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언어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염려합니다.
여름이 오기 전부터 추위를 걱정하니까요.
모르면 염려, 알면 걱정이니
저는 결국 두려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겁 많고 예민한, 그야말로 쫄보입니다.
쫄보가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아빠는 슈퍼맨이죠.
아빠의 팔은 휴대용 그네,
어깨는 회전목마입니다.
집 안의 지네쯤은 휴지에 말아
창밖으로 던지고,
사나운 들개와 맞설 만큼 용감해야 합니다.
세월이 지나 꼬맹이들이 벌써
열다섯, 열셋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더 이상 아이들의 슈퍼맨이 아닙니다.
몸살이 잦아지고,
소화 기능과 근력은 떨어졌습니다.
두 명은커녕 한 명 어깨에 올리기도 벅찹니다.
레이저 같던 눈은 점점 흐려지고,
머리숱은 줄었으며 뱃살은 처집니다.
“아빠, 백 살 때까지 나 업어 줄 수 있지?”
"아빠, 할 수 있지?"
“그럼, 우리 딸 백 살 때까지라도 업어줄 수 있지!”
딸도, 아빠도 압니다.
세월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아빠가 나이 든다는 걸요.
그럼에도 아이의 “할 수 있지?”라는 말은
아빠 가슴에 꺼지지 않는 원자로입니다.
그 힘은 더 이상 혼자 애쓰는 에너지가 아닙니다.
용암처럼 뜨겁기보다
새벽 구들장처럼 은은하고 따뜻합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번쩍 들어 올리는 대신
어느새 자란 아이의 등에 온기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슈퍼맨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하늘을 날 수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의지할 가족이 있음에
쫄보 아빠는 이제 힘 빼고,
예전처럼 살렵니다.
그리고 언젠가 백 살쯤 되었을 때,
한 번은 힘을 내어
아이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리겠습니다.
그때도 딸은 제게 이렇게 말하겠죠.
“아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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