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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피 Mar 16. 2024

독립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는 이유

커피를 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에 가는데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돈을 모아 직접 집을 구했고 완전한 독립을 꿈꿨다.


꽤나 순탄했다.

모아둔 돈이 있으니 집을 구할 수 있었고 밥도 지어먹을 수 있고 일도 구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살 수 있다.

물론 전에 내가 부담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을 부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정도 각오는 이미 하고 있었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귀찮은 선택을 하면서 절약하고 쥐똥만큼의 적금도 들었다.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나의 독립은 순탄했다.


가끔은 외로웠지만 가족들이 그리웠지만 그것마저도 행복했다.

내가 진짜 독립을 했다고 느껴졌으니까..


그렇게 6개월이 지나갔고 어느 날 젤리를 씹다가 어금니가 깨졌다.

그리고 치과 의사 선생님께서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사실 어려서부터 이빨이 약했다.

치과는 학교 다니듯 심심찮게 자주 들락거렸다. 성인이 돼서까지도 말이다.


그때의 나는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 자체가 무섭고 두려웠다.

"이빨을 뽑아야겠는데요" / "신경치료 해야겠는데요"

아픈 치료들.. 그것들이 무서울 뿐이었다. 그래서 피하고 싶었다. 아프다는 걸 숨긴 채.


지금의 나도 다르지 않다. 피하고 싶다. 아프다는 걸 숨긴 채.

그런데 그 이유가 달라졌다.

치료? 딱히 무섭지 않다. 오히려 빨리 치료해 버리고 이빨에 대한 스트레스를 없애고 싶다.


"40만 원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내 귀에 꽂혔다. 전에는 어떤 치료를 할 것인지가 귀에 꽂혔다면 지금은 금액이 꽂힌다.

40만 원이면 월세 한 번 더 내는 꼴이다.

이번 달 회식은 다 빠지고.. 점심은 최대한 저렴하게.. 적금은 패스..

이빨 한번 아프니 삶에 많은 부분이 제한되고 계산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아.. 아 정말 내가 독립했구나


이제야 내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홀로 서있다는 게 실감 났다.

내 작은 부분 하나까지 내가 스스로 책임져야 하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두 돈을 갉아먹는 벌레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독립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모두 할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해 주었다.


세상의 잣대로 나를 바라보게 되면서 내가 어느 정도의 사람인지를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40만 원으로도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제한되는 것. 그게 나의 위치였다.


어쩌면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난 독립을 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더 아득바득 살아가야 하며

아낄 수 있는 한 최대한 아껴보고 즐길 수 있는 한 최대한 즐겨보는 것.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놀 때 내가 할 일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 홀로서기를 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인지를 인지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우연히 깨진 어금니로 거금 40만 원을 손해 봤고 고작 40만 원으로 내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람이며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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