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빛으로부터 가려져 있던 것들이 어둠으로 하여금 모습을 드러낸다.
보이는 것은 한계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
하얀 것이 말끔한 도화지라면 어두운 것은 수많은 것들이 겹겹이 쌓인 심오한 어떤 것이다.
깊고 심오하며 오묘한 것은 어둡게 표현된다.
그날 내가 본 것은 오묘한 어둠이었다.
그 어둠은 나에게 다가왔고 나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나에게 꿈을 심어주었고 내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
..
.
나는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침대에 누워 간접 조명등의 스위치를 켰다.
간접 조명등의 불빛은 내가 현실세계에 살아있음을 자각시켜 주는 최소한의 밝기다.
왠지 모르게 적당한 어둠은 내 온몸을 따듯하게 감싸며 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끔 만든다.
정확한 방향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뭇가지들을 흔들며 다가오는 바람.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모발 사이사이 맺혀있는 땀방울들을 어루만지며 몸의 체온을 낮춰준다.
얼마를 걸어온 걸까.
지칠 대로 지친 몸은 자의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발걸음을 옮기는 듯했다.
사방이 뻥 뚫린 길을 지나 나무가 무성한 숲 길로 들어섰다.
어찌나 깊숙한지 숲 길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어둠이 서려있었다.
그 깊숙한 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가슴에서 무언가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곧장 발걸음은 그곳을 향했고 난 어둠을 지표로 삼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둠은 나와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나를 조롱하듯 어둠은 그 농도가 짙어질 뿐 거리의 변화는 없었다.
포기해야 할까 스스로 망설여질 때쯤 내 주변은 생각보다 더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를 점차 포용하고 있었다.
나는 희망을 얻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원동력 삼아 조금 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빠른 걸음은 곧 뜀박질로 바뀌었다.
얼마를 뛰었을까.. 지표 삼았던 어둠이 나와 가까워짐을 느꼈고 그곳에 거의 다다랐다.
오묘했던 어둠 속에서 내가 보게 된 것은 그 안에 겹겹이 쌓여있던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숨 가쁘게 뛰었고 도중에 눈을 가늘게 떠 시야를 집중시켰다.
정체불명의 것들. 나는 그것들을 쫓아 뛰고 있었고 그것들 또한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챘을 때, 이미 그것들과의 거리가 너무도 가까웠다.
머리가 놀란 가슴을 알아채기도 전에 그것들은 나를 덮쳤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는 완전한 어둠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