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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Nov 11. 2024

감정의 콜라주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어때서.

 잘 웃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실없이 웃는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반대로 무표정일 때는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차갑고 냉정해 보인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무표정이 감정을 가지는 건가. 그런 말은 어쩐지 ‘당신은 참 어려운 사람이네요’라고 거리를 두는 말, 혹은 ‘당신은 좀 별로예요’라는 말로 혼자 오해하기도 했다. ‘아무도 널 신경 쓰지 않아’라고 해도 나는 누군가의 감정을, 누군가의 생각들을 잘 알아채서 잘 이해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 인간관계에서 오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가끔은 불편했다. 무표정도 하나의 처리해야 할 감정임을 알고부터는 신경이 쓰였다. 감정을 도려내어 콜라주처럼 붙이고 싶은 데다 딱딱 붙여놓은 느낌이랄까. 어느 누군가는 멋지게 보일 그 콜라주는 나는 별로 멋지다고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보여주어야만 하는 덕지덕지 붙은 그 불편한 감정들을 다 떼내어 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다. 차갑고 냉정하게 보인다면, 그것 또한 나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너는 아침부터 뭐 때문에 화가 났니?”



 일 때문에 타지에서 잠시 사촌 언니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을 때였다. 눈도 제대로 안 떠진 부스스한 얼굴, 툭 튀어나온 입, 터덜터덜 걸음으로 거실로 나온 내게 사촌 언니는 아침 인사 대신 다짜고짜 왜 화가 났냐고 했다. “아니, 아니요. 언니! 그럴 리가요. 잘 주무셨어요?” 무표정한 얼굴이 뚱한 얼굴로, 화난 얼굴로 오해받을 때가 종종 있었지만, 아침에 부은 얼굴로 듣는 저 멘트는 조금 억울했다. 부루퉁하게 툭 튀어나온 입 때문이었을까. 내 인상이 그 정도로 안 좋은가. 머쓱한 얼굴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 속 퉁퉁 부은 얼굴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화난 거 아닌데, 아침부터 화낼 이유가 없는데.’ 오해였다. 그날 이후, 아침마다 나는 억지로라도 입꼬리를 올리며 방문을 열었다.





“쌤, 이 문제 틀렸어요?"

“왜? 아니, 안 틀렸는데? 정답이야.”

“아! 쌤! 쌤 표정 보니까 틀린 줄 알았잖아요. 표정이 좀 그랬어요. 틀려서 열받으신 줄.”


나는 재빨리 마음속에서 웃음 감정을 북 찢어서 얼굴에 붙였다. 가식이라면 나 자신도 할 말이 없지만, 오해받는 상황은 어쩐지 좀 불편했다.





“엄마? 혹시 화났어?”

무엇에 열중하고 있는 나에게 첫째가 와서 말했다.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엄마 화난 거 아닌데?”“화난 거 같아 보였어.”


 이쯤 되면, 오해가 아닌가 보다. 무표정한 내 얼굴에는 내가 자각하지 못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어떤 분위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썹을 올리고 눈꼬리와 입에 물결을 만들어 아이를 쳐다본다. “엄마가 기분 나쁜 이유가 전혀 없지.” 아이를 안고 등을 쓸어내려 줬다.



 외형적인 어떤 모습으로 타인에게 비치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그냥 생긴 대로, 그냥 나대로, 그저 그렇게. 외모는 물론 행색, 차림은 내 인생의 중요도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내 표정, 감정, 성품 등은 달랐다. 관계 속에서 오는 어떠한 마음들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관심을 두고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었다. 그게 콜라주가 되었든, 가식이 되든 내가 미소지음으로써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야 했다. 하물며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의도하지 않은 것들로 인한 오해는 없어야 했다. 그래서인가 무의식적으로 무표정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자꾸만 올려야 했다.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표정이 왜 그래?’라는 오해의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미소로 ‘감정 처리 미숙’이라는 딱지를 재빨리 처리해 버렸다. 가족이든, 친구든, 얕게 사귄 그 누군가든, 나의 바운더리에 들어온 존재에게는 촉이 세워졌다.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는 상대의 감정에 기민하게 반응했었다. 올라간 입꼬리가 광대를 밀어 올려 눈동자가 눈두덩이에 파묻혀도, 조금 바보 같은 모습이 될지언정, 내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것보다 하회탈이 되는 것이 한결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혼자 남은 시간, 나는 겹겹이 붙은 내 것이 아닌 감정들을 모조리 떼어내고 자각하지 못하는 나의 그 무표정한 얼굴을 반겨주며 나직이 말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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