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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피 Dec 27. 2023

커핑을 시작하다

커피 경험의 시작 '커핑'

퇴사하고 공백기가 생겼다.


요번에는 급한 마음을 뒤로하고 천천히 내가 가고싶은 카페를 찾아보기로 했다.

주야장천 구인 글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까웠다. 올라온다 한들 합격하리라는 확신도 없었기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자 했다. 이 공백을 활용해 커피 문화를 체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서울에 올라온지 어언 4개월이지만 서울을 즐길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서울에 왔다는 설렘에 나중에라도 가고싶은 카페 리스트들을 몽땅 저장해두고 인스타 팔로우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서울에 올라와서 그만큼 잘한일이 없는 것 같다. 생각보다 서울의 카페들은 다양한 콘텐츠들이 즐비해있었다. 팝업 행사부터 매달 새로나오는 블랜딩 소개글, 새로운 굿즈 등등.. 직접 가서 구경하고 마셔보고 싶은 커피들이 아주 많았다. 그 중에서 이렇게 백수가 된 김에 해봐야겠다라고 결심한 한가지 활동이 있었다.


"커핑"


영상으로만 봤지 실제로 해본 경험도 없을 뿐더러 커핑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꽤 이름 날린다는 카페들은 '퍼블릭 커핑'이라는 콘텐츠를 매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주에 괜찮은 원두들을 소개하는 겸 소수 인원들의 신청을 받아 커핑 후 의견을 주고 받는 자리였다.


아주 좋았다. 다수가 아닌 소수가 모여 같은 커피를 마시고 블라인드 테스트하는 이런 모임(?) 

어쩌면 내가 원했던 커피 문화 체험이 이런게 아니었나 싶다.




나는 '리브레'라는 카페에서 진행하는 퍼블릭 커핑에 참여했다.

당시 인스타 피드에 커핑에 나오는 커피 원두 종류를 미리 공지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예습은 못하고 그냥 커피에서 느끼는 맛 그대로를 말했다. 

(커피에서 쌍화탕 맛이 난다는 둥 이런 말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커핑에는 몇가지 순서가 있었다.


분쇄 향 맡기(dry aroma) > 물 붓고 향 맡기(crust) > 부풀어 오른 커피 층을 깨고 불순물 제거 (breaking)

> 커핑 스푼으로 빠르게 커피 흡입 (slurping)


이 순서로 커핑이 진행된다.


난 여기서 진행자분께 질문을 드렸다.


"왜 커핑은 분쇄된 원두에 직접 물을 붓나요?"

진행자분은 귀찮은 내색없이 꽤나 자세히 알려주셨다.


"브루잉을 진행하게 되면 바리스타의 기술이 들어가거나 맛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커핑의 목적은 기술을 통해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이 아닌 이 원두 자체가 갖는 고유의 맛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최대한 맛의 변화를 줄이고 원두 고유의 맛을 평가하기 위함이죠."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Breaking을 진행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 기회를 줬다. 나는 진행자분의 가르침을 따라 시작했다. 스푼 뒷면만 담근채 부풀어오른 커피를 4번 동그라미를 그리며 표면층을 깨주었고 스푼 하나를 더 들고 학익진을 그리는 것 처럼 수저를 모아 컵 가장자리를 긁으며 표면의 불순물을 깔끔히 제거했다.


처음이기에 불순물은 잘 제거되지 않았지만 처음치고는 만족스러웠다.

브레이킹을 완료하고 곧장 본격적으로 커핑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꽤 자주 왔는지 자연스럽게 커핑을 시작했고 커피 맛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시트러스', '허브', '살구', '열대과일' 등등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같은 커피를 마셨음에도 나는 도통 커피에서 어떻게 저런 맛이 느껴지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떤 한 커피는 마시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어디선가 먹어본 듯한..


그래 저번에 카페 탐방 한답시고 처음 먹어본 '예멘'커피의 맛과 향이다.

나는 커피를 뱉으라고 주는 종이컵에 그 커피 번호에 맞게 '예멘'이라고 표기해뒀다.

뭔가 기대됐다. 이게 정말 예멘 커피가 맞을까? 맞추면 나는 뭔가 재능이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그런 기대감들이 나를 설레게 했다. 커핑의 묘미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커핑이 끝나고 정답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빵점.

다 틀렸다. 처음하는지라 커피를 뱉지도 않고 다 마셔서 정신도 혼미했다.


그럼에도 그냥 좋았다. 이런 모임에 참여해 커피라는 공통 관심사를 갖는 사람들과 이런 활동을 잠시나마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서울은 달랐다. 이런 모임의 기회가 수 없이 많았다.



모두들 인사하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진행자분께 조심히 다가가 머리끝에 남아있던 질문 하나를 꺼냈다.


"혹시 커피를 소개할 때 따듯한 커피맛과 식은 커피 맛이 다르다면 어떤걸로 소개해 드려야 되나요?"

멍청한 질문일 수 있지만 너무 궁금했다. 나의 경험상 따듯한 것과 차가운 것의 맛이 현저히 달랐기 때문에..


진행자분은 10분 정도 서있는 채 나에게 설명을 해주셨고 나는 너무 감사했지만 생각보다 길어지는 대답에 정신을 잠시 잃었었다. 

기억나는 것들을 살짝 요약해보자면,

'커피가 따듯할 때와 차가울 때 뉘앙스 차이는 발생할 수 있지만 맛 자체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잘못 내려진 커피라고 볼 수 있으며 만약 손님께 소개해 드리는 부분에서만 판단한다면 따듯하게 나가는 이상 따듯한 커피의 맛으로 소개해 드린느 것이 맛습니다(아이스는 예외).'


좋은 대답도 대답이지만 나의 이런 부족한 질문에도 시간을 할애하여 성심껏 답변해주신 리브레 바리스타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런 좋은 기회와 경험으로 서울에 있는 동안은 앞으로도 꾸준히 커핑을 통해 맛의 레인지를 넓히고 좋은 커피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싶어졌다. 커핑.. 정말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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