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통풍과 맹장 그래도 괜찮아

사랑의 언어

by 김태호

누군가 내 오른쪽 엄지발가락 첫 번째 관절에

KakaoTalk_Photo_2025-08-06-19-05-33 002.jpeg

대못을 박았습니다.

심장의 리듬에 맞춰 발가락 속에 든

말벌이 커다란 침을 들이밀다 되돌립니다.

숨을 참아 보아도 심장은 멈추지 않습니다.

자세히 내려다보니 발을 입에 문 호랑이 한 마리가

비열한 미소를 짓습니다.

장도리를 들어 못을 뽑거나

호랑이의 머리를 내려치고 싶습니다.

차라리 발가락을 잘라 버리면 더 시원하겠습니다.

배우지도 않은 라마즈 호흡을 쥐어짜며

신음을 삼킵니다.

남편을 옮기려던 아내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119에 전화를 겁니다.

건장한 체격의 구급 대원들이 저를

들어 올리려 합니다.

호랑이에게서 제 발을 빼내기 위해 힘을 쓰면

쓸수록 호랑이는 턱을 더 강하게 조입니다.

"환자분, 아무래도 통풍인 것 같은데 아파도

발을 들고 휠체어에 타셔야 해요."

"한 번만 힘을 내 보세요!"

죽을 각오로

호랑이의 입에서 발을 뽑아냅니다.

"으악! 으아아아악!"

아서왕이 엑스칼리버를 뽑아 올릴 때의

함성과 함께 제 오른발이 바닥에서 떨어지자

구급 대원들은 재빨리 저를 들어 휠체어에

옮겨 놓습니다.

구급차로 향하는 동안 고무바퀴가 작은 티끌을

밟을 때마다 발 속에 든 말벌의 침이

삐져나옵니다.

차에 오르려 할 때 응급실 문이 열리고 침상으로

몸을 옮길 때 발을 문 호랑이가 발악하듯

턱을 조입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통풍인 것 같아요.

일단 진통제 좀 부탁드릴게요."

간호사의 빠른 손놀림이 느껴집니다.

몸에 주삿바늘이 들어옵니다.

늘 싫어 눈을 찌푸리게 하던 가늘고 뾰족한 것이

그날은 죽어가던 곰에게 꿀단지입니다.

그 작은 주삿바늘이 대못을 뽑고 말벌을 쫓았으며

호랑이에게는 곶감이 되었습니다.

몇 해가 지났습니다.

피곤이 쌓인 주말 저녁

칼국수를 좀 과하게 먹었어요.

식곤증이 몰려와 단잠을 자는데

이번에는 말벌이 뱃속에서 날뜁니다.

곶감에 달아났던 호랑이가 허리를 물고 늘어집니다.

머릿속에는 장도리가 탕탕 울립니다.

"오빠, 병원 가자."

아내가 제 팔을 끌어당깁니다.

"괜찮아.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

좀 쉬면 나을 거야."

"아니야 오빠, 느낌이 이상해."

아내의 말에 이끌려

통풍 후 두 번째 응급실 방문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배를 누릅니다.

오른쪽 아랫배에 손이 닿는 순간

"으악!"

"아무래도 충수염, 그러니까 맹장 같습니다."

엑스레이, CT, 초음파를 찍습니다.

"충수가 지금 많이 부었어요."

"빨리 수술하는 게 좋겠습니다."

"네, 선생님."

"자,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세요."

"하나~ 둘", "하나~ 두 우우…."

"…."

지금껏 내 몸에 가장 큰 고통이었던

통풍과 맹장의 추억입니다.

돌이켜보면 고통은 몸의 축복입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살이 불에 데어도

타는 냄새가 나기 전까지는 몸을 옮기지

않을 테니까요.

현대 의학이 없었다면 통풍의 끔찍한 고통을

참지 못해 정말 발가락을 제 손으로

잘라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병원 덕분에 맹장으로 생을 마감하지도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였다면 친한 형님은 고등학교

그리고 함께 글을 쓰는

동료는 초등학교 때가 생의 마지막이었다는

얘기이지요.

고통을 만든 신의 섭리에 감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도 기적이지만

제가 아플 때 가장 큰 위안은 언제나

아내입니다.

고통의 시작과 끝에 항상

손을 잡아주는 단 한 사람이 아내였으니까요.

'괜찮다'는 말 '괜찮을 거'라는 위로

'조금 있다 만나자'는 약속

'이젠 살만 한가 봐'라는 농담까지

제게는 고통의 섭리와 생명 연장의 꿈을 능가하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오빠~ 괜찮아~"

눈을 뜨면 언제나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곁을 지킵니다.

살아 있음에 행복을 느낍니다.

KakaoTalk_Photo_2025-08-06-19-05-33 007.jpeg

#통풍 #맹장 #가족의 언어 #수술 #고통 #아내 #괜찮아 #사랑의 언어

keyword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