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쉬러왔다면서요!
여섯째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숙소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 오늘은 서둘러 이동을 해야 했어요. 꽃보다 누나에도 나와서 유명해진 플리트비체를 가는 날이기 때문이죠. 마구 서둘러 아침 8시에 출발!
입구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입장권을 구매했습니다. 이곳은 국립공원이라 매일 입장되는 사람의 수를 제한하고 있어서 성수기에는 미리 온라인으로 예매를 하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는 전날 온라인으로 확인했을 때 남은 자리가 많아서 현장에서 구매했습니다. ㅎㅎ 그런데 입구가 1,2로 나뉘어 있는데요. 입구1로 시작하는 코스가 인기가 좋아서인지 그쪽은 마감되어 저희는 입구2에서 입장하게 되었습니다.
입구2에서는 E, F, H 코스 중에 선택해서 갈 수 있는데요. E코스는 3시간, F코스는 4시간, H코스는 6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안내해주시는 분이 자세하게 설명해주니까 가서 듣고 결정하셔도 되는데요. 저희는 빅웨이브 폭포를 보고 싶었고, 시간은 너무 길지 않았으면 해서 F코스를 선택했습니다. E코스는 시간은 짧은데 빅웨이브폭포를 볼 수 없어서 패스, 나머지 에이치 코스는 너무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해서 선택할 수 없었어요. 자 이제 마음 굳게 먹고 출발해 봅니다.
F코스는 배를 타는 곳까지 약 2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데요. 아주 짧은 코스로 한 번 배를 타고 건너서 내린 뒤, 배를 갈아타고 아주 긴 코스의 배를 한 번 더 탑니다. 호수 물이 너무 맑고 깨끗했어요. 다만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해가 떳다가를 반복해서 저희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우리... 4시간 동안 무사할 수 있겠죠?
두 번의 배를 갈아타고 내려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니까요. 걷다가 힘들면 우리가 싸울 수도 있잖아요.ㅎㅎ 요기를 하러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판매하는 메뉴가 몇개 없고 거의 햄버거와 샌드위치 종류라서 고민하지 않고 햄버거를 선택. 유럽에서 메뉴 선택이 어렵거나 햇갈린다면 가장 노멀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햄버거 같아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요.ㅎㅎ 그렇게 햄버거를 먹고 본격적으로 빅웨이브폭포를 향해 걷기를 시작해봅니다.
걷는 내내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물이 깨끗한 것은 물론이고요. 주변에 피어있는 꽃과 풀들도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서 너무 예뻐요. 무엇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국립공원에서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이는지 알 수 있었어요. 바닥에는 그 흔한 쓰레기가 하나도 없고, 일부러 공사해서 돌길을 만들 수 있는데도 억지스럽게 길을 만들지 않고 통나무 길과 원래 있던 길들을 고수하고 있더라고요.
억지로 꾸며지지 않은 대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깨끗한 자연을 보면서 한참을 걷다보니 마음에 응어리 져 있던 크고 작은 것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힘든 일이 생기면 등산을 하거나 트래킹을 가거나 둘레길을 걷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만난 빅웨이브 폭포입니다. 저 폭포물이 멀리 있어도 다 튈만큼 엄청나요. 가까이에서 보면 더 장관인데 사진에 크게 담기지 않아서 매우 속상. 이럴 땐 사진 찍는 걸 조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ㅎㅎ 이곳 앞에는 관광객분들이 엄청 많아서 한참 줄을 서야 그 앞까지 갈 수 있어요. 사진 찍는 분들도 많고요.
우리는 한참 동안 빅웨이브 폭포를 보고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또 내리는 거에요. 지금사진작가님이 가져오신 우비를 주셔서 저는 우비를 입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곧 비가 그쳤어요. 우비를 입고 걸으니 엄청 덥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해가 쨍쨍해서 햇살이 뜨거웠는데 우비를 입었다가 벗었더니 땀이 막 나기 시작했죠.
땀을 흘리며 우리는 계속 걸었습니다. 약 4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코스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름답던 풍경이 이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죠. 여기선 걸어서 나가지 않으면 나갈 방법이 없어요. 차도 못 들어오고, 기차나 다른 수단도 없으니까요.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이 몇 번의 고비를 지나고 나니 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코스의 마지막까지 걸어나오면 그곳에서 버스가 기다립니다. 우리를 입구까지 데려다 줄 아주 편한 버스죠. 이 버스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마 6시간을 걸어야 했을거에요. ㅎㅎ 버스를 타는 순간 얼마나 행복했다고요. 이렇게 사람은 아주 작은 순간에도 금방 행복을 느끼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힘들어한다는 것을 말이죠. 이 단순함을 잊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매번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겠어요. 그러면 못할 일이 없을텐데 말이죠.ㅎㅎ
4시간의 트래킹(?)을 마치고, 우리는 플리트비체에서 멀지 않은 라스토케로 이동했습니다. 라스토케는 작은 플리트비체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동네인데요. 실제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사실 피곤해서 라스토케를 건너 뛰고 다음 숙소로 들어갈까 고민도 했지만 라스토케를 가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아서 조금 힘들더라도 들려보기로 했어요.
플리트비체에서는 웅장하고 거대하고 아주 큰 대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면 라스토케는 아기자기함과 작은 자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거에요. 한 번 들어온 마을에서 다시 뒤돌아 나갈 수가 없어서 결국 우리는 한 바퀴를 빙 돌아 걸었습니다.
정말 작은 플리트비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게 폭포도 있고, 강도 있고, 호수도 있어서 보는 맛이 있었던 동네였어요. 걷는 것만 힘들지 않았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이미 한계에 다다른 저의 저질체력으로 인해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얼른 숙소로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여행도 단단한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갈 때마다 느끼는데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은 왜 때문인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ㅎㅎ 이번 여행이 끝나면 정말 진짜로 더 열심히 운동 할거에요! (왜냐면 우리 내년에 또 가기로 했고든요 헤헤)
드디어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크로아티아 풀라라는 도시인데요. 저희가 이번 여행을 계획 할 때부터 풀라에서는 3일동안 숙박하면서 조금 쉬자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래서인지 숙소도 아주 아늑하고(심지어 구시가지 안에 아주 좋은 위치로 숙소를 잡아서 어디를 가든지 움직이기 편했습니다.), 여러가지 집기나 생활용품도 잘 정리되어 있었어요. 우린 여기서 미뤄두었던 빨래도 한 번했지요. ㅎㅎㅎ
어쨌거나 오늘 하루, 너무 많이 걸어서 힘들었는데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조금도 쉴 시간이 없이 나가야 했습니다. 조금만 늦으면 저녁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유럽은 칼 같이 일찍 닫는 곳이 많아요.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식사를 하러 나갔습니다. ㅎㅎ
풀라에서 아주 유명한 이탈리아 식당을 찾았는데요. 우리나라로 치면 오징어인데 아주 작은 오징어를 튀긴 깔라마리, 그릴드 깔라마리, 봉골레, 오징어먹물리조또를 시켜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지친 몸을 충전하기 위해 맥주도 한잔씩 하고요. ㅎㅎ 크로아티아 맥주는 약간 에일 비슷한 맛이 나서 아주 달달하고 맛있더라고요.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젤라또도 빼먹을 수 없으니 하나 먹어줬습니다. 오늘 하루 힘들었던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해야 하려나.ㅎㅎㅎ 세상에나, 오늘은 이만보를 넘게 걸었다니까요?
숙소로 들어가는 풀라의 밤입니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았어요. 저녁 9시가 다 되었는데 말이죠. ㅎㅎ 그런데 우리, 쉬러왔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것은 도대체 무슨 여행인가.ㅋㅋ 쉬는 여행이라고 하기엔 스케줄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ㅎㅎㅎㅎ
지금사진 작가님은 어딜 가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고요. 그래서 항상 제 뒤에서 걸어옵니다. 사람들이 없을 때 사진을 찍기 때문에 모두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죠. 그래서 저는 좋아요. 빨리 걷지 않아도 되니까 심리적으로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지노그림 작가님은 직진남입니다. 앞만 보고 빠르게 걸어요.ㅋㅋ 저한테 왜 그렇게 느리게 걷냐고, 벌써 힘드냐고 합니다. 평소에 얼마나 안걷느냐고 타박을 합니다.ㅋㅋㅋ 지노그림 작가님은 평소에 하루에 산을 두개씩 오르고, 이탈리아에가서 토스카나 순례길을 스스로 걷는 고행을 선택하는 트래킹남이거든요. 매일 걷는 게 쉬운 사람과 매일 앉아서 글만 쓰는 사람은 체력부터 다르지 않을까요? ㅎㅎㅎ 그래서 좀 억울하지만 힘을 좀 더 내보기로 합니다.
어쨌거나 티격태격, 우당탕당 거리며 여섯째 날도 끝이 났습니다. 우리 안 맞는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잘 맞는다니까요? ㅎㅎ 오늘은 우리 모두 고생했으니 조금 일찍 쉬기로 했어요. 아늑한 풀라의 숙소에서 따뜻하게 잠이 들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