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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포구가 내뱉는 것

<산성마을 DJ 페스티벌> 후기

by 하난

긴 여정이었다. 애인은 평소 몰던 포터를 잠시 미뤄두고 승용차와의 여행을 택했다. 늘상 운행하던 차가 아닌지라 애인은 다소 어색해했으나 퍽 유연하게 차를 몰았다.

도담도담 얘기를 주고받다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귀 기울여 들은 후 소감을 주고받기도 하니, 어느새 목적지인 안동 한국문화테마파크에 도착했다.

시험기간에 이 먼 곳까지 가게 된 까닭은 애인 친구 커플이 테마파크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의 연주자로 활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그들이 우리를 초대해 주어 이 색다른 경험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3시를 조금 너머 출발했거늘 도착하자 7시 30분이었다. 커플 중 여자분의 쇼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늦을까 싶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부랴부랴 페스티벌의 장소를 찾았다.

거대한 한옥들이 늘어선 공간, 노을 진 하늘 아래 몇몇 호롱불이 빛을 내고 멋스럽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길을 거니는, 자유로운 아름다움이 녹아든 곳이었다.

우리는 처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음악이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자유스테이지>라 적힌 그곳은 높은 누각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무난한 박자의 음이 울리는 곳. 누각 아래서 울리는 현대적인 음악이 흥미롭긴 했으나 우리가 찾던 사람은 아니었다.

빠르게 선로를 틀어 아래로 내려갔다. 저잣거리를 지나 불빛이 보이는 작은 한옥에 다다르자 아까와는 달리 진짜 축제 분위기의 공간이 드러났다. 붉고 푸른, 각양각색의 조명과 연기가 어우러지고 쾌활한 음이 흐르며 영어 가사가 울린다. 흥에 겨운 사람들이 몸을 흔드는데, 그게 퍽 멋있었다. 어둠에 잠기고 있는 한옥에 울리는 영어 가사와 콘서트 같은 연출이라니. 전통 속에 깃든 현대의 흥은 꽤나 즐거운 것이었다.

재밌는 모습이었으나 그곳도 우리가 찾던 곳이 아니기에 서둘러 그녀가 있는 <오방 스테이지>를 찾았다. 다행히도 두 곳 외에 스테이지로 보이는 곳은 하나밖에 없었고, 그곳이 <오방스테이지>였다. 야외에서 진행되던 두 공연과 달리, 오방 스테이지는 실내에 있었다. 박물관 같은 곳이었는데, 들어서자 전투복을 입은 장군 모형과 참모진이 앉을 것 같은 테이블이 보였다. 조금 더 들어가자 각종 무기를 든 농민들의 모습이 벽을 메우고 있었으며 그 위로는 여러 개의 깃발이 교차되어 늘어져 있었다. 음악은 그 사이로 흘렀다. 쿵쿵 혹은 쨍쨍거리며 울리는 박동이 벽을 메운 이들의 비장함을 강화했다.

코너를 돌아 들어간 마지막 공간. 메인 스테이지는 환상적이었다. 중앙의 약간 단이 높은, 공연자와 관중이 만나는 공간과 삼면을 메운 조명으로 물든 벽, 그 아래를 장식한 대포와 낮은 벽 모형들.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몰두하는 사이, 테크노 음악이 귀를 메운다.

찰랑이듯 박동하는 소리. 꽹과리와 북을 섞은 듯한 음. 풍물놀이 같은, 그러나 조금은 더 공격적인 청각적 이미지가 근방에 놓인 대포들, 그 대포들이 쏘아진 듯한 모습의, 검은 벽을 메운 하얀 포물선의 시각적 이미지와 중첩되어 '전장'을 상기시킨다.

메인 스테이지 위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절반씩 들어찬 호롱불이 달려있다. 호롱불이 높은음에 따라 번쩍인다. 오직 붉은빛만이 소리치듯 빛나다 점멸하길 반복. 꼭 심령의 비명소리 같다.

이어 크게 음이 위로 치닫자, 관중이 함성을 뱉는다. 여럿의 신난 소리가 이상하게 군대의 함성으로 들린다.

수백의 군인이 발을 굴리는 소리. 쿵쿵거리는 음은 목을 치고 흐르고, 꾕가리의 거친 연주는 어느새 칼날의 부딪힘으로 바뀐다. 그에 따라 번쩍이는 벽. 대포가 터진 걸까. 머리 위 호롱볼이 다시금 떨리며 빛을 낸다.

스테이지는 전쟁터였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오르는데도 눈을 감으면 한없이 편안해졌다. 내면 저 깊은 심연에 닿아 몸을 뉜 안정감. 오직 살짝씩 울리는 심장박동만이 느껴질 뿐이다. 전쟁터에서 이토록 편안하다니 재밌지 않은가.

문득, 그녀의 이전 연주가 삶을 담았던 걸 떠올린다. 그것이 이번 공연과 연결되어 꼭 전쟁 같은 삶 속에서도 평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스스로의 내면에 귀 기울인다면 평안은 그 곁에 있으리라는 것을 전하는 듯했다.

곧이어 연주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번쩍이는 호롱불. 그 안에서 '내'가 보인다. '내'가 죽인 '내'가. 그것들의 존재를 확인한다. 벽 주위의 하얀 선들이 붉은색으로 변모하고 음은 더 흥겨워진다. 비명 같은 함성이 울리고 관중들이 열광한다.

긴장과 불안, 안정이 교차하며 공존한다.

그런데 뚝. 어느 순간 생각이 끊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묘사하던 정신이 하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저 음악이 울리고, 마음이 가벼워진다. 자유로워진다.

어느 시점, 그녀의 음악은 외친다.

"그냥 즐겨!"

생각할 거리를 이렇게 줘놓고 그냥 즐기라니 참 재밌는 사람 아닌가. 핏속에서 즐기는 삶이라니 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또한 낭만적인가.

이후에는 그저 생각 없이 즐겼다. 애인의 옷으로 하난이 모형을 만들어 하난이와 춤을 추기도 하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답지 않게 조금씩 몸을 흔들며 카메라들과 DJ의 모습을 열정적으로 지켜보기도 한다.

그녀의 공연은, 다른 걸 떠나 즐거웠다.



그녀의 시간이 끝나고 이어 다음 공연이 이어졌다. 고풍스러운 가야금으로 시작된 음악은 힙하게 진행된다. 해태가 떠오르는, 현을 뜯어내는 듯한 가야금 소리. 이어 울리는 찰랑임.

민화 속 홀로 선 검은 도포의 사내가 가벼이, 그러나 강하게 춤을 추는 듯하다. 산속에 선 그는 짐승의 울음을 뒤로한 채 묵묵히 몸을 흔든다. 그의 뒤로 긴 도포자락이 휘날린다.

너무 좋은 공연이었다. 자칫 연약해질 수 있는 가야금을 강인하게 묘사해 전통을 각인시키되, 고루하지 않게 한 것이 매력적이었다.

때문에 식사 때문에 공연을 다 못 보고 나온 게 더더욱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연을 뒤로한 우리는 저잣거리에서 가볍게 잔치국수를 먹었다. 애인 친구 커플이 준 엽전을 이용해 음식을 사는 건 제법 재밌는 경험이었다.

배를 불린 후에는 주위를 구경했다. 각종 민속놀이를 체험해보기도 하고, 처음 갔던 스테이지로 복귀해보기도 했다.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자 벽에 여러 이미지가 그려졌는데, 박동하는 음 속에 한복을 입은 이들, 탈을 쓴 청년, 말과 여러 짐승의 모습이 교차되어 드러났다.

이 페스티벌 전체에 자리한 이념이기도 했으나 특히나 여기서 전통과 현대성이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구경을 조금 더 하고 난 뒤에는 차로 돌아가 잠시-잠시라기엔 5시간이었지만- 눈을 붙였다. 새벽 4시에 커플 중 남자분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던 탓이다.

나의 체력이슈와 애인의 장거리 운전 및 오전 근무 이슈로 우리는 죽은 듯 잠을 잤다. 오랜만에 먼 길을 온 탓인지 유독 피곤했다. 때문에 뒤의 공연들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영부영 시간에 맞춰 일어난 우리는 다시금 오방 스테이지를 찾았다. 한 20분 정도 기다렸을까, 애인의 친구가 등장했다.

오늘도 긴 머리를 가볍게 넘긴 검은 복장의 그는 가벼운 움직임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격한 북소리가 투쟁적으로 울리며 발 밑부터 진동한다. 쿵쿵거림 사이 철로 긁어내는 듯한 소음. 다소 불쾌하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연이어 이어진다. 무언가를 다듬듯 계속해서 긁어내리는 소리 끝, 음이 더 다채로워진다.

고양잇과의 위협소리. 날카로움이 아포칼립스를 상기시킨다. 그 사이로 춤추는 자유로운 사람들. 현대적으로 개량된 북소리가 부드럽게 박동한다. 여럿의 박수. 검은 공간 아래 회색 손들 만이 서로 맞붙이 친다.

전진하는 사람들. 은빛 포물선이 그려지며 모래섬에 맞닿는다.

빈민가의 도둑을 잡는 도련님과 도포를 벗어던지고 춤추는 한 사내. 불쾌하지 않은 진동음. 게임칩이 뒤집힌다.

슈웅. 레이싱의 시작. 날아가는 새.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게 되는 즐거움.

주위로 시선을 돌린다. 온몸을 이용해 움직이는 외국인과 청년들. 한 외국인은 바닥에 발 한 번 붙이는 것 없이 격하게 움직인다.

그 사이로 난타. 고래가 거대한 육신을 움직이고 온갖 유기체와 무기체가 섞여든다.

한참 잠에 취해, 음악에 취해 있던 중 춤을 추던 외국인과 부산 여성분이 말을 걸었다. 가만히 멈춰 있는 내게 더 몸을 흔들 것을 권하며, 테크노 공연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게 멋있다며 칭찬해 주셨다.

굉장한 내향인이었던 내게는 약간 부끄러운 상황이긴 했으나 퍽 감사하고 즐거웠다. 외국인 분은 내 영상을 찍어주기도 하셨는데, 알고 보니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현한 분이었다. 신기한 일이다.

그 무려부터는 거의 자고 있었다. 눈을 감자 몸이 비틀거리고 눈꺼풀이 자꾸만 아래로 내려갔다. 와중에 귀와 몸에 울리는 음악은 UFO, 화살무리 등 각종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공연은 그런 아수라 속에 끝났다. 졸렸던 탓에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이번 곡은 어떠한 스토리의 전달보다는 축제의 즐거움에 초점화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스토리라인이 떠오르지는 않았으나 즐거웠다. 그저 그 음들이, 박동이 기꺼웠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끝난 테크노 페스티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했다.

차에서도 졸고, 집에 와서도 내리 7시간을 잤지만 여전히 가길 잘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메운다.

왕복 7시간을 운전해 준 애인과 좋은 기회를 주신 공연자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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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