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러 가는 길
오늘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됐는데 기가 빨렸다.
벌써부터 지친 느낌이다.
지하철 속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그런 것 같았다.
웃고 있는 사람은 없고
뭔가 어디에 찌든 표정이었다.
그중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눈이 갔다.
나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자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보편적으로 보면) 젊은 사람들보다는 자식이 어리든 어리지 않든 자식이 있을 확률이 높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눈에 들어왔다.
저런 찌든 표정을 하고 어디를 뭐 하러 가는 걸까 싶었다. 적어도 그 퇴근 시간에 그들의 복장을 보면 놀러 가는 복장은 아니었으니
그러다 문득 그들이 무엇을 하러 가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자식’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자식’이 그 사람 삶의 원동력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식이 없어 감히 그 마음이 짐작도 가지 않는다.
자식이 뭐라고 삶의 원동력이 되나 싶어
‘자식을 낳아봐야 알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어떤 원동력이든 어떤 이유든
다들 살아가는 게 대단하고 신기했다.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싶었다.
생각의 결과
나름 3가지 이유를 찾았다
1. 날 위해 사는 사람
일에 미친 사람, 자신의 일이 너무 좋아 일과 사랑한 사람, 그렇게 좋아하는 일이 생계도 해결되는 상황인 사람
2. 자식
3. 부모
이렇게 3가지로 간추려졌다.
1번의 이유 날 위해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
그저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해가 거듭되면 될수록 넘어야 할 산은 점점 높아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다들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점점 넘어갈 산이 높고 많은데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다.
요즘 그냥 산다는 말에 ‘그냥’이 의심스럽다.
그냥 사는 게 뭔지 묻고 싶다.
어쩌면 그래도 지금 사는 게 조금이라도 좋으니
‘그냥’이라고 말하는 걸까.
난 뭘 위해
무엇 때문에
뭐가 좋아서
사는 걸까.
어쩌면 가족과 떨어져 지내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의 분위기와 정을 잊어버린 걸까.
아님 현재 내 상태가 어딘가 좋지 않은 걸까.
지금은 대구 가는 기찻길 안인데
집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