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실패하자
몸이 기울어지는 순간 크게 다치겠다는 것을 직감한다. 휘청거리던 두 바퀴가 결국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몸이 땅으로 내팽개쳐진다. 11살,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나는 손목에 금이 가고 말았다. 몸이 기울어질 때의 그 서늘한 느낌, 순간적인 판단으로 땅을 짚었을 때 손으로 느껴지는 그 날카로운 통증. 처음 깁스라는 걸 했다. 다행히 오른손으로는 숟가락도 쥐고 연필도 쥘 수 있으니, 왼쪽으로 기울어지길 잘했다는 말을 엄마한테 들었다. 깁스를 풀자마자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전거를 가지고 있는 동네 오빠 집을 또 찾아갔다. 동네 오빠를 부른 것인지 자전거를 부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문 너머의 자전거를 보자마자 그 오빠의 이름을 연신 불러댔던 기억이 난다. “경호 오빠야!! 놀자!”
안장이 긴 작은 자전거였다. 경호 오빠의 자전거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한 자전거였기 때문에 나 말고도 경호 오빠, 아니 그 자전거를 찾는 동네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는 돌아가며 그 자전거를 탔고, 경호 오빠는 덕분에 골목대장 감투를 쉽게 쓸 수 있었다. “줄 서야지 탈 수 있어 줄 서!”
내 차례가 왔다. 안장에 앉아 손잡이를 잡자 약간의 긴장과 함께 손목에 금이 갔던 그날의 실패가 준 냉혹함과 두려움이 온몸에서 되살아났다.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에 묻은 흙먼지의 기억까지 아프게 다가왔다. 지금 못 타면 내 차례는 밀려날 거라는 생각에 손잡이를 더 세게 움켜쥐고 페달을 밟았다. 휘청휘청. 그러다가 몇 번을 넘어졌다. 몸이 기울어질 때마다 용을 썼다. 어떻게든 균형을 잡기 위해. 실패의 감각을 온 몸으로 느꼈다. 어디서 중심을 잃는지 자꾸만 기울어지면서 깨달았고, 마침내 나는 두려움 없이 페달을 밟았다. 더는 휘청거리지 않고 속도를 내며 달릴 수 있었고 더 이상 넘어지지 않았다. 나의 자전거 타기는 실패의 연속 속에서 완성되었다.
첫째 아이는 7살에 두 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했다. 휘청휘청하며 나아가는 모습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이 겹쳐졌다. 몇 번을 크게 넘어져 여기저기 상처를 내고 대성통곡도 했지만, 아이는 다시 자전거의 손잡이를 잡고 페달에 발을 올렸다.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의 흔적들. 아이는 무수히 많은 실패의 흔적들을 남기고 나서야 더 단단해진 자세로 다시 올라탈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자전거는 더 이상 넘어지지 않았고, 기분 좋게 바람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며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때의 내가 저런 얼굴이지 않았을까.
실패는 도전이 가진 본질적인 요소다. 뭘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는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도전은 실패를 극복하려는 의지에 있기 때문에 실패는 곧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연료가 된다. 그러니 기꺼이 실패해야 한다. 한 번만이 아니라 자꾸만, 평생을.
밑져야 본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