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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철학과 깨달음의 경계

by 노미화 Mar 22. 2025

모호한 게 제일 정확한 거예요. 왜? 인생이 본래 모호하기 때문이에요. 알 듯 모를 듯해야 말에 힘이 붙어요. 시가 철학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철학하고 있다는 걸 들키면 개똥철학이에요. 시에서는 폼 나는 말 안 하는 게 폼나는 거예요. 뭐 좀 안다고 자랑하지 마세요. 본래 모르는 거예요.

                                   이성복 시론 <무한화서> 중에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생각하는 모호함의 의미를.



 첫째, 어떤 것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을 때, 나는 모호함의 경계에 서서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포지션을 취한다.


'그럴 수도 있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데'


 사람들은 종종 중립을 우유부단함이라거나, 때로는 얍삽한 처세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상황에 따라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바람 불면 잎의 방향을 바꾸는 갈대처럼, 내 마음이 그러할 때가 있다. 그러니 모호함에 대한 중립이란 얍삽함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유연함이 더 가까워 보인다. 견고한 것이 반드시 강한 것이 아니듯.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너무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말하는 순간, 나만의 개똥철학이 되기 쉽다. 모호함을 유연함이라고 미화하면서, 사실은 결정을 회피하는 것일 수도. 과연 나는 현명한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일까. 중립지대에서 갈팡질팡.




둘째, 여지를 남기는 것. 모호함은 어떤 일이든 생각이든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과정 속에서 얼마나 많은 변수가 존재하는가. 만약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확정적이라면, 나는 아마도 아무런 가능성도 꿈꾸지 못할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이 행위도 없겠지.


'나는 잘 쓰지 못할 거야'

'계속 쓰면 잘 쓸 수도 있지 않겠어?'


모호하지 않으면 꺾이고 부러질 수도 있겠지. 모호함, 그 불확실한 가능성이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 준다면, 뿌리까지 뽑혀버릴 일은 없지 않을 거라는 개똥철학을 또 펼쳐본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모호함을 깨닫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모든 걸 다 알지 않아. 그러니 못해도 괜찮아. 모호함은 언제나 내 편이야’ 이런 말이 어쩌면 또 다른 형태의 자랑이려나. 누군가가 모호함 속에서 답을 찾으려 애쓸 때, ‘굳이 답을 내리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는 것이 진짜 배려일까? 때로는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문제를 외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배려! 쓰는 사람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배려를 해야 되나 보다.



셋째, 자기 합리화. 위에서 말했듯이 모호함이 늘 긍정적일 수는 없다. 때때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기 위한 이만한 방패가 없다. 살을 빼야 해. 하면서도 운동은 하지 않는다. 건강해야 해. 하면서도 수면시간을 쪼개고 쪼갠다. 다정해야 해. 하면서도 말투는 한껏 날카롭다. 명확한 답을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을 때, 나는 모호함 속에 숨는다.


 ‘사람이 어떻게 완벽해. 그럴 수도 있지.’ '이럴 때는 이게 더 좋은 생각이고 깊이 있는 태도야.' 라며 내 마음이 편할 수 있도록 포장한다. 어쩌면 진짜 개똥철학은 이런 걸 지도 모르겠다.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모호한 지점에서 사실은 가장 단순한 길을 선택하는 것.



어렵다. 이성복 시인의 시도 어렵고, 애매한 내 마음도 어렵고 쓰고 보니 더 어렵다.


때로는 필요하고 때로는 위험하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그것을 유연함으로 만들 것인가, 도피처로 삼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 보니 모호함의 가장 큰 순기능을 알겠다.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든다는 것!


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개똥철학과 진짜 깨달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있는 걸 지도.


마치 고무줄놀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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