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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칫밥과 계란 프라이

호랑이 이모의 밥상

by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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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호랑이라 불리는 이모가 계십니다.

여느 가정이나 호랑이 콘셉트를 소유하신

어른이 한두 분 꼭 계시잖아요?


이모는 팔 남매 중 셋째인데

여장부 같은 기질을 가져

한창 때는 고함 한 번이면

아이들은 숨을 곳을 찾아

쥐구멍을 들락거릴 정도였지요.


그런 이모가 제게만은 유독 다정하셨습니다.

단 한 번 큰 소리로 나무라거나

친 아들 이름 부르듯 하시는

"야 이 새끼야!" 소리 한 번 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그 대신 이모는 저를 만날 때마다

"밥은 먹었나?" "밥 묵자." 하십니다.

습관처럼 하시는 말씀 뒤에는

따뜻한 밥상이 따라왔습니다.


그 말과 밥이 그렇게 고맙고 따뜻했던 줄은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호랑이 이빨 빠지고, 손톱 다 무뎌진 뒤에 말이지요.


어릴 적 참 힘든 아버지를 만난 덕에

우리 식구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때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 호랑이 이모입니다.


이모는 이모부와 함께 유원지에서 닭장사를 하셨는데

두 분 모두 수완이 좋고 부지런하여

꽤 많은 돈을 버셨어요.

그리고 번 돈으로 밑에 달린 다섯 동생들을

알뜰히 챙기셨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상황에도

이모는 가난한 동생들의 처지를 원망하거나

베풂에 대한 생색 한 번 내지 않으셨고

힘들거나 억울한 기색도 없으셨습니다.


방학이 되면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장사를 돕기 위해 이모네 집에 머물곤 했습니다.

이모 댁에서 보낸 그 여름과 겨울날의 기억은

빛바랜 기와조각처럼 마음 구석에 얹혀 있지만

그 가운데 유독 또렷한 장면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이모가

저와 사촌 동생을 위해

상을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접시 위에는 계란프라이 두 개가 놓여 있었어요.

그런데 상을 바닥에 내려놓기도 전에

사촌 동생이 접시를 낚아채더니

계란프라이 두 개를 눈 깜짝할 사이에

입에 털어 넣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저도 계란 프라이를 정말 좋아했지만

동생이 집어 든 접시를 빼앗지도 못했고

이모에게 다시 구워 달라고 떼를 쓰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텅 빈 접시와 동생의 입만 바라볼 뿐이었지요.


동네에서는 까부는 녀석들의 복부에

주먹 한 방 먹여줄 깡도 있었고

눈 덮인 산에 토끼 잡으러 뛰어오를 만한

간도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깡도 간도 다 사라지고

눈에 눈물만 그렁였어요.


"이기 미칬나? 이기 뭐 이런 짓을 하노!"

이모는 아들 뒤통수를 때리며 호통을 치셨고

동생은 태연히 입에 든 프라이를

꾸역꾸역 목으로 넘겼습니다.


이 모습이 왜 평생 기억에 남았을까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게 눈칫밥이라는 사실을

온몸에 새겼기 때문일까요.

철없던 동생에게 욕은커녕 훈계 한마디 할 수 없었던

가난했던 시절의 상징이라서일까요?


이제는 어른이 된 저에게
이모는 여전히 같은 말을 건네십니다.
“밥은 묵었나?”

그 언어에 담긴 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가난했던 동생과 조카에 대한 애틋함

그때 계란을 맘껏 먹여주지 못했던 미안함,
힘들고 거친 현실 속에서도 다정했던 마음,

그 모든 것이 “밥 묵자”라는 한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그 언어가
저에겐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가난했던 시절 속 '진짜 밥상'입니다.


눈칫밥과 계란프라이.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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