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리는 일이 거의 없어요.
감정을 건드리는 장면이 나와도
‘이건 누군가 만든 거니까. 진짜가 아니니까.’
마음을 한 발 물리는 거지요.
그 장면을 접하기 전까지는 저도 그랬습니다.
어느 평온한 주말 오후.
생각 없이 스포츠 중계를 틀었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뒤 이어지는
장애인들의 스포츠 축제, 패럴림픽.
그날은 ‘보치아’라는 경기였어요.
표적에 공을 굴려 가장 가까이 붙이는 경기.
컬링과 비슷했습니다.
한 선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공을 손에 쥐고 팔을 앞뒤로 천천히 흔들어요.
그 동작이 한동안 이어졌지요.
그 순간,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왜 저렇게 시간을 끌지. 경기가 지루해지잖아.’
채널을 돌릴까 싶던 그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선수는 하반신이 마비된 채 휠체어에 앉아 있고,
손가락 근육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그래서 팔을 앞뒤로 흔들어
손에 남은 힘이 완전히 빠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그때 공을 떨어뜨린다고 말이지요.
나는 그제야
그의 휠체어와 떨리는 손,
이마에 선 굵은 혈관과 땀방울,
그리고
무너지지 않으려는 눈빛을 제대로 바라보았습니다.
가슴 어딘가가 툭, 내려앉았어요.
그 길고 긴 예비 동작이 더는 지루하지 않았지요.
팔을 흔드는 그 순간에
그가 감내한 시간들, 고통, 혹시나 하는 불안,
그럼에도 던지겠다는
단단한 열망이 함께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공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사람을
잠시나마 가볍게 여긴 나 자신이
더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그날, 혼자 다짐했어요.
사랑하는 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팔이 빠질 듯, 내 안에 있는 모든 걸 기울여,
한 사람의 남편으로,
한 사람의 아버지로 살아가겠다고 말이지요.
사실은 그 다짐을
모두 지켜왔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지친 몸으로 귀가한 저녁,
놀아달라며 팔을 잡아끄는 아이에게
‘피곤하니까, 내일 하자.’라며
말을 돌린 날도 있었고,
아내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못 본 척
슬그머니 비켜간 날도 있었습니다.
‘나도 좀 쉬어야지.’
스스로에게 조용히 변명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저를 압니다.
평생을 두고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할 못난 성격과,
잘 고쳐지지 않는 모난 부분들을.
그렇지만, 우리 애쓰는 걸
포기하지는 말아요.
조금 더 힘을 내어, 조금 더 시간을 내어,
말을 건네고, 눈을 마주치고,
함께 걷는 사람이 됩시다.
아직 우리는
손에서 힘이 완전히 빠질 만큼은
아니니까요.
하나의 공을 던지기 위해
모든 힘을 쏟는 것 같아도,
다음 공을 던질 힘은
다시 어디선가 솟아나듯,
사랑도 그렇지요.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이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건네며 살아보면 어떨까요.
사랑을 향한 노력과 노력이
우리 삶을 밝힐 테니까요.
가장 어두울 때 반짝이는 별처럼
힘이 들고 어려운 순간
그대는 빛날 테니까요.
지금까지 내가 쓴 힘은 앞으로 얻을 힘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고난과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서로에게 주어질 '함께'의 위대한 힘을 나는 믿기 때문이다.
-새피엔딩(높은 산을 고른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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