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 남은 건 사랑입니다
아내는 이제 요리를 참 잘합니다.
‘이제’라는 말은,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해요.
결혼 전, 아내가 만들어준 낙지볶음은
양념이라는 국물 속에서
낙지가 수영을 하고 있었고,
볶음밥은 싱겁고 뻑뻑했으며,
떡볶이는 떡에 이가 잘 들어가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제 평가는 같았습니다.
“맛있다.”
“정말 잘 만들었네.”
맛보다 먼저 느껴졌던 건,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손길과 그 마음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의 요리 실력은
놀랄 만큼 늘었습니다.
모르는 요리도 레시피 한 번 보면
금세 그럴듯하게 완성할 정도이지요.
처음 만든 음식이라곤 믿기지 않을 때도 많아요.
사실 저는
초등학생 입맛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돈가스, 짜장면, 피자, 햄버거 같은 음식을
좋아했지요.
하지만 아내는 채식을 선호하고,
피자집에서 꼭 김치를 찾습니다.
그런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저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뜨거운 밥에 강된장을 얹은 상추쌈이
이렇게 구수할 줄 몰랐고,
고기 없이 만든 콩나물찜이
그렇게 깔끔할 줄도 몰랐어요.
쌀면으로 끓인 잔치국수는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고,
김치찌개에 계란찜을 곁들이면
그게 바로 최고의 한 끼입니다.
이제 아내의 진미채볶음은
제 입맛의 마지막 보루처럼 소중한 메뉴가 되었어요.
아내는 이제 요리를 잘해요.
저도 알고, 아이도 알고, 이웃도 알고,
아내 자신도 잘 압니다.
그런 아내가 요즘 들어 가끔 질투를 보여요.
제가 다른 집 음식에 “맛있네요.”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물론 제게 아내 음식이 제일 맛있습니다.
하지만 초대한 분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예의로라도 맛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면 아내는 묻습니다.
“진짜 그렇게 맛있었어?”
아내의 질투는 때로 이웃이 아니라
햄버거를 향하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산 새우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으면
아내는 말해요.
“나는 이제 요리 안 해야겠다.”
그럴 때면 살짝 억울합니다.
햄버거도 맛있고, 아내의 음식도 맛있어요.
둘 다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압니다.
아내의 질투는 저를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을요.
아내의 요리실력은 변하였지만
처음 그 사랑은 그대로라는 것을 말이지요.
오히려 더 익어가고 성숙하였음이
참 고맙습니다.
아내는 요리를 통해
가족을 돌보고, 삶을 채우고, 사랑을 나눠요.
그 손끝에서 건네받은 수많은 끼니를 생각해 보면
입에 들어온 건 음식이지만,
속에 남은 건 사랑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른 곳에서 밥을 먹을 때,
입은 천천히 움직이고
말은 조금 아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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