 후 자주 다른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혼자 있길 원했다. 내 입장으로서는 완벽한 이해가 어려웠다. 극단으로 간 감정을 바로 풀지 않으면 더 심화될 것 같은 걱정이 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으면 안 됐다. 참을성에 한계를 느낀 나는 남편의 동굴로 따라 들어가고 말았다. 그 은밀한 공간에 침입해 빨리 대화하자고 남편을 재촉했다. 남편은 질린 표정이었다. 자신만의 공간을 위협받았다는 태세로 더 방어적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다툼은 더욱 절정으로 치닫게 됐고 이는 우리가 싸우는 패턴이 됐다. 나는 왜 그때 그 마음을 참지 못했던 것일까.


우리의 힘으로 해결이 어렵게 되자 그때 당시 상담을 받고 있던 상담사님께 조언을 구했다. 상담사님의 조언은 분명하고 단호했다. 다툼을 해결하는 데 각자의 시계가 있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싸움이 심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면 그 자리에서 타임아웃을 외치고 너무 길지 않게 감정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셨다.


나도 다툼을 해결하는 데에만 급급하기보다는 남편의 시간을 기다려주고, 남편도 그 생각할 시간을 너무 길지 않게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 이후 다툼이 심해질 것 같으면 호흡을 가다듬을 만큼의 시간을 갖고 있다. 덕분에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거의 없다.


그렇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심리적 시계가 있다. 나는 그동안 남편에게 나의 시간을 강요하고 있었고 이것이 다툼을 극화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 또 내 마음이 편하자고 빨리 갈등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남편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텐데.


심리적 시계는 다툼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부부 관계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복잡 미묘한 것 같다.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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