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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에 아내가 병들었다.

물로 바위 뚫기

by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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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이 모여 산을 이루듯

가벼운 눈도 쌓이면 지붕을 무너뜨립니다.

어떤 말은 녹지 않는 눈이 되어

한 사람의 마음에 내립니다.


나는 10년을 살고서야

아내의 마음에 내린 만년설을 보았습니다.


"얘, 얼굴이 왜 이래? 왜 이리 상했어?"


내게는 대수롭지 않은 말입니다.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어온 어머니의

레퍼토리니까요.


과음, 과로, 수면 부족, 스트레스 같은 이유로

얼굴이 푸석할 이유는 넘쳐나니

그저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렇지 않던 그 말이

아내에게는 마음을 누르는 얼음덩이였습니다.

죄인처럼 여겨지게 했고

감정의 찌꺼기가 숨구멍에 들러붙어

아내의 호흡을 방해하고 있었음을

저는 십 년이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너희는 왜 밥을 이제 먹니?"


손주들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홈스쿨링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철학이 너무 늦게 잠드는 것 외에는

가족의 잠을 제약하지 않아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도 괜찮다고 여깁니다.

열 시간을 자도 별문제 없다는 입장이기에

점심 같은 아침도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학원이라는 직업상 출근 시간도

여유가 있습니다.

아침을 열 시에 먹어도

즐겁고 감사한 하루의 시작일 뿐입니다.


팔십 년 넘게 아침을 아침에 드신 어머니는

이해하기 힘든 풍경일 수 있습니다.

먹거리가 없어 굶어 본 기억을 가지셨으니

손주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말이 아내의 마음을 눌렀습니다.

설명할 방법을 몰라 입을 다물고

결국 마음의 문도 닫았습니다.


그렇게 십 년 넘게 쌓인 언어의 무게에 아내는

무너졌습니다.

마음이 상했고 부부관계에도 금이 가는 듯했지요.


처음에는 아내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 말들이 어째서 상처였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다투었고

아내는 울었고 저는 성급한 마음에

화를 내며 설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도 의미가 없었고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못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저는 아내의 아픔의 시작과 과정은 무시한 채

결과만 가지고 제 입장에서 아내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들었으니까요.


아내의 마음 깊은 곳에 내 시선이 닿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엄마,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


아내의 깊은 상처를

들여다본 후, 저는 어머니와 자주 각을 세웠습니다.


"얘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입을 막으려 하니?"

"내가 이 나이에 내 아들, 손주한테

그 정도 말도 못 하니?"

"내가 무슨 나쁜 말 했다고 그래?"


세상이 바뀌었고, 자라온 환경도 다르며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그 흔하디 흔한 말들로 어머니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들과 어머니는 또다시 마음을 다쳤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수십, 수백 번 반복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울기도 했고

홧김에 다시 보지 말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또다시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어머니가 조금 달라지셨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지는 않습니다.

참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말끝을 흐립니다.

손주들을 향해서도


"뭘 먹고 이렇게 통통하게 살이 올랐어?"

"살이 단단하고 머리에 윤이 난다."

하십니다.


물론 고부간의 관계가 아직 온전하다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얼마나 더 돌아야 삐걱이지 않고

매끈하게 맞물려 돌아가게 될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기대조차 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요.


부부 싸움이 칼로 물 베기라면

고부간의 갈등은 물로 바위를 뚫는 일 같습니다.


아주 조금씩 모두 변할 만큼

시간이 필요한 일 말입니다.


십 년 전, 그리고 이십 년 전의 우리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치는 아픔은
결국 거친 바위의 한 부분을 매끈하게 만들었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달랐기에,
어쩌면 더 맞추기 어려운 사이였지만,
우리는 틀린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언젠가 서로를 바꾸어갈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믿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슴에 뚫린 작은 바위 구멍.
그것은 고통이 지나간 자리이자,
소중한 희망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이제
섣불리 말하거나 성급히 해결하려 들기보다
조금 더 기다릴 줄 압니다.

기다림은 포기가 아닙니다.

얼음덩어리를 가르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배처럼,
우리는 때로
최선을 다해 얼음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봄을 기다리는 인내와 지혜가
배를 지키고 문제를 풀어가는
진짜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과 기다림이 깃든 ‘이해’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함께 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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