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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닐거라는 아들의 착각

by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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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팔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1943년. 배고팠던 시절, 아래 동생 한두 명이라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먼저 철든 형제들은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엄마는 동생들을 위해 학교 대신

공장에서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밤새 재봉틀을 돌리다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여린 손가락에 바늘이 박히는 일도 잦았습니다.

붕대를 감은 손으로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부산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벽길을

한 시간 넘게 걸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인자한 부모님과

우애 좋은 형제들을 만나 결코 슬프지만은

않았습니다.

비극은 자신이 선택한 결혼으로 시작되었지요.

그 시절 많은 아버지들이

좋지 않은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엄마가 선택한 남편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었습니다.

엄마는 세상을 살필 줄 몰랐던 순수와 어리석음으로

아버지를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으로 알코올 중독과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나의 아버지는 한 평생 엄마의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가족 모두가 비참했습니다.

엄마가 없었다면 혀를 쯧쯧 찰만한

우리 가족의 비극이 뉴스에

실렸을 지도 몰라요.

누나와 저는 엄마의 피에 젖은 날개 아래에서

아버지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동생들을,

결혼 후에는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피를 흘리는 사람이 엄마였습니다.

저는 그런 엄마에게 효도하고 싶었어요.

그 피와 눈물을 닦아주는 아들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보단

걱정거리가 되지 않기에도 벅찬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아내를 만났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밝고 순수하며 거짓과 꾸밈이 없어요.

가끔 너무 지나쳐 지켜보는 저와 상대를

당황하게도 만들지만

부지런하고 정이 많아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지요.

항상 남편을 믿고 남편 편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살아 있어 다행이다’는 감정을

선물하는 존재입니다.

아이들을 향한 열정도 지극합니다.

아무리 바쁘고 지쳐도

대부분의 식사를 손수 준비해 먹입니다.

열이 나면 밤새 닦고 주물러

아이의 열을 내립니다.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훈육에 최선을 다해

남편이 조금만 거들어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잘 자랍니다.

실천 가능한 교육 환경을 꾸준히 마련하고,

끈기 있게 밀어붙이기에

눈에 띄는 변화들이 벌써부터 나타납니다.

무엇보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딸들에게서

그 사랑이 고스란히 흘러넘칩니다.

첫째는 예의 바르고 책임감 있으며,

친구와 동생들을 정성껏 돌보는 아이입니다.

둘째는 누구와도 금세 친해지고,

언제나 주변을 웃게 하며

맡은 일은 척척해냅니다.

아버지 복 없던 저는 엄마, 아내,

딸들을 통해 아버지로 인해 빼앗긴 부분들을

보상받고도 남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일상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엄마와 아내의 관계가 틀어집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아내의 문제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상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던

아버지였기에 결혼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지요.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문제의 중심,

아내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이가

엄마일 수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감기 같은 거라 여겼습니다.

며칠 지나면 자연스레 회복될 줄 알았습니다.

설령 감기가 아니라 태풍일지라도

할퀴고 휩쓸어도 지나고 나면

결국 새싹이 돋고, 거리가 정돈되듯

모든 게 제자리를 찾으리라 믿었습니다.

엄마와 아내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한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일생을 피해자로 살아온 엄마라면,

자식 같은 며느리도 품을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여인에게

또 한 번 피 묻은 날개를 펼치리라

기대했습니다.

평생 자식만 바라고 산 엄마의 자식에

아내도 포함될 줄 알았으니까요.

그러나,

그 모든 믿음은

제가 엄마에게 품었던 가장 근본적인

착각이었습니다.


사랑을 주는 엄마의 방식이

항상 옳거나, 모두에게 적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다른 이를 다치게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분명 피해자였지만,

그 사실이 엄마를 언제나 옳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않았습니다.

아내의 고통 앞에서

저는 너무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피 묻은 날개는

다른 이의 날개를 찢기도 합니다.

그 단순한 진실을 깨닫기까지,

저 또한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사랑은 단정하는 것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상처 입은 사랑에는 한계가 있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어쩌면 사랑이란

모든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인정하는 곳에서

시작되는, 그래서 인간의 교만과 착각을 발가벗기는

수단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끊임없이 속고 아파하게 되지만,

또 사랑하게 되는

신의 징벌인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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