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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피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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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피 Sep 30. 2024

잊어왔던 것을 찾는 방법

#2

서리는 가녀린 어깨에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공항 근처 버스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난 사람이라고 홍보하는 듯 버스 안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서리의 모습은  꽤나 시선을 끈다.

하지만 더욱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다름 아닌 신발.


살짝 더워진 날씨에는 샌들이 어울릴 듯 하지만 서리의 발에는 쿠션감 느껴지는 튼튼한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다. 감성 사진을 찍거나 누군가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이번 정거장은 송당리, 송당리입니다”


오랜만에 여행이라 긴장한 탓인가 금세 졸고 있던 서리를 버스 안내 소리가 깨웠다.

송당리. 서리가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이자 숙소를 예약한 장소였다.

주변에 간간히 식당들이 보이고 숙소 바로 앞 편의점 하나가 보였다.

버스가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해 대부분의 식당들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편의점만 불빛을 내고 있었다.


점심 이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무척 배가 고팠지만 대부분 영업종료인 가게들을 보며

편의점에서 간단히 해결하고자 마음을 잡았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도시락 하나를 챙겨 나온 후 숙소에 들어갔다.


숙소는 아기자기한 투룸 형태의 방이었다. 방 문에 걸려있는 작은 미니 칠판에 적힌 글씨를 보고 자신의 방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환영합니다. 김서리 님’


칠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아기자기한 그림들과 환영 글은 서리를 설레게 했다.

환영인사 글을 보며 감동받고 있던 서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머지 하나의 방 문에서 호스트인 것 같은 사람이 나왔다.


어디서 본듯한 이목구비.. 익숙한 실루엣. 잠시 어떤 연예인을 닮은 게 아닌가 생각에 빠졌다. 상념에 빠진 서리를 깨우듯 그는 자신의 이름을 이동명이라 소개했다. 이 숙소의 호스트로 있는지 한 달 째였고 숙소에서 일을 하며 자유롭게 여행하기 위해 이 섬에 왔다고 한다.


이 섬은 보이는 것처럼 자유롭게 여행하기 위해 혼자 여행을 온 여행객이 상당히 많다.

서리도 그렇고 동명 또한 서로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자유로운 여행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동명은 서리에게 숙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숙소에서 제공해 주는 반찬과 간단히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서리는 마침 사들고 온 도시락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둘의 어색한 공기 속에서 설렘으로 가득 찬 질문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곳은 어쩌다가 오시게 되셨어요?”

중저음의 목소리로 호스트의 면모를 모이는 동명.


“그냥 뭐.. 이곳저곳 걸어 다니면서 생각 정리를 하려고 왔어요”

뻔한 대답. 동명도 그렇고 이 섬에 온 누구라도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이곳은 그런 곳이니까. 가까운 듯 가깝지 않고 동 떨어진 느낌을 받으며 힐링하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곳.


“그럼 동명님은요?”

서리는 동명 또한 자신과 비슷한 대답을 할 것이라 기대하며 되물었다.


“저도 비슷하긴 한데.. 저는 잊고 있던 걸 찾으러 왔어요”

잊고 있던 걸 찾으러 왔다. 무엇일까 그게.


그것이 무엇인지 찾으러 온 동명에게 답을 물어볼 순 없었다.

그 대신 답을 찾기 위한 방법은 물어볼 수 있었다.


“어떻게 찾으시려고요?”

그 방법이 너무나 궁금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방법을 알려주려 입꼬리가 올라가는

동명의 표정을 보니 알고 싶어졌다. 그가 내일 하게 될 일을.




눈 깜박할 새 없이 아침은 밝아왔다. 어제 간단히 시작된 식사가 과음으로 이어졌기에 골아떨어지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대화가 이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취한 상태에서도 감명 깊게 들었던 동명의 앞으로의 계획은 세세히 기억에 남았다. 동명은 오늘이 섬에서의 마지막 날이고 올레길을 걸으며 마무리를 할 것이라는 낭만 넘치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올레길이라 하면 마을길, 해안도로, 숲 속 오솔길 등 섬을 연결해 주는 모든 길목을 말한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고 더 나아가 섬과 세계를 연결하게 되는 미래를 의미하는 길. 동명은 올레길이 우리를 사색에 빠지게 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내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동명은 이른 아침부터 햇빛 가리게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올레길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어제 과음 덕분에 서리 또한 얼떨결에 올레길에 오르기로 했었고 아침 일찍 올레길 시작점까지만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서리는 준비 중인 동명을 보고는 급히 준비를 시작했다.


“서리, 준비 다 했어? 곧 버스 올 거야”

어제저녁  말을 놓았나 보다. 기억은 안 났지만 동갑이기도 하니까 그런대로 서리 또한 놓기로 했다.

특별한 준비 없이 곧장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항상 출근길을 위해서만 버스에 탔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니 상당히 생경했다. 동명은 버스가 해안가 쪽으로 데려다주는 동안 올레길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설명해 줬다. 마치 관광지를 가기 전 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더 기대하게 되는 효과를 주는 것처럼 서리의 흥미를 보다 더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동명의 설명은 대략 이러했다.

파란색과 빨간색이 엇갈려 늘어진 끈이 길가 곳곳에 흩어져있는데 이 끈들이 올레길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 끈을 따라가다 보면 해안가를 시작으로 숲 속 깊숙한 오솔길까지 각양각색의 길들을 지나가게 된다. 길이 시원하게 뚫린 해안도로 쪽은 쉽게 다음 끈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지만 숲 길로 들어서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끈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 비교적 어려울 수 있다. 동명 본인의 말로는 이것이야 말로 본인이 올레길에 가는 이유라고 한다. 보이는 길, 그려지는 길보다는 보이지 않는 길, 상상하게 되는 길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덧 붙였다.

마치 자신의 인생 같다고, 자신의 인생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끈이 보이지 않거나 길의 시야가 좁아지면 불안해진다. 하지만 가만히 주저앉아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숲 길의 끝이 보인다. 동명은 현재 자신의 불안한 마음이 마치 보이지 않는 끈을 찾는 마음 같다고 했다. 그 불안함을 뚫고 길을 찾았을 때 동명은 잠시 뿐이겠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생에 대한 불안감 또한 같이 날아간다고 했다.


동명의 길고 긴 설명이 끝날 즈음 버스는 도착지점에 이르렀다.

도착을 앞두고 동명은 말할지 망설이는 눈빛으로 서리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 가지 자신이 올레길을 걸으며 마주쳤던 기이한 현상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리의 궁금증을 더욱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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